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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10-26 오후 5:16:00

남매지의 여름
[I LOVE 경산] 김영숙 작가

기사입력 2020-10-03 오전 8:33:27





삶은 희노애락의 연속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평화와 기쁨, 치유를 경험한다. 코로나19로 옥죄이던 불안감도 한고비 넘긴 듯 마스크 너머로 표정들이 한층 밝아졌다. 침묵에 잠긴 남매지를 깨우며 바람이 선선한 저녁이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갇혀서 운동에 목마른 사람들이 남매지로 쏟아져 나온다. 마술에 걸린 듯 타원형의 넓은 호수를 따라 팔을 흔들며 종종히 걷는 사람,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강아지 목줄을 쥐고 껑충거리는 사람들이 고단한 일상을 털듯 저녁 운동에 나선다.

 

데크를 가로질러 양쪽으로 연잎들이 이른 잠에 취해 이불을 펼치듯 물 위에 잎을 뉘인다. 불빛이 밝은 곳의 연들은 고개를 곧추세우고 왈츠를 추고 있다. 붉은 열정으로 한 시절을 풍미하던 장미도 마른 몸을 감추고 눈을 감는다. 양극성을 띠고 있는 남매지의 풍경이다. 장미 터널을 지나면 실버들 가지를 물위에 천만사 늘어뜨린 수양버들은 바람의 장난에 교태를 부린다. 색색의 조명을 받은 호수는 물비늘을 만들며 마술을 부린다.

 

사람들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출발선은 제각각 다른데 어느새 한 물결을 이룬다. 계단을 올라 수루에 서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매지에는 두 개의 달이 뜬다. 호수 속에 뜨는 달은 슬픈 전설을 담고 있다. 오빠를 출세시키기 위해서 누이는 남의 집에 팔려가서 종노릇을 하다 못된 주인에게 정조를 잃었다. 순결을 목숨처럼 여기던 때라 괴로움에 눈먼 엄마를 두고 연못에 몸을 던졌다. 딸을 찾아 나선 엄마도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어 따라 투신하고 만다. 몇 년이 지나 장원급제하여 집으로 돌아온 오빠는 소식을 듣고 비통함에 괴로워하다 가족이 없는 부귀영화가 부질없음을 한탄하다 연못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남매지의 전설이다. 오늘따라 물속에 비친 달이 누이의 넋인냥 슬픔을 머금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스물넷의 취업 준비생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취업의 문턱은 높았다.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연인들의 데이트는 소박하다. 영대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후문으로 나오면 남매지가 있었다. 여기 어디 쯤이였으리. 그는 키만큼 자란 갈대를 헤집고 평평한 바윗돌 위에 손수건을 펴주는 자상한 남자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든 곳. 연못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결을 날릴 때면 너 한테서 아카시아 향기가 난다며 속삭였다. 둘은 남매지 가에 앉아서 여름밤 하늘의 별을 몽땅 따다가 가슴에 쓸어 담는다. ‘저 별은 너의 별, 저별은 나의별음치에 가까운 목소리로 열심히 사랑의 세레나데를 열창한다. 유치한 사랑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남매지의 여름밤이 깊어갔다.

 

삼십육 년 전 덜컹거리는 택시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경산 삼풍동으로 시집을 왔다. 결혼 생활은 비포장도로 만큼이나 험난하고 힘들었다. 누님 가게에서 일을 배워 가게를 얻어 자립을 했다.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몇 번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웃 가게의 전기누전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던 가게가 불에 다 탔을 때는 앞이 깜깜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현실이었다. 남매지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그 남자와 살고 있다. 남매지도 그 사이에 둘이었던 연못이 하나로 합쳐지고, 주변에 관공서와 건물이 들어 섰다.

 

경산의 중심에 자리잡은 남매지는 특히 야경이 아름답다. 남매지의 하이라이트는 한밤의 분수쇼다. 저녁 여덟시쯤 터지는 멋진 분수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든다. 바람이 지휘하는 음악회를 보는 듯하다. 음악에 맞춰 무지개 빛깔의 물줄기가 하늘 높이 치솟을 때면 감탄사를 내지른다. 더위를 피해 모여든 사람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들썩인다. 이따금 얼굴에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 포화를 맞으려고 분수 가까이 다가선다. 물 위에 연잎들도 눈동자를 굴리며 바람과 더불어 춤을 춘다.

 

수 개월 동안 코로나 19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운동으로 숨통을 틔우고 있다. 아직 완전히 종식되진 않았지만 경산시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다. 걷고 있는 어느 구간에는 레이저 조명으로 함께 하는 희망경산이란 예쁜 문구로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소담길을 지나 느린 우체통 앞에 발길을 멈춘다. 내용을 읽어보니 엽서를 보내면 육 개월에서 길게는 일 년 후에 받을 수 있단다. 누군가의 배려인지 달랑 한 장 남은 그림엽서를 집어 든다. 수취인을 떠 올리려 용을 써 봐도 기억 속에 각인된 주소가 없다. 결국은 삼십육 년 전 그 남자에게 그날의 달콤했던 마음을 담아 빨간 우체통으로 밀어 넣었다. 경산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경산을 떠나본 적이 없는 그 남자와 엽서가 도착하는 여름이면 오랜만에 남매지로 나가 봐야겠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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