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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금박산에 오르면~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2-05-31 오전 9:22:54

1. 아카시아 꽃향기 바람에 날리고

 

▲ 금박산 전경

 

 

금박산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제 각기 다른 명도와 채도의 초록빛으로 익어 산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고 노래였다. 오월의 산은 순후하고 청아하다. 초록의 나무와 잎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풍경은 자연의 물결이고 합창이다. 아직은 덜 달아오른 햇볕과 소슬한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드나들면서 왈츠를 추거나 잠시 멈추어 나그네를 환영해주었다. 강자가 산을 완전히 통치하거나 점령하지 않아 오월의 산은 평온하다. 비포장 산길은 완만하고 부드럽다. 금박산은 오랜 세월 객지를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듯 푸근하게 품어주었다.

 



 

 

산길로 접어들자 박하향 같은 피톤치드향과 강렬한 쥐똥나무꽃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성장기에 몸에 스며든 산내음과 발끝에 와 닿는 촉감은 잠자던 기억을 일깨운다. 초등학교 시절 봄소풍을 갔던 길도 이런 산길이었지. 금박산에는 산딸기가 지천이다. 산길 양 옆으로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를 따먹느라 자꾸만 발길을 멈춘다. 날이 가물어서인지 새콤달콤하다.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 산딸기는 먼저 보는 아이가 임자다. 어쩌다 풀숲에 숨은 산딸기라도 발견하면 가시에 손을 긁히면서도 따서 먹었다. 길가에 구절초가 피었다. 때이른 구절초가 반갑지만, 이것도 기후변화가 초래한 이색 풍경인 듯싶다.

 



 

 

토요일 오후 금박산을 오르는 주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중간 중간에 시에서 나무의자도 갖다놓고 운동기구도 설치해 놓았다. 주로 참나무와 아카시아 같은 잡목이 주종을 이루고 소나무도 보인다. 산길에는 마른 아카시아꽃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숲이 우거져 한낮에도 걷기가 수월하다. 금박산에는 뱀이 자주 출몰한단다. 그만큼 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날도 햇볕이 쨍쨍한 산길을 가로질러 뱀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간다. 다행히 뱀은 우리를 보지 못했다. 산에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쉬엄쉬엄 가다보니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나무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다보니 저만치 정상석이 보인다. 정자도 갖다놓아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해놓았다. 남서쪽으로 진량공단과 자인들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금호강과 팔공산이 보인다.

 



 

 

경산시내에서 금박산을 가려면 대원리에서 진량4공단까지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달려 다문리 들판을 지난다. 들에는 경산의 특산물인 대추밭과 복숭아밭이 즐비하다. 다문리(多文理)는 글공부하는 선비들이 많아서 다문리라 불렀다는 유래가 전한다, 인근 현내리 아사리 시문리 구릉지와 밭에서 삼국시대 석곽묘와 조선시대 수혈유구가 출토되기도 했다. 금박산이 자리한 진량은 청석지층이라 물이 귀하다. 용성 쪽에 샘이 잇었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금박산을 오르는 내내 계곡물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산을 올라갈 때는 반드시 물을 챙겨서 가야 한다. 산길 곳곳에 국가지점번호판이 설치되어 위급상황 때 구조를 요청할 수 있다.

 

▲ 금박산 정상

 

 

금박산은 경산시에서 신년 해맞이 행사를 하기도 한다. 지금은 나뭇잎이 무성하지만, 겨울에는 동쪽 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겠다. 산정의 바람에 땀을 식히며 쉬는데, 젊은 아버지와 중학생 아들이 올라온다.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요청하니 흔쾌히 응해주신다. 권대준(45, 압량면) 씨와 아들 민성 군(16)은 자주 금박산에 온다고 한다. 그는 진량청년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부녀회와 함께 해맞이 행사도 치뤘다. 해맞이를 하러 금박산에 오른 시민들에게 따뜻한 커피와 떡국을 대접하는데 일조를 했다. 산 정상 바로 아래 임도까지 짐을 차로 싣고 와서 준비를 한단다. 용성면 외촌리에서 임도를 이용한 차량 이동이 가능하다.

 



 

 

권대준 씨 가족은 봄가을은 매주 금박산에 오거나 한 달에 한번 씩은 꼭 온다고 한다. 완만한 산길이라 부담이 없고, 집과 가까운 곳이라 부담 없이 올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중학생인 민성 군에게 왜 금박산에 오느냐고 물어보니 공기도 맑고 풀꽃도 보고 산딸기도 따먹을 수 있어서 아빠와 자주 온다.” 라는 대담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금박산 산행을 자주 했으니 자연스레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졌을 테다. 먼 훗날 민성 군이 고향을 떠나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오른 금박산의 추억만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성 군이 전해준 초콜릿 과자처럼 행복한 여운이 남는 만남이었다.

 

 

2. 아침 안개 개어라 금박산정에

 



 

 

아침 안개 개어라 금박산정에 우리 기상 그대와 겨누어 보련다진량중·고등학교 교가 첫 구절에 나오는 금박산은 늘 가슴속에 살아있는 산이다. 진량공단 남쪽 도로를 따라 다문초등학교 방향으로 달리면 오른쪽에 금박산이 보인다. 진량공단을 볼 때마다 산정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난다.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고 하더니 작은 농촌마을이었던 진량읍은 거대한 공단지역으로 변천했다.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으나 금박산은 의구하다. 한국인에게 산은 물리적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국토의 70%가 산지지형인 조국에 태어났으니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산 하나쯤은 있을 터이다. 내게는 교가에 나오는 금박산이 그런 산이다.

 

▲ 금박산 등산로

 

 

금박산(金泊山) 진량읍과 용성면, 영천시 대창면의 경계지역에 있는 산이다. 산 이름을 명명할 때는 보통 지형이나 형세를 따서 짓는다. 산의 형세가 학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금학산(金鶴山)으로 칭하다가 훗날 금박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산 아래에 비석을 세우거나 기와집을 지으면 학의 머리가 무거워져 액운이 닥친다는 전설이 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던 산이기도 하다. 그만큼 금박산은 진량 지역민들이 예로부터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는 말이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이끌고 조선에 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은 조선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혈맥(穴脈)을 끊었다. 금박산 중턱 곳곳에도 혈맥을 끊은 흔적이 있다고 한다. 산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과 역사를 지배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살아있다. 특히 산촌마을 사람들에게 산은 정신적 의지처이자 삶의 궁핍을 해결하는 터전이기도 했다.

 



 

 

시문리에서 태어나 금박산을 놀이터 삼아 성장하신 김광윤(70, 하양읍) 어르신을 만나 금박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동무들과 금박산에 나무를 하러 매일 올라갔는데, 아이들은 주로 소나무 잔가지나 깔비라 부르는 마른 소나무 잎을 긁어왔다. 매일매일 땔나무를 해야 했던 시절, 금박산 사유지에는 산지기 노인이 있었는데, 고양이처럼 잘 본다고 동네에서는 꼬내기 할배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문중산을 보호하고 산소 주변의 도래솔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숲이 우거진 금박산 등산로를 걷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금박산 중턱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는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파여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장군의 오줌줄기가 바위를 뚫어서 생긴 흔적이라고 했다. 또한, 금박산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든다고 해서 묘를 못 쓰게 했다. 이런 금기도 금박산의 신성함을 지키려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아닐까.

 

▲ 부제지

 

 

김해 김씨 집성촌인 시문리 바로 앞에는 며느리못이라 부르는 부제지가 있다. 저수지 축조 때 마을의 며느리들까지 부역에 동원되어 앞치마에 흙을 담아 날랐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농경시대나 지금이나 치수(治水)는 생존과 직결되는 큰 사업이다. 오죽했으면 아낙들까지 동원하여 저수지를 축조했겠는가. 금박산 아래 동네인 시문리 동네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스한 천연 지하수였다. 그런데 마을 앞에 누군가가 지하수를 파자 그만 그 샘이 말라버렸다. 금박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걸어서 자인장, 하양장, 영천장을 다녔다. 금박산을 병풍삼아 살아온 동네 대부분은 진량4공단 조성으로 대부분 마을들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아사리와 시문리, 현내리 일부가 금박산 자락에 기대어 일부 남아있다.

 



 

 

금박산을 오르는 길은 세 갈래이다. 진량읍 현내리와 아사리에서 오르는 길은 정상까지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반면, 다문리에서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왕복 두 시간에서 세 시간 가량 걸린다. 그래서 시민들은 다문리 쪽에서 오르는 길을 선호한다. 쉴 수 있는 의자와 운동기구도 시에서 설치해 놓았다. 산 초입에 차를 주차할 수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한나절 산길을 걸으면서 힐링할 수 있으니, 해질 무렵인데도 산을 오르는 이가 보인다. 금박산은 지역민들에게 친근한 산이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뻐꾸기 소리도 들리고 초여름에 피는 풀꽃들도 만난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스며든다. 금박산과 함께 호흡하면서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금박산은 진량의 진산으로 시민들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 이운경(이경희)>
<사진 / 무철 양재완>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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