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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12-09 오후 5:24:00

獐山城을 발굴하여 경산의 뿌리를 찾자
[독자기고] 최정환 경북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8-09-26 오전 11:01:51









▲ 최정환 경북대 명예교수




경산이란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고려 말 충선왕 즉위년(1309)이었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의 이름자 장()을 피하여 장산군(章山郡)의 장산(章山)을 경산(慶山)으로 고쳐 부른데서 경산이란 지명이 유래된 것이다. 그 이전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757)에는 장산군(獐山郡)이라고 하였다. 장산군 관내에 해안현(解顔縣) 여량현(餘粮縣) 자인현(慈仁縣) 3(領縣)을 거느리고 있었다. 오늘날 경산을 비롯하여 대구의 동촌 진량 자인 그 일대의 영역이 당시 장산군의 관할 아래 있었던 영현(領縣)이었다. 장산군이 신라 사로국의 통치 범위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이전에는 압독국(押督國)이라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초기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곳이다.

 

압독국이 사로국에 복속된 지미왕대(122~134) 이후 압독군이라 하다가 경덕왕 16(757)에 장산군(獐山郡)으로 개편하였다, 고려 태조 23(940)에 장산군(獐山郡)의 장()을 장산군(章山郡)으로 고쳤다. 고려 말에 충선왕이 즉위(1309)하자 왕의 이름자 장()자를 피하여 장산군(章山郡)의 장산(章山)을 경산(慶山)으로 고쳐 부른데서 경산이란 지명이 유래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록상 장산성을 용산성이라 부른 적이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장산성이 곧용산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무열왕 3(656)에 축조된 장산성을 용산성(龍山城)으로 이해하려는 견해가 피력되어 있다. 김약수, 장산성 위치고경산문학2, 경산문학회, 1986. 210쪽에서 장산성을 용산성(龍山城)이라 하였고, 경산 용산성 지표조사보고서(대구대학교 박물관 1993), 24쪽에서 장산성은 곧 용산성이라고 하였다. 이 견해는 오늘날 경산의 기원인 장산(獐山)을 용산으로 보아 용산이 경산의 기원이라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신라 경덕왕 16(757)에 압독군을 장산군으로 개편하고, 장산군 안에 3개의 영현(領縣) 즉 해안현, 여량현, 자인현을 설치하였다. 3개의 영현은 모두 장산군의 영현이며. 용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현이다. 이로보아 장산성이 곧 용산성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경산의 별호를 옥산이라 하였다고 하는 것은 옥산이 골 바로 경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산은 고려 말 공양왕 2(1390)에 왕비 노씨의 고향으로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는 경산군으로 승격되고, 별호를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다시 현령으로 낮추고, 별호(別號)를 여전히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이것은 곧 경산이 옥산임을 말해준다.

 

태조 원년에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가 즉위하자 경산현으로 강등되고, 별호는 여전히 옥산으로 하였으며, 경산을 지키고 보호하는(鎭護) 중심이 되는 진산(鎭山)을 마암산(馬岩山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경산현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하양(河陽)에 이르기 15, 서쪽으로 수성(壽城)에 이르기 16, 남쪽으로 청도(淸道)에 이르기 21, 북쪽으로 해안(解顔)에 이르기 15리라고 하였다 오늘날 옥산동의 위치도 대략 이와 비슷하다. 이로 보아 경산현의 위치는 앞서 지적한 용산이 아니라 옥산이라는 사실을 유추하게 한다. 또한 이것은 최치원이 찬술한 팔각등루기에 대구 수창군 호국성(감영이 있는 대구읍성)의 동쪽에 장산(獐山)이 있었다는 사실과도 위치적으로 부합된다.

 

경산현에는 역()이 하나로 압량(押梁)에 있었고, 봉화가 한곳으로 성산(城山)에 있었으며, 경산현 서쪽에 있었다. 동쪽으로 하양(河陽) 시산(匙山)에 준거하고, 서쪽으로 수성(壽城) 법이산(法伊山)에 준거해 있었다고 하는 바 성산에 봉화 터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주목되는데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장산군 즉 경산군의 별호인 옥산과 성암산 주변의 지표조사를 하여 장산성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봉화 터가 있었다는 성산(城山)을 비롯하여 경산의 뿌리가 되는 장산(獐山)과 경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진산(鎭山)인 마암산을 조사하여 경산의 정체성을 올바로 밝혀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경산시 행정 당국은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학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모아 경산의 정체성을 올바로 밝혀내주기를 바란다.

 

 

 

문학박사 최정환(崔貞煥)

-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 경주최씨 경산종친회회장

- ()한국중세사학회회장, 대구사학회회장, 경북대학교박물관장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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