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4 오전 9:28:01
‘唯心’(유심)즉 ‘오직 마음에 만물의 진리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마음 이외에는 스승을 원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당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온 후 원효대사는 대중 교화를 위해 기이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불법의 이치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치열하게 수행했다.
▲원효의 일생 2 - 자유무애한 교화와 수행
돌계단이 있는 건물 앞에서 횡적과 생황을 연주하는 인물들과 거문고를 켜고 있는 원효의 모습은 진정 승려로서의 율법은 잊어버린 듯 한가롭다.
실제로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후 속인의 옷을 걸치고 소성거사라고 칭하였다. 화엄경 구절을 노래로 만들고, 무애라고 이름을 지은 표주박을 들고 수많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노래와 춤으로 민중을 교화하였다.
▲원효의 학자적인 모습
주색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물 안에 경전에 주석을 달고 있는 진지한 원효의 모습에서는 허랑방탕한 모습이 아닌 학자적인 진지함이 보인다.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이지만 자유무애한 교화와 수행을 하며 대중 속에 뿌리를 내렸던 그의 행적이 훌륭하게 표현되었다.
▲절벽에서 수행할 때, 호랑이가 조복하는 모습
이어지는 장면은 너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절벽 위 편평한 곳의 동굴에 원효가 명상에 잠겨 있다. 동굴이 있는 곳은 바다에 면한 절벽이지만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듯 능선을 따라 소나무가 수풀을 형성하고 있다.
명상에 잠긴 원효의 주변에는 웅크리고 앉아 대사를 지켜주고 있는 호랑이 두 마리와 어슬렁거리며 대사를 향하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가 보인다. 수행을 하고 있는 원효는 신심을 갖지 못한 금수조차 설득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원효가 바닷가에 앉아 달을 보는 장면
이와 같은 그의 행적은 “어느 때는 저잣거리에 머물면서 거문고를 치며 노래하고, 승려의 율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느 때는 경론의 소를 지어서 법회에서 강설을 할 때에는 청중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또 어떤 때는 산 속에서 좌선을 하니 禽鳥虎狼(금조호랑, 봉황 호랑이 이리)이 스스로 굴복하였다.”라고 2권의 두 번째 고토바가키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의 지혜는 타인과 비교할 수 없고 그 행덕을 헤아릴 수 없다. 因明(논리)와 內明(학문)은 국내외의 전적 모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순식간에 혼자서 연구하여 천하에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 그의 行儀는 분별이 없어 보여 범부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때는 저잣거리에 머물면서 거문고를 치며 노래하고, 승려의 율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느 때는 경론의 소를 지어서 법회에서 강설을 할 때에는 청중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또 어떤 때는 산 속에서 좌선을 하니 금조호랑(禽鳥虎狼, 봉황, 호랑이, 이리)이 스스로 굴복하였다.”
귀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이승희 박사님(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께 감사드립니다.
최상룡 (ks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