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2 오전 10:06:25

▲ 『금호강과 길』 특별전
대구미술관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놓치기 아까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간송 미술관 소장 ‘김홍도의 마상취앵도’ ‘신윤복의 미인도’ ‘심사정의 촉잔도권’ 등 보물로 지정된 조선회화 명품들이 첫 지방 나들이로 대구에 왔다. 대구미술관에서 『조선 회화 명품전』이라는 타이틀로 9월 16일까지 전시된다.
일제강점기,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이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수집하여 보화각(사립박물관으로 현재 간송미술관)에 보존해 오던 조선 회화 명품 100점 간송 유작 30여점 미디어 작품 5점 등 130여점이 출품됐다.
아울러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도 동시에 개최되고 있어 조선시대 이후 회화의 백미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김환기전은 8월 19일 까지 계속된다.
또 국립대구 박물관에서는 고대 금호강 유역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금호강과 길』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금호강과 길』 특별전은 6월 19일부터 9월 30일까지 열리며 최근 발굴된 매장문화재와 경산지식산업지구에 편입된 하양 대학리에서 출토된 유물도 볼 수 있고, 금호강 일대의 유적과 유물이 지역문화 발전과정에서 지니는 의의를 조명해 볼 수 있다.
『조선 회화 명품전』의 주요내용을 소개한다.
조선 회화 명품전
Ⅰ. 전시 개요
전시 제목: <조선 회화 명품전>
전시 기간: 2018년 6월 16일 ~ 2018년 9월 16일
주요 작가 및 작품: 신사임당, <포도>/ 이정, <풍죽> / 정선, <풍악내산총람> / 정선, 《해악전신첩》 / 심사정, <촉잔도권> / 김홍도, <마상청앵> / 신윤복, <미인도> / 김정희, 《난맹첩》 등
출품 작품 수: 130여점
조선 회화 명품: 100점 / 간송 유작: 30여점/ 미디어: 5점
문 의: 대구간송 C&D 사무실 (053-791-13
Ⅱ. 기획 의도
일제강점기,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은 민족 문화재가 뒷날 문화 광복의 기초를 이룰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문화재의 수집 보호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문화보국(文化保國)’, 즉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일종의 문화적 독립운동이었다.
그런데 1937년 일제가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며 우리 민족 문화를 본격적으로 말살하려 하자 간송 선생은 민족 문화재의 수호 시설이 시급한 것을 직감하고 박물관 건립을 서두른다. 그 결과 1938년, 음력 윤 7월 5일(양력 8월 29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華閣)을 준공하게 된다. 지금부터 80년전 일이었다. 1962년 간송 선생이 타계하신 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어 민족미술의 지킴이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번 전시는 보화각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간송 선생이 수집했던 문화재 중 조선시대 그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자리이다. 간송 선생이 수집한 회화 작품들은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시대별로 최고의 성가를 이룩했던 대가들의 걸작이 망라되어 있다. 세간에는 간송의 수집품만으로도 조선시대 회화사의 대강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간송 선생이 조선시대 그림을 중점적으로 수집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은 왜곡과 폄하가 가해졌던 부분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였기 때문이다. 간송 선생은 조선시대 문화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그림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조선의 문화 역량을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정선,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 등이 그린 조선후기 영정조대의 작품은 식민사학으로 왜곡된 조선후기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결정적 근거라고 확신했다.
이런 까닭에 간송 선생은 조선의 회화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수집했고, 그 결과 간송의 다양한 수장품 중에서도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인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바로 이점이 ‘보화각 설립 80주년’이자 ‘간송미술관의 첫 지방 전시’ 라는 기념비적인 전시를 조선의 명품 회화로 꾸미게 된 이유이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남긴 명품 회화를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의 진면목을 살펴보고, 아울러 이를 지켜내기 위해 일생을 바친 간송 선생의 삶과 정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과거의 자취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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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초·중기
문화를 식물에 비유하면, 이념은 뿌리이고 예술은 꽃에 해당한다. 중국에서 건너온 주자성리학을 이념기반으로 꽃피웠던 조선초기의 예술은 중국적 향취가 강하게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화원 안견과 문인 강희안의 그림은 중국의 강한 영향력 안에서 진행되었던 조선초기 화단의 양상을 대변한다.
조선중기에는 전대 양식을 형식적으로 계승하여 퇴영적 면모를 보이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역동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거치며 성리학이 내면화되고 시대사조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군자 계열의 수묵 문인화 분야에서 조선적인 풍격이 강한 작품들이 등장하는데, 조선 묵죽화의 대가 탄은 이정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2. 조선후기
조선후기에는 조선성리학이라는 독자이념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며, 자주의식이 강화되었고,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이루어 낸 경제적·사회적 안정은 문예 발전의 탄탄한 물적 토대가 되었다. 여기에 영조·정조와 같은 유능한 문예 군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이 뒷받침되면서 문예의 꽃은 더욱 탐스럽게 피어났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조선의 산천과 삶을 사생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유행하게 되는데, 정선과 조영석은 그 서막을 연 문인화가들이었다. 다음 세대인 심사정과 강세황 등이 중국의 문인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조선식으로 소화하면서 조선후기 회화는 보편성과 독자성을 두루 갖추게 된다. 이렇듯 문인화가들에 의해 진경 풍속의 기틀을 다져지자, 김홍도, 신윤복 등 화원화가들이 출현하여 전배들의 성과에 계승하고, 기술적 완성도를 더하여 조선후기 회화 발전의 대미를 장식한다.






3. 조선말기
조선후기 문예 절정기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던 조선성리학이 수명을 다하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이 필요해졌다. 이에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청조고증학을 적극 수용하여, 문예 개혁을 주도한다. 그는 극도로 이념화된 감필체(減筆體)의 문인화풍을 이 추구하며 형식화된 전통화법에서 탈피하고자 하였다. 이에 조희룡(趙熙龍, 1789-1866), 허유(許維, 1809-1892), 이하응(李昰應, 1820-1898) 등 많은 서화가들 김정희의 서화이론에 공감하고 추종하며 이른바, ‘추사파’를 형성한다.
그러나 추사파의 문예 개혁이 한계에 봉착하자, 조선의 화풍은 급격하게 형식화, 장식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맹목적으로 외래풍을 추종하는 풍조가 만연하니, 혁신의 실패로 주도이념이 실종된 사상적 공백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은 이런 조선말기 후반기 화단의 풍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화가이다. 그는 천부의 재능으로 인물·?산수·?화조 등 다양한 화재를 능란하게 다루어 그림 수요에 부응했지만,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장승업의 성과와 한계는 조석진(趙錫晋, 1853-1920)과 안중식(安中植, 1861-1919) 등에게 계승되어 근대기 전통화의 흐름을 주도했지만, 망국기(亡國期)의 혼란상을 반영하고 있다.


Ⅴ. 연계 프로그램
1. 간송미술관 학예 연구진의 특별 강좌(격주 토요일)
2. 어린이 체험 교육 프로그램(상시)
3. VR 보화각 가상 체험 ZONE
최상룡 (ks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