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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경산의 근대 유적을 찾아서
[경산곡곡 마을이야기] 경산현 읍치 이야기(3)

기사입력 2023-10-17 오전 8:31:45

조선 시대 경산의 중심지는 삼남·삼북동이었다. 1905년 경산역이 사정동에 들어서고 중방동을 가로지르는 신작로가 생기면서 주변에 있던 사정·서상·중방동이 경산의 중심지로 변했다. 그러다가 현재는 지하철 노선이 있는 정평·임당동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경산의 조선 시대 유적은 삼남·삼북동에 집중되어 있고, 근대 유적은 초기에 삼남·삼북동에 집중되어 있다가 점차 사정·서상·중방동으로 확대되었다.

 

- 용어정리 : 근대라 함은 19세기 말 대원군 집권기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를 가리킴.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를 흔히 일제강점기라 하나 여기서는 일제 시대 또는 왜정 시대라 함.

 

 

삼남·삼북동 근대 유적

 

 

 

 

일제시대 삼남동에는 행정 중심 기관이었던 경산군청, 경산면사무소, 경산군농회, 경산도서관이 관아 터였던 41·42번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산군청은 삼남동에 있다가 1936년 중방동으로 이전하였다. 경산면사무소도 처음 삼남동에 있었는데, 1921년 삼북동으로 이전하여 해방 때까지 있다가 그 후 서상동으로 이전했다. 경산순사주재소는 처음 삼북동 형방청에 있었는데, 1914년 경산경찰서로 승격되어 객관 터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서상동으로 이전했다. 경산 금융의 중심 기관이었던 경산금융조합은 처음 삼북동 250번지 객관 터에 있었는데, 이후 중방동(금포동) NH농협은행 자리로 이전하였다.

 

 

 

▲ 위 사진 : 1931년 경산군청년회관 앞의 청년회원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자인 출신의 3·1운동 독립운동가이자 근대 서화가인 황기식 선생이다.

 아래 사진 : 1935년경 경산교회 예배당. 여기에 경산기독청년회가 있었다.
 

 

삼북동 79번지에는 1909년 미국인 선교사 안의화가 삼북동교회(경산교회)를 설립했는데, 현재도 그 자리에 있다. 이외 1920년 설립된 경산기독청년회와 1921년 설립된 경산청년회도 이 마을에 있었다.

 

 

 

또 읍성 서문이 있던 삼북동 173번지에는 1921년 안태인이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잡화를 판매하는 안태인상점을 개업했는데, 현재 민가로 남아 있다.

 

▲ 위 사진 : 1926년 계양동 경산경찰서 동쪽 산(동산)에서 찍은 남매지의 모습이다. 이곳은 원래 청우동이었는데, 1914년 계양동이 되었다. 못가로 청우동 민가가 몇 채 보인다. 일제 초기에는 조선흥업회사가 관리하다가 이후 경산수리조합이 관리하였다. 1926년 공사비 7만 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준설 공사를 하고 난 뒤 찍었다. 경북의 8경에 입선될 정도로 풍광이 좋았다고 한다.

 아래 사진 : 2023년 남매지의 모습이다. 남매근린공원으로 명명되어 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

 

1925년에는 남매지를 비롯한 경산면 지역 저수지를 관리하고 소작료를 받던 경산수리조합이 설치되었다. 이 조합은 조선흥업주식회사와 결탁하여 경산면민들에게 과도한 소작료를 받다가 신문에까지 보도된 적이 있다(동아일보 1927.11.7.). 1961년 토지개량조합으로 바뀌어 경산군 전체를 관할하였다.

 

 

사정동 근대 유적

 

 

 

 

1905년 경산역이 생겨 정거동(停車洞)이라 불렀던 사정동 51번지에는 경상북도 개간회사 담당자였던 호리야 토라조오가 1907년 한국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처음 대구에 사무실을 두었으나 농업 경영에 중점을 두기 위해 경산역으로 옮겨 창고, 사무실 등을 개소하였다. 이 회사는 1910년 조선흥업주식회사에 합병되었다.

 

 

 

조선흥업주식회사는 철도역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여 지역 주민들을 소작인으로 고용하여 소작료를 챙겼다. 경산군 내에 경산농장, 압량농장, 하양농장, 자인·용성·남산 지역에 용남농장을 두고 소작인 2,100명을 고용하여 연평균 소작료로 벼 15,000석을 챙겼다.

 

 

 

 

경산역 구내에는 1905년 경산임시우체소(1906년 경산우편소)가 개설되었는데, 1910년 경산우체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5년 중방동으로 이전하였다가 현재는 사동으로 다시 이전하였다. 또 역 구내에는 1927년 준공한 경산군농회 창고도 있었다. 이 창고의 건축비는 경상북도 보조금과 지역 유지의 기부금으로 충당했고, 부지는 경산역 구내 빈터를 빌려 지었다.

 

 

 

역전 39번지에는 일본인 미츠나리가 운영하던 곡물신탁회사 광신상회가 있었다. 59번지(구 경산중, 현 장산중학교)에는 일본인 하마사키 키조오로가 미곡 및 기타 물품을 매매하던 경산공영합자회사(대정상회)가 있었다. 이 회사는 1912년 금포동에 개업했는데, 1919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역전 58번지(구 경산중)에는 일본 가고시마현 출신의 의사 구메 에이키치가 1914년 경산에 와서 자기 집에 의원을 개업하고 경산학교조합관리자 및 경산심상소학교 등 11개 학교의 공의(公醫)로 활동하다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의 취미는 정원 꾸미기였는데, 집 마당에는 자인현 유곡 신림사에 있던 각종 석물을 가져와 정원으로 꾸며놓았다. 해방 후 그의 집은 경산중학교 자리가 되어 석물도 학교 안에 있다가 계양동 정수장으로 옮겼다. 그 후 이 석물들은 경산시립박물관이 개관되면서 박물관 야외에 전시해 놓았다. 이외 사정동 45번지에는 남산면 조곡리에서 비석(비상)을 캐던 조곡광산 사무소가 있었다. 이 회사는 이나무라 젠사쿠가 1923년 설립했다. 또 조선총독부 물류검사소 경산출장소도 사정동 역전에 있었다. 이곳은 해방 후 농산물검사소 경산출장소로 바뀌었다.

 

 

서상동 근대 유적

 

 


 

 

서상동 24번지에는 일본인 소학교였던 경산심상소학교와 경산학교조합이 있었다. 경산심상소학교는 19086월 학생 수 25, 1개 학급으로 경산일본인회가 설립하였는데, 초대 교장은 야마구치 카츠조오였다(재한국본방인학사개황). 그는 이후 자인심상소학교 개교에도 관여하여 교장으로 부임했다. 이 학교는 1914년 경산심상고등소학교로 변경했다(조선총독부 관보). 이곳은 해방 후 경산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인 경산공립국민학교가 되었다. 그 후 학교는 중방동 현재 자리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읍으로 승격한 경산읍사무소가 들어섰다. 현재는 민간에 매각한 상태다. 경산학교조합은 일제가 경산 읍내 및 그 부근 1리 안에 있는 학교 관리를 목적으로 설립한 관립기관이었다. 특별히 사무실을 따로 두지 않고 소학교를 사무실로 이용하였다. 이 학교조합은 19107월 통감부가 인가하고, 초대 관리자를 일본 가가와현 출신으로 조선철도주식회사 간부이던 토오죠오 쇼오헤이를 임명하였다(통감부 공보). 서상동 18번지에는 1921년부터 경산경찰서가 있었는데 1999년 계양동으로 이전하고 현재 옥산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 바로 옆 19번지에는 1915년 대구지방법원경산출장소가 개설되었는데, 해방 후 등기소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경북자동차정비공업으로 바뀌었다. 서상동 읍성 서문 앞 77번지에는 1922년 김덕암이 동양잡화를 판매하는 김덕암상점을 개업했는데, 지금은 가정집으로 바뀌었다.

 

 

 

서상동 58번지에는 미키 켄키치가 남천면에서 색소 관련 광물을 채굴하던 남천광산 사무실과 남천색소연구소가 있었다. 또 서상길 도로에 편입된 71번지에는 대구에서 조선물산상회를 운영하던 오히라가 광산사무소를 차려 놓고 남천면에서 아연과 비석을 채굴하였다. 이외 1950년대 서상동 66번지에 경산농림상회가 있었고, 그 북쪽에 경일백화점도 있었다.

 

 

중방동 근대 유적

 

 


 

 

금포동이었던 중방동 350번지에는 1925년 일본 미에현 우지야마시 출신의 아지로 모리타미가 설립한 경산자동차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정류장으로 이용되었다. 삼남동의 이정훈은 1924년 동산 및 부동산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경산식산조합을 354번지에 개업하였다. 그는 1927년 경산금융조합장을 역임하게 된다. 339번지에는 삼북동에 있던 경산금융조합이 1927년 신청사를 지어 이전하였다. 1961년 농업협동조합이 되었다가 현재는 금융조합의 맥을 잇는 NH농협은행 중방동 지점이 들어서 있다. 길 건너 331번지는 일명 금포공원이라 불렀는데, 1936년 경산군청이 들어섰다가 현재는 백화점 건물이 세워져 있다.

 

▲ 위 사진 : 남매지에서 경산역까지 신작로가 생긴 후 만든 나무교각으로 된 ()금교(錦橋)의 모습이다. 1912년 준공하였다가 1915년 홍수로 무너지고 1916년 새로 준공한 모습의 사진이다. 이 다리도 1925년 홍수로 무너졌다. 금포동(錦浦洞) 금포공원 근처에 있다 하여 금교라 명명하였다. 뒤로 보이는 높은 산이 성암산이고, 그 아래 경산역이 있다.

 아래 사진 :19297()금교를 철거하고, 사카노구미라는 시공사가 시멘트 철골로 ()금교를 만들었다. ()금교의 목재는 1929년 홍수로 떠내려간 자인교를 복구하는 데 쓰였다(동아일보). 두 사진은 시대만 달리하여 같은 위치(금포공원, 경산군청)에서 찍었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아직 군청은 들어서지 않았다.
 

 

중방동 344번지에는 압량의 미키 켄키치가 1937년 개업한 경북원예주식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원예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중개하였는데 1940년 사정동 46-1번지로 이전하였다. 현재는 스포츠용품 가게가 들어서 있다. 340번지에는 1917년 개업한 선남식산주식회사가 있었다. 이곳은 원래 경산공영합자회사가 있었는데 사정동으로 이전하자 선남식산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는 요양원이 들어서 있다.

 

 

 

 

경산자동차회사를 설립한 아지로는 1928375번지에 주식회사 경산주조를 개업하였는데, 같은 해 자인지점양조공장, 하양지점양조공장도 동시에 개업했다. 이 회사는 1940년 경산의 안병규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는데, 지금도 같은 위치에서 업종을 바꾼 동일한 상호를 사용하는 회사가 있다. 이외에 아지로는 374번지에 경산광산도 설립하였고, 1932년 경산궁도회장을 중방동에 만들기도 하는 등 경산의 유지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박석규는 안병규와 함께 370번지에 1938년 주식회사 경일정미를 개업하였다. 해방 후에는 박종철이 운영하였다. 이외 현미공장도 여럿 있었는데, 하마사키 모리지가 1917년 개업한 하마사키정미소, 마루타 오토시가 1927년 개업한 마루타정미소, 경산주조 이사이던 카토 오린하치가 1914년 개업한 카토정미소 등이 대표적이다. 카토는 1932년 중방동 726번지에 합자회사인 카토상점도 운영하였다. 이외 1950년대 유적으로 경산군청 옆 333번지에 경문당인쇄소가 있었고, 동쪽 516번지에 경림제재소가 있었다. 경문당인쇄소는 현재도 운영하고 있다.

 

 

에필로그

 

경산현은 500년 조선왕조 치하 중앙의 관리들이 휘젓고 지나갔고, 또 그들의 잘못으로 국권이 빼앗긴 상태에서 일본인이 몰고 온 근대문화가 한바탕 휘날렸다. 일본인이 몰고 온 그 문화도 해방 후 미국인이 몰고 온 서구의 바람으로 하나둘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0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이다. 구한국 치하 경산의 근대문화를 일제 시대에 기록하지 못했듯이, 일제 치하 경산의 근대문화를 해방 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였다. 혹자는 일제 잔재라 하여 당시 유적과 삶은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하늘과 땅만 믿고 살아온 우리 경산 사람들의 삶의 일부분임은 틀림없다. 앞으로 또 어떤 바람이 불어와 휘젓고 갈지······. 수많은 바람을 오롯이 감내하던 그때 그곳에 살던 경산 사람이 그리워진다.

 

한 편의 시로 마무리한다.

 

경산 그 사람

 

잊었다고 잊었다고

그믐달처럼

정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초승달처럼

마음 한구석에 웅크려 있었네.

 

그립다고

복사꽃 다시 만나듯

눈물로 만나도

그리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으랴?

보고 싶다고

배꽃 흐드러지게 날리듯

온몸으로 안아도

보고픔이 이렇게 아련할 수 있으랴?

 

참으로 스쳐 간 사람

나 또한 봄바람처럼 흘러가는데

그대와 내가

소복 같은 하얀 종이 위 글로 만나

글이 복사꽃이고

글이 배꽃이니

일백 년 세월 짧다 해도

일천 년 밤새운들 어찌 다 풀겠는가.

 

/사진 : 이홍우(자인의 역사저자)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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