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아래로 사라진 밀양박씨의 고향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진량읍 편(20) - 대원리

2026-06-18 오전 8:45:27

▲ 진량읍 대원리 마을 전경 

 

 

프롤로그

 

196·70년대 산업화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도로와 통신이 발달하다 보니 이제는 땅값이 싼 농촌에 산업단지라는 이름을 붙인 공단이 대규모로 조성되고 있다. 그 결과 천수백 년 된 씨족사회의 터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 진량공단으로 시작한 경산의 산업단지는 경산제4일반산업단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장과 사람들이 몰려와 진량은 급속하게 도시화되고, 또 지역경제는 성장하고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고향 상실로 도시의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서 쓸쓸하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대표적인 마을인 대원리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 대원리 행정지도 

 

 

역사와 유래

 

대원리는 원래 압독국 마진량현에 속한 촌락이었다. 신라에 복속된 뒤 압독주 마진량현에 속했고, 고려 초 구사부곡으로 강등되어 1018년 경주부 관할 부곡이 되었다. 1653년 경주부에서 독립한 구사부곡은 자인현 하북면이 되었는데, 이때 대원리는 하북면에 속했다. 18세기 행정구역 명칭 개편 때 하북면은 북칠동북종동까지 4개 동으로 나뉘고, 대원리는 안촌, 속사곡리(속초), 신제내리 등과 함께 북팔동에 속하면서 죽원곡리로 변경되었다. 1888년경 죽원곡리는 대원리로 환원되었지만 죽원과 혼용되었다. 1895년 자인현이 자인군으로 바뀌면서 하북면이 중북면과 하북면으로 분리될 때 다시 죽원동이 되어 중북면에 소속되었다.

 

▲ 대원리 지적도(1912)

 

1911년 동리 통폐합 때 다시 대원동으로 바뀌었다가, 1914년 부군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진량면에 편입되어 진량면 대원동이 되었다. 해방 후에도 진량면 대원동이라 하다가 1988년 대원리가 되었다. 1990년 진량공단(경산1산업단지)에 대원리 일부가 공단 부지에 수용되었다가 2005년 경산3일반산업단지에 또 수용되어 천수백 년 존속하던 마을은 사라졌다. 이 마을은 윗각단, 아랫각단, 뒷메, 큰당골 등 네 개의 각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대원리 표지석 
 

▲ 폐촌 전 대원리 버스 정류장 

 

대원·대안·죽원

대원리(大院里)의 존재는 호구총수(1789)에 처음 보인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굴조사 결과 드러났다.

 

▲ 대원리 유적(출처:한빛문화재연구원)

 

대원의 유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옛날 이곳에 대원사(大院寺)라는 절이 있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고려 때 여행자 공공숙소인 대원(大院)이 있어 대원리가 되었다고 하는 설이다. 고려 때는 원()을 사찰에서 관리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둘 다 설득력이 있는 유래설이다. 대원이 사투리화하면서 대안으로도 불렀다.

 

▲ 현재 대원리 마을 

 

그러다가 19세기 중엽 자인현읍지(1832)에서 대원리는 죽원곡리(竹院谷里)로 바뀌었다. 바뀐 사연은 알 수 없는데, 마을에서는 대원군 이하응의 군호와 같아서 바꾸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는 1864년 이후이므로 동음현상으로 인한 민간어원설로 추정된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죽원동이 되었다.

 

▲ 대원리 마을회관 

 

그러다가 1911년 동리 통폐합 때 원래 이름인 대원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8년 마을이 폐촌되면서 서쪽 황제리 쪽에 새로 마을을 조성하여 대원리라 하고 있다. 이 대원동 안에 여러 각단이 있었다.

 

▲ 큰마을 터 

 

▲ 폐촌 전 대원리 

 

윗각단·큰마을

윗각단은 대원리 220번지 일대에 있던 각단이었다. 현재는 412번지로 바뀌었다. 대원리에서 가장 큰 각단이라서 큰마을이라고도 불렀다. 밀양박씨 박운달이 사화를 피해 청주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밀양박씨 요산문중 큰집이 있던 각단이었다. 1912년 당시 11가구 살았으며, 1990년대 23가구로 늘어났다. 2008년까지 마을이 존속하다가 폐촌되었다.

 

▲ 아랫각단 터 
 

▲ 폐촌 전 마을 

 

아랫각단

아랫각단은 윗각단 동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윗각단에 살던 밀양박씨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촌락이 형성되었다. 윗각단 아래에 있다고 하여 아랫각단이라 하였다. 밀양박씨 요산문중 작은집이 있었다. 1912년 당시 7가구 살았는데, 1990년대 18가구로 늘어났다. 모두가 밀양박씨다. 이 역시 2008년까지 마을이 존속하다가 폐촌되었다.

 

▲ 귀메골 터 

 

뒷메·귀메골

 

뒷메는 귀메라고도 하는데, 아랫각단의 동쪽 귀메골에 있던 촌락이었다. 1912년 당시 7가구 살았다.

 

▲ 큰당골 터 

 

큰당골

큰당골은 큰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옛날 이곳에 큰 불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큰당골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몇몇 가구가 살았다. 큰당골못 옆이다. 1912년 당시 4가구 살았다.

 

▲ 대원리 지명지도 

 

▲ 1950년대 대원리 항공사진 

 

 

삶의 터전과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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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갓산 

 

대원리는 북쪽으로 낙산, 남쪽으로 약간의 논밭이 있었다. 마을은 세 갈래로 된 골짜기 안에 형성되어 예로부터 산과 골짜기, 고개에 관한 이름이 많았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대원 남쪽 맨 가쪽에 있던 갓갓산, 귀메골 서쪽의 개잔만딩이, 불싼골 동북쪽 서당이 있었다는 서당갓, 큰등만딩이, 명당만딩이 등이 있었다.

 

▲ 온두밭골 터 

 

골짜기로는 큰당골 동쪽 부인들이 불을 켜 놓고 소원 성취를 빌었다는 불싼골, 서당이 있었다는 서당갓의 서당골, 대원 북쪽 불당이 있었다는 큰당골, 대원 서북쪽 온두밭골 등이 있었다.

 

▲ 황지고개 터 

 

고개로는 대원 동쪽 귀메로 넘어가는 귀메고개, 대원 북쪽 낙산리로 넘어가던 낙산고개, 대원 서북쪽 신제리 못의 매래 옆에 있던 매랏개고개, 서쪽 황제리로 넘어가던 황지고개 등이 있었다.

 

▲ 폐촌 전 대원리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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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끼배미 터 

 

논으로는 북쪽 큰당골못 동쪽 지형이 멍에처럼 생긴 멍애배미, 멍애배미 서쪽 지형이 갈모처럼 생긴 갈모배미, 갈모배미 동남쪽 바위가 있었다는 방구배미, 멍애배미 남쪽 지형이 미꾸라지 모양으로 꾸불꾸불하였다는 미꾸라지배미, 미꾸라지배미 동남쪽 소 코뚜레처럼 동그랗게 생겼다는 귀끼배미, 귀끼배미 동남쪽 지형이 광어처럼 생겼다는 광애배미 등의 논이 있었다.

 

▲ 회남걸 터 

 

들판으로는 대원 동쪽 새도랑보의 물을 대던 새도랑들, 아랫각단 동남쪽 회나무가 있던 아릿각단회남걸, 웃각단 동남쪽 회나무가 있던 웃각단회남걸, 큰당골못 밑에 있던 큰당골못바지, 대원 동남쪽 지형이 활처럼 휘었다는 활곡들 등이 있었다.

 

▲ 활곡들 

 

이외 대원리에는 윗각단과 아랫각단에 각각 커다란 회화나무가 서 있었다. 전통적으로 이 회화나무에서 마을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산업단지 밑으로 사라진 500년 밀양박씨 문중의 흔적

 

▲ 다문리 괴정 

 

요산 박운달과 죽고 박응득의 삶

박운달(朴雲達)은 자는 달지(達之), 호는 요산(樂山)이다. 박눌생의 5세손으로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한양에서 출생하여 1516년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과 사포서 별감, 봉상시 주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갑자·기묘 사화를 피해 청주로 이거하여 살다가 50세 무렵 당시 경주부 구사부곡 대원리로 들어와 살았다. 그래서 밀양박씨 규정공파 자인 입향조로 추앙받고 있다.

 

▲ 시문리 율산서원 

 

▲ 마곡리 원모정 

 

후손들은 각기 다문리 괴정, 속초리 경사재, 석천정, 경모재, 시문리 율산서원, 마곡리 원모정, 압량 신월리 영모재 등을 짓고 공동으로 그를 추향하고 있다.

 

▲ 원리세고 

 

특히, 율산서원의 경우에는 1983년 대원리에서 제목을 딴 원리세고(院里世稿)를 출간했는데, 이 안에 박운달의 글이 실려 있다. 그의 묘는 현재 현내리 영청골에 있다. 원리세고에 수록된 박운달의 유행대(留行臺)라는 한시를 인용한다. ‘유행대는 진량읍 내리리 금호강가 구연정 오른쪽 절벽을 가리킨다. 예부터 이곳에 하양과 자인의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긴 곳이다.

 

산수 사이 오솔길 그윽하게 이어지고,           山水中間一逕微(산수중간일경미)

빼어난 경치에 차마 돌아가지 못하네.     奇觀令我不能歸(기관령아불능귀)

걷고 또 걸어 층대 위에 올라 앉으니,     行行到得層臺坐(행행도득층대좌)

봄 단장한 꽃과 버들 비단처럼 빛나네.    花柳春粧錦繡輝(화류춘장금수휘)

 

한편, 박운달의 증손인 박응득(朴應得)이 있었다. 자는 응직(應直), 호는 죽고(竹皐)이다. 부친은 박번(朴蕃)이고, 1578(무인년) 대원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래로 광덕(光德), 천득(天得) 두 동생을 두었다. 어릴 적 집에서 수학하다가 1591년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화왕산 곽재우 장군의 진영으로 가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공산성, 울산 도산성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 박응득 초사 

 

특히, 울산 도산성 전투에 참가하던 1598년 주부 손시(孫時)가 노비 매매 입안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그의 직함은 훈련원 부장이었다. 현재 그의 임란 의병 참가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자료가 울산 전투에 참여했다는 유일한 근거이다. 다만 당시 문서에는 그의 나이가 38세로 기록되어 있어, 현재 알려진 1578년생이라는 기록과는 차이를 보인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45일간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위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다가 1639년 별세하였다. 묘는 신제리 신제지 옆 두리봉[원봉]에 있었는데, 1974년 정화식이 찬한 비석을 세웠다. 2017년 산업단지에 수용되어 마곡리로 이장하였다.

 

죽포 박천득을 추향하던 영사재

 

▲ 영사재 

 

대원리 아랫각단에는 밀양박씨 죽포(竹圃) 박천득(朴天得)을 추향하는 영사재(永思齋)가 있었다. 박천득은 박운달의 증손으로 박번의 셋째 아들이다. 위로 응득, 광득 두 명의 형이 있었다. 영사재는 192912대손 박유정이 건립하였다. 대문은 석류문(錫類門), 마루 전면 벽에 영사재상량문, 영사재기, 오른쪽 벽에는 영사재원운, 근차영사재운, 영사재차운, 왼쪽 벽에는 경차영사재운등이 걸려 있었다. 이 재실은 경산제1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설 당시만 하더라도 있었는데, 2005년 경산제2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폐철되었다. 흔히 작은문중이라 일컫는다. 박천득의 묘는 현내리 영청골에 있다.

 

구산박씨(밀양박씨 구산공파) 박만유를 추향하던 학명재

 

▲ 학명재 

 

대원리에는 구산박씨 회곡(晦谷) 박만유(朴萬裕, 1702?)를 추향하는 학명재(鶴鳴齋)도 있었다. 박만유는 자는 미수(眉壽), 초명은 만년(萬年)이었다. 증조부는 훈련원 첨정을 지낸 박관(朴瓘), 조부는 현감을 지낸 박경응(朴慶應), 부친은 인의를 지낸 박형(朴泂)이었다. 24세 때인 1725(영조1) 을사증광시에 3등급 2위를 차지하였다(의과방목). 구산박씨의 관향인 의흥현(현 군위군 의흥면)에 살다가 자인현 대원리로 이거하여 은거하였다. 학명재는 1954년 후손 박태홍(朴泰洪), 박석조(朴錫祖) 등이 건립했다. 6년 후 1960년 최상규(崔相圭)가 쓴 학명재기가 있었다. 이 재실 또한 대원리가 공단에 수용되면서 폐철되었다.

 

 

에필로그

 

500여 년 동안 밀양박씨들이 세거한 대원리는 1990년대부터 조성된 3차례 산업단지로 조금씩 사라지다가 20174차산업단지를 끝으로 완전히 없어졌다. 산업관리공단에서는 서쪽 도롯가에 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주거지를 마련하여 대원리라 이름하고 마을회관까지 지어 놓았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10여 가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인근 황제아파트나 진량과 경산 등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결과 명절날 고향을 찾던 아름다운 풍속은 찾아볼 수 없고, 골짜기마다 밀양박씨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던 곳은 날카로운 공장 쇳소리만 가득하다.

 

: 이홍우(자인의 역사저자)

사진 : 이홍우/양재완 작가

 

<사진 자료>

 

▲ 진량읍 대원리 마을 전경 
 
▲ 대원리 마을
 
▲ 대원리 마을 골목 
 
▲ 대원리 
 
▲ 대원리 회관
 
▲ 대원보건진료소
 
▲ 진량어린이공원
 
▲ 속초교
 
▲ 큰마을 터
 
▲ 큰등
 
▲ 큰당골
 
▲ 회남걸
 
▲ 아랫각단
 
▲ 서당골
 
▲ 서당갓
 
▲ 불싼골
 
▲ 명당만당이
 
▲ 미꾸라지배미
 
▲ 새도랑들


 

경산인터넷뉴스 (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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