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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1-28 오후 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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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숲과 경산자인단오제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1-06-28 오후 2:28:40

구릉지의 이팝나무 군락지 계정숲
 



 

 

계정숲은 이팝나무 군락지다. 꽃이 피면 눈이 온 것 같기도 하고, 흰 구름을 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마솥에서 금방 퍼 담은 포슬포슬한 흰 쌀밥이 열린 것 같기도 한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언제부터인가 경산과 자인 사이 도로변 가로수도 이팝나무로 바뀌었다. 해마다 꽃이 만개할 즈음이면 나는 할 일 없이 고향 가는 길 위에서 서성인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밥나무가 되었다가, 눈꽃나무가 되었다가, 흰구름나무가 되기도 하는 나무를 지나 계정숲에 이르면 내 마음에도 어느새 꽃구름이 인다. 굴참나무,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가 어울려 함께 자라고 있는 계정숲은 1997년 경상북도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평지에 가까운 구릉지에 남아 있는 천연림군락지로 경상북도는 물론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자연숲이다. 어릴 적 우리들 놀이터였고, 여름방학이면 식물과 곤충채집 숙제를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매미와 잠자리, 메뚜기, 여치뿐만 아니라 풍뎅이와 장수하늘소도 만났다. 지금처럼 산책로가 조성되지 않아 가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는데 그때 우리는 서림숲이라 불렀다.

 



 

 

단오절을 앞두고 계정숲으로 향했다. 숲 앞 도로를 따라 길고 좁은 녹지에 자인을 상징하는 세 가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한장군 오누이와 여원화 상’, ‘계정들소리’, ‘자인팔광대동상이다. 갑옷을 입고 칼을 든 한장군과 누이 사이에 화관이 우뚝하다.

 

올해 경산자인단오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에서 관람이 불가하고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한다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다.

 



 

 

계정숲 표석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홍살문 왼쪽으로 줄지어 선 30여개 비석군이 보인다. 고을 원님의 선정비, 공덕비, 영세불망비를 읽고, 그늘이 우거진 오르막길을 잠시 올라 상석과 향로석, 석인까지 갖춘 한장군 묘 앞에 섰다.

 

▲ 한장군묘

 

 

신라 혹은 고려 때 인물로 알려진 한 장군은 이름도 모르고 이야기로만 전해오던 자인지역의 수호신 같은 존재다. 1968년 자인중·고등학교의 본관 신축 공사를 위해 땅을 파헤쳤을 때 두개골이 든 석실묘가 발견되면서 한장군의 실묘라 확정하고 이듬해 5월 계정숲으로 옮겨 묘를 썼다.

 

▲ 자인계정숲 시중당

 

 

묘 오른편 산책길을 따라가니 무형문화재 자인단오전수회관과 문화마당, 그 옆에는 장군의 위패를 모신 진충묘(盡忠廟)와 조선시대 자인현의 당우였던 시중당(使衆堂)이 자리하고 있다. 시중당은 1637년 지금의 자인면 신관리에 지어졌으나 고을 터가 옮겨지면서 원당리, 북사리로 옮겨졌고, 한때 자인중학교 교실로 사용되다가 지금 자리로 오게 됐다. 묘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돌면 씨름장이 있고 그네가 매여 있다.

 

▲ 진충묘

 

 

계정숲 앞 큰 도로 건너에는 삼정지(三政池)가 펼쳐진다. 새못이라 부르던 이 저수지는 제방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연잎 가득한 못 가운데 물 위로 솟은 작은 섬 하나, 물에 잠긴 곳은 석축으로 쌓았다. 이곳이 한장군의 말 무덤이라니, 어쩌다 장군의 말이 못 가운데 묻혔는지 알 수 없지만 무덤은 물속에서도 꼿꼿하다. 계정숲과 삼정지를 육교가 이어주고, 숲속에 누운 장군은 애마를 내려 본다.

 

 

한장군놀이 여원무

 

▲ 여원무

 

 

양손에 소고와 꽃을 든 여인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그 가운데 수백 개 꽃으로 장식한 초대형 화관이 함께 춤을 춘다. 침략자들을 유혹하려는 춤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장엄하고 비장하며 숭고하기까지 하다. 흥이 있지만 아픔과 눈물이 어린 듯 애잔하다. 온 힘을 다해 제 몸을 휘두르는 화관이 때로 힘에 겨워 휘청거린다. 탐욕에 물든 침략자들이 넋을 잃고 춤사위에 녹아드는 순간 화관은 갑옷을 입은 장군이 되어 응징의 칼을 빼든다. 자인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공부한 내게는 어릴 때 고향마을에서 자주 보던 친숙한 춤이다. 학창시절 언니들이 추었고, 친구들이 추었고, 동생들이 추다가 이제는 고향에 남아있는 중년의 그녀들이 추는 춤이다. 한장군놀이로 불리는 이 여원무는 경산자인단오 축제장의 하이라이트다. 전설에 의하면 여원무는 신라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춤이다. 도천산에 기거하던 한장군이 주민을 괴롭히던 왜구를 산 아래 버들못으로 유인하기 위해 누이와 함께 추던 춤으로, 장정들이 여자로 분장해 화려한 꽃관을 쓰고 못 둑에서 광대의 풍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왜적들이 이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여원무에 흠뻑 빠져있을 때 춤추던 한장군과 광대들이 무사로 변하여 왜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오늘날 여원무를 추는 대부분 춤꾼이 여성이지만, 핵심은 꽃관으로 몸을 가리고 추는 한장군 남매의 춤이다.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다시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복원은 1969년부터다. 197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 그 형태가 다듬어졌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어 있고 매년 단옷날을 전후해 3일간 열리는 고유한 민속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태평소, 꽹과리, 장구, 징 등 악사가 연주하는 느린 타령에 맞추어 추는 장군춤은 오색 꽃으로 장식한 높이 2m, 무게 25가량의 큰 꽃관을 쓰고 추는 춤이다. 꽃관 아래 달린 오색채의가 몸을 가려주어 춤을 출 때는 마치 꽃관만 움직이는 듯하다.

 

보통 사람은 들어 옮기기도 힘든 꽃관을 어깨 위에 얹어 양손으로 잡고 끝이 땅에 닿을 듯 360도 회전하는 동작이 여러 번 반복된다. 복원 당시 체육 교사였던 박인태 여원무 기능보유자가 직접 장군춤을 추었고 지역 중·고등학생들이 함께했다. 이후 지역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오고 있다.


 



 

 

이팝꽃 속에는 은빛 은어가 튀고

한편의 동화가 자란다.

해마다 단오절이 되어

꽃잎들 눈부신 드레스로 축제를 열면

동화 속 같은 세상 여원무가 보인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칼을 품은 모르디아나의 춤사위처럼

기러기 떼 하늘을 파먹으며 날아오르는

도천산 버들못 가에서

몸체만한 오색의 꽃관 속에

한 장군이 숨겨놓은 푸른 비늘 세운 은어가

왜적 무리를 섬멸하였다는 전설

거리엔 자동차바퀴들이 빠르게

세상을 돌리고 우리네 삶을 재촉하지만

나는 이팝나무 그늘에서

시간을 거꾸로 감으며 동화 속 세상에 젖어있다

꽃등()이 별처럼 불을 켠다

 

                                                                          엄혜숙 시인의 여원무
 

 

고된 농사일을 소리로 풀어낸 계정들소리

 

▲ 계정들소리

 

 

경산자인단오행사에서 관심을 모으는 또 다른 볼거리는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31호 계정들소리다.

 

유서 깊은 곡창지대인 경산 자인지방에서 농사철에 주로 불러오던 노동요로 고된 농사일을 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농사가 기계화되고 함께 부르던 농요도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지역의 한 공직자가 수집·정리하는 일에 나서면서 복원됐다. 1996년 자인면사무소 총무계장으로 재직 중이던 이상준 전수조교는 녹음기를 들고 마을 어르신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녹취했다. 면사무소 직원과 부녀회원, 현장에서 직접 부르던 어른들을 모아 소리꾼을 구성하고, 80여 명이 참가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소리 내용도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망깨소리, 보역사소리 등 11가지로 재구성하면서 2005년에는 경북도문화재로 지정됐다.

 



 

 

계정들소리는 경상도 내륙 지방인 경산의 지리 특성상 다른 지역 영향이 적어 고유한 선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경상도 주민 기질과 말씨의 억양을 닮아 꿋꿋하며 투박한 역동감이 넘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소리꾼은 대부분 자인 인근에서 농사짓는 5080대 남녀 지역민이다.

 

해마다 단오를 앞두고 34월에는 전승보전교육을 하고, 농한기에는 주민에게 전수교육도 한다. 고령자가 많아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만, 교육을 통해 새로운 회원을 영입하고 있다.

 

 

민속가면극 자인팔광대놀이

 

▲ 자인팔광대

 

 

민속가면극 자인팔광대놀이도 경산자인단오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한 장군 대제를 지낸 후에 마을 수호신인 장군을 추모하며 여원무와 함께 한 배우잡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36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겼다가 자인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향토사를 연구하던 이종대씨가 1985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1988년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광부장관상을 받으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공연자는 양반, 말뚝이. 본처, 후처, 줄광대, 곱사, 봉사, 박수무당 등 탈을 쓴 광대가 8명이며 악사 4, 기수 1명 등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문을 읽고, 간단한 고사를 지낸 후 악사를 앞세우고 연기자가 입장하여 전원이 무대에서 떠나지 않고 모두 함께 공연하는 것이 색다르다.

 

 

경산자인단오제의 무대 계정숲

 

▲ 계정숲으로 한장군대제 제관들이 걸어가고 있다.

 

 

단오가 다가오면 행사에 앞서 마을에서는 한장군 제례에 올릴 동동주를 담그는 신주 빚기를 한다. 단오제는 제사를 지내러 가는 제관들의 행렬로 시작된다. 호장장군행렬이라 부르는 긴 줄은 조선시대 사또 행차와 같은 격식과 채비를 갖추고 계정숲으로 향한다. 제관들은 한장군 사당인 진충묘에서 대제를 올리고, 이어 문화마당에서는 여원무와 자인팔광대놀이, 계정들소리 공연이 펼쳐진다. 시중당에서는 한장군과 누이의 충의를 기리고 주민들의 무사안일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단오굿판이 펼쳐진다.

 



 

 

숲 곳곳에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놀이, 널뛰기, 창포머리감기, 부채만들기, 그네뛰기 등 민속놀이와 씨름대회가 개최되고, 어린이들을 위한 백일장과 미술대회도 열린다. 지역 미술단체의 그림과 문학단체의 시화작품이 전시되며 숲은 온통 축제의 무대로 변한다. 기억해보면 여원무나 팔광대놀이가 처음부터 계정숲에서 열리지는 않았다. 학교 운동장이나 자인장터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 옛날 한장군 남매는 버들못 둑에서 여원무를 추었다는데 자인산업단지 조성으로 버들못은 메워져 사라지고 작은 모형으로만 남아있다.

 



 

 

단원이나 혜원의 풍속화를 보면 나는 지금도 고향 마을의 단오가 먼저 떠오른다. 일년 내내 집안일과 농사일에 쉴 틈이 없었던 어머니도 어느 해 단옷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양산을 받쳐 들고 나들이에 나섰다. 먼 곳의 친척들도 단오구경을 하려고 찾아와 하룻밤 묵어간 기억으로 보면 지역민들만의 축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대개의 민속놀이가 부락 단위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경산자인단오제는 자인면 전체 주민의 마음이 응집된 방대한 고을 축제다. 그래서 현장에서 즐길 수 없는 비대면 공연이 더욱 아쉽다.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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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애
    2021-06-28 삭제

    와 자인에 살아도 잘 몰랐던 전설을 풀어주셨네요엄혜숙시인의 여원무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아삼삼 아지랑이 피오르는 버들못가에 화환이 춤을 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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