전쟁의 폐허 위에 희망의 꽃을 피운 신천동 깐치밭골 메노나이트
옛날에는 신천동 주민들의 논과 밭이 있어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대한제국 때까지..
갈헌 한동유 선생의 문향(文香)이 서린 사동
사동은 15세기 경산현 동면 동을산리(冬乙山里)에 속한 작은 촌락이었다. 18세기..
구연대의 풍류가 서려 있는 미산1리(사미천리)
미산1리는 조선시대 자인현 상동면 동삼동 사미천리(思美川里)였다. 줄여서 미천(美..
관란서원과 맹구대의 마을 용성면 미산2리
용성면 미산2리는 조선시대 자인현 하동면 동사동 오산리(鰲山里)였다. 1895년 ..
조선 후기 중국 종단 여행기를 쓴 최두찬이 살다 간 자인 원당리
영천최씨 원당문중에 최두찬(崔斗燦, 1779∼1821)이란 사람이 있었다. 원당의..
철 따라 꽃들이 성을 이루니 ‘꽃재’라 하였다.
하양은 물과 볕의 고을입니다. 남쪽으로는 생명의 젖줄인 금호강과 너른 들판의 풍요..
일제 시대 경산의 근대 유적을 찾아서
조선 시대 경산의 중심지는 삼남·삼북동이었다. 1905년 경산역이 사정동에 들어서..
근대화의 바람에 실려 간 경산현 공청과 객사
조선 시대 군·현의 공공기관은 크게 공청과 객사로 구분되었다. 이 기관은 외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