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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8-23 오전 11:48:00

최고의 생존비법
[독자기고] 석문희 작가

기사입력 2019-01-18 오후 1:30:21

조금의 관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따뜻한 계절에 주유소 주유기 앞에 까맣게 점점이 떨어져 죽어있는 벌들의 시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휘발유나 경유, 등유와 같은 화석연료에서 유독 가스라도 나오는 것일까?

 

원인은 의외의 것에 있다. 바로 화석연료인 휘발류나 경유, 등유에는 단맛이 살짝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벌은 그 단맛을 보기 위해 주유소의 주유기 근처로 몰려들어 기름을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벌들은 과식(?)을 한 나머지 몸이 무거워 날지 못하고 떨어져 죽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름에 섞여있는 단맛은 꽃의 단맛과 달리 유분이 다량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벌들은 미처 그런 점을 계산하지 못해 결국 자신이 부린 과욕으로 인해 죽게 된 것이다.

 

욕심, 그가운데서도 가장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욕구랄 수 있는 과식으로 죽게 된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과식이 곧 생존과 직결되는 자연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벌처럼 날개로 날아다니는 곤충들에게는 거의 치명적이다.

 

인간이나 유인원들처럼 머리를 써서 도구를 통해 자신들을 방어하는 짐승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들짐승과 날짐승의 생존은 몸무게에 민감하다.

 

말이나 사슴이 뚱뚱해서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라.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에게 금방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따라서 야생의 자연계에서는 체중이 다이어트나 건강, 미적인 문제를 넘어 생존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체중과잉은 결국 도태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약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맹수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식으로 인해 살이 찌면 빨리 달리는데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뜻이므로 먹이사냥에 불리해진다.

 

이렇듯 야생의 세계에서 적당히 가벼울 만큼의 적절한 체중 유지는 생존과 직결된다.

 

욕심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탐하거나 가지려고 하는 마음'이다.

인간사회에서 욕심은 그저 '좋지 않은 것', '나쁜 것', '가능한 절제해야 하는 것'으로서 도덕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야생의 자연에서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 도덕적인 훈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눈앞에 보이는 음식에 대해서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먹는 기술이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듯이. 엄혹하면서도 자비로운 자연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한 늘 먹을 거리 즐길 거리를 풍부하게 베푼다. 그러나 욕심을 과하게 부리는 순간 바로 생존을 어렵도록 장치를 해 놓았다.

 

말하자면 야생 동물의 생존에 당연하고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조건은 '그 순간''과하지 않을 만큼'만 먹고 절제할 줄 아는 방법인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지금, 여기'에서 과하지 않을 만큼 먹으며, 내 몸으로 감당해낼 수 있거나 취할 수 있는 만큼만 가지는 것, 다른 말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다음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생존비법인 것이다.

 

그러나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점점 야생의 생명들과는 격리되는 길을 택한 인간들만이 '닥치고 빼앗고 긁어모으고 탐욕을 부리고 축적해 둘수록'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으며 권력과 함께 독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최고의 생존 비법이 야생의 여느 생명체들과는 반대가 되는 신천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신천지에서는 재산처럼 과도하게 몸에 살을 축적해 놓아도 생존에 전혀 지장이 없다. 다만 외관상의 문제만 있을 뿐.

이제, 인간에게 더이상 먹이 피라미드는 없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보다 더 탐욕스러운 인간일 뿐이다. 자연계의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인간은 인간끼리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한다. 더 많이 축적하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전쟁을.

 

그리고 얼핏 그 전쟁에서는 더 큰 권력을 가지고, 더 탐욕스럽고, 더 많이 축적하고, 더 많이 소유한 인간이 더 유리한 최상층을 점령한 것처럼 보인다. 야생의 세계와는 달리 말이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이런 시스템은 지구 자체를 점점 더 파멸에 이르게 하고 있다. 자신들이 발딛고 있는 땅을 파먹어들어가면서 하고 있는 생존경쟁과 다름없는. 그러니까 인간 역시 자연에서 많이 멀어졌다고는 하나 지나친 탐욕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종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닐까싶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몸에 살을 축적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해 다이어트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반면에 돈과 재산, 물질을 축적하는 것에 대한 인식은 아직 생기지 않은 탓인지 물질과 돈, 재산에 대한 다이어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외려 더 많이 갖기 위한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헬스를 비롯한 몸매관리나 다이어트 광풍 그 이면에는 몸의 상품화와 적잖이 관련이 있다. 즉 자신의 몸이든 타인의 몸이든 지나치게 육체에 민감한 현대인들은 상당수 자신의 몸을 자신이 바라는 사람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데서 한발 나아가 더 나은 상품가치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하는 다이어트란 다른 말로 더 크고 엄청난 탐욕을 향한 집념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하는 헬스와 다이어트까지 폄하할 생각은 없다. 사실 요즘 나는 지금까지 건강관리에 소홀해서 뒤늦게 후회를 하고 있다. 좀 이른 나이에 찾아온 오십견을 겪으면서 늦게나마 시간이 되는대로 하루에 30분 정도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자발적으로 운동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한 후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도 잘못 이해가 되었다. 분명 적당한 운동은 사람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하고 밝게 하는 측면이 있다. 운동 가운데서도 조깅이나 배드민턴, 탁구와 테니스처럼 야외에서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시간에 쫓겨사는 사람들에게는 헬스조차 규칙적으로 하기란 쉽지 않기에 적극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가끔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따뜻하고 볕이 좋은 날 조깅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어느 조깅 예찬자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조깅은 인간이 외부의 물건에 의존하지 않고 그 어떤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몸에 좋은 최고의 전신운동이라고 한다.
 

 

  ◆ 석문희 작가

  - 1976년 경산 출생

  - 1999년 대가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200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

  - 2014~2015년 테마여행신문 말레이시아 특파원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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