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돌방전설과 의릉골전설이 전하는 의송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11) - 의송리

2025-04-19 오전 10:23:20

▲ 의송리 전경 


 

에필로그

 

의송리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로, 압독국 시절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아온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에는 의릉골과 돌방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며, 김유신 장군이 머물렀다는 이야기와 여우가 출몰했다는 야시전설이 마을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넓은 들판과 저수지,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 등 자연환경 또한 의송리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전설과 역사,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의송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의송리 행정지도 

 

 

역사와 유래

 

의송리는 처음 압독국, 신라 때 장산군, 고려 중기 이후부터 조선 초까지 경산현 동계 마사리 영역이었다. 조선 초 마사리가 분할되면서 경산현 동면 의릉리(義陵里)가 되었다. 19세기 중엽 경산현 동면 의릉동이 되었다가 1895년 경산군 동면 의송동(義松洞)이 되었다. 1914년 압량면이 생기면서 경산군 압량면 의송동이 되었다. 해방 후에도 이 체제는 이어지다가 1988년 압량면 의송리가 되었다가, 2020년 압량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압량읍 의송리가 되었다. 마을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자료는 일본 텐리대 소장 경산현지(1769)이다. 이 마을은 의릉골과 상동 두 개의 각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의송리 지적도(1912)

 

의릉골·의릉동·의송동

 

▲ 의릉골 전경 

 

마을 동남쪽 야트막한 구릉에 옛날부터 큰 무덤이 있었다. 이 무덤을 의릉(義陵)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무덤을 의릉이라 명명한 사연은 전하지 않는데, ‘또는 이라 하지 않고 이라 한 것으로 보아 심상찮은 무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측건대 압독국 시대 왕의 무덤이었다가 조선 후기 의릉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어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의송동으로 개칭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온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상동

 

▲ 상동 전경 

 

상동은 의송 동북쪽 선화리 경계 지점에 마을이 형성되어 위에 있는 동네라 하여 상동으로 불렀는데, 정식 마을은 아니고 의송리에 속한 작은 각단이다.

 

▲ 의송리 지명 지도 

 

 

의송리의 산곡과 들판

 

▲ 돌박등 전경 

 

의송리에는 높은 산은 없고 나지막한 등성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상동 북쪽 돌이 박혀 있는 곳이라 하여 돌박등, 동북쪽 등성이가 길다고 하여 진등이 있다. 해발 60m 정도 되는데 지금은 공장이 들어와 구분이 어렵다.

 

▲ 약숫골 전경 

 

골짜기는 마당배미 북쪽 밭 밑이라 하여 밭밑골, 상동 서쪽 서당이 있어서 서당골 등이 있고, 의송 동남쪽은 약숫골 또는 야시굼이라 하였는데, 약수터 또는 야시(여우)가 있었다고도 한다. 또 상동 서쪽은 중골이라 하고, 마당배미 동쪽 홈통을 걸어 놓았다고 하여 홈걸이라는 골짜기도 있었다.

 

▲ 상동못밑들


 

▲ 약수골못밑들 

 

논밭으로는 마당처럼 넓고 펀펀한 마당배미’, 동신지 서쪽 실겅처럼 높이 있다고 하여 실겅배미’, 상동못 밑에 있다고 하여 상동못밑들’, 약수지 못 밑에 있다고 하여 약숫골못밑들’, 선화리 누불못(와지) 밑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누불못밑이라는 밭이 있었다.

 

▲ 회화나무 

 

또 여기에 있는 회화나무 4본은 경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519번지 회화나무 한 그루는 매년 당제를 지내는 당목이었는데 현재 없다. 또 의송리 동남쪽에 있던 깔맷샘은 들 가운데 있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의송리의 저수지

 

▲ 침법지 전경 

 

의송리에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침법지, 약수지, 동신지, 무명지 등 4개의 저수지가 있었고, 생활권으로는 선화리의 입지(사제)와 와지(누불못)도 의송리에 속한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저수지는 침법지인데, 경산현읍지(1758)부터 침법제(針法堤)로 등재되어 있어 1518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저수지는 축조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름이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저수지의 한쪽 끝이 바늘처럼 뾰족하다고 하여 바느리못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침법이 되었다. 일설에는 못의 모양이 바늘처럼 길쭉하여 바느리못이라 했다고 하는데, 실제 모양은 바구니처럼 둥글다. 오히려 바늘처럼 길쭉한 저수지는 금구리의 연밭이다. 읍지에서 침법지는 현청에서 17, 건흥지는 20리 거리에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도 침법지가 더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지지자료에도 침법지는 금구동에 있다고 등재되어 있다. 아무튼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름이므로 의송리의 못을 침법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못 가운데 태양열판을 설치해 두었다.

 

▲ 약수지 전경 

 

약수지는 현읍지에는 등재되지 않고 1912년 지적도에는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의송리 동남쪽 약숫골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작았는데, 일제시대 준설공사를 하여 현재의 크기로 확장되었다.

 

▲ 동신지(상동못) 전경 

 

동신지(상동못)는 일제시대에 축조되었는데, 의송리 50, 51번지에 걸쳐 있다. 이외 의송리 4번지에도 자그마한 저수지가 일제시대까지 있었는데, 현재는 공장이 들어와 매립된 상태다. 이러한 마을에 옛날부터 김유신 장군 전설과 의릉골 전설이 전하고 있어 멀리 압독국이나 신라 압독주 시절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김유신 장군이 쉬었다는 돌방전설

 

▲ 돌박등 전경

 

의송리 주변은 과거 마사촌이라 하였는데, 말이 훈련하던 곳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선화리에 속하여 경산병영유적 제3연병장 또는 두락산이라 부른다. 이 두락산 남쪽에 와지(누불못)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 남쪽 27번지 일대 등성이를 마을 사람들은 넓적한 돌이 박혀 있다고 하여 돌방 또는 돌박이라 부른다. 모양이 방처럼 평평하고 널찍하여 돌방이라 하였다. 이 돌방은 압독주 군주였던 김유신 장군이 군사 훈련하다가 피곤하면 쉬었던 곳이라고 한다.

 

▲ 돌방 바위

 

또 이 돌의 가운데에 줄무늬가 있는데, 김유신 장군이 쉬면서 흘린 땀방울이 모여 골을 이루며 파였다고 한다. 현재 이 돌은 청동기시대 지석묘로 밝혀졌는데,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주둔했을 때 휴식을 취한 장소로 여겨진다. 이 지역에 김유신 장군이 주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므로 이러한 전설이 의송리에 전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의릉골 야시(여우) 전설

 

▲ 약숫골 전경 

 

의송리 동남쪽 약수지가 있는 곳에 나지막한 등성이가 있는데 이곳에 옛날부터 큰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약수터가 있어서 약숫골, 야시(여우)가 있어서 야시굼이라고 했다. 이 골짜기에 여우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약숫골에는 옛날부터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이 여우들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자주 괴롭혀서 대낮에도 잘 접근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여우가 이 고개를 넘어가던 나그네를 해치려 하자, 지나가던 포수가 이를 보고 활을 쏘아 여우를 죽였다. 그러자 죽은 여우의 암컷이 사람으로 변신하여 포수에게 복수하고 그 후로도 계속 사람들을 해쳤다.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거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선비가 나타나 여우의 한을 풀어 주자, 그때부터 여우는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 마을은 다시 평화로워졌다고 한다(압량면지참조).

 

 

에필로그

 

시간이 흘러도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의송리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압독국부터 조선,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유신 장군이 쉬었다는 돌방, 이름조차 특별한 의릉골, 그리고 여우 전설이 전하는 약숫골 등 이 모든 것이 모여 의송리만의 고유한 역사를 이룬다. 이제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전하며, 후대에도 전통과 정체성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 이홍우(자인의 역사저자)

사진 : 이홍우/양재완 작가

 

<사진 자료>

 

▲ 의릉동
 
▲ 돌방동 
 
▲ 의송동
 
▲ 실겅배미 
 
▲ 약숫골못밑들
 
▲ 약수지
 
▲ 침법지 
 
▲ 와지 
 
▲ 와지 정자
 
▲ 돌방바위
 
▲ 의송리회관
 
▲ 의송보건진료소 


 

경산인터넷뉴스 (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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