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전시관
- 글
일제의 수탈 흔적, 한국의 페스탈로치가 있던 양기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진량읍 편(8) - 양기리
기사입력 2025-11-15 오전 10:23:00

▲ 진량읍 양기리 전경
◆ 프롤로그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장 18절). 이 말씀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품어낸 한 사람의 실천을 떠올리게 한다. 경산 진량읍 양기리는 일제의 토지 수탈의 흔적이 남은 마을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의 ‘페스탈로치’라 불린 신영민 장로가 전쟁고아를 돌본 따뜻한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오늘은 양기리에 남아 있는 역사와 흔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 양기리 행정지도
◆ 역사와 유래
양기리(良基里)는 조선 후기인 18∼19세기에 조성된 마을로 하양현 중림면 양기리였다. 1895년 하양현이 하양군이 되면서 하양군 중림면 양기동이 되었고, 1911년 동리 통폐합 때도 그대로 양기동으로 유지되었다. 1914년 새로 생긴 진량면에 편입되어 경산군 진량면 양기동이 되었다. 1988년 양기리가 되었다가 1997년 진량읍 양기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jpg)
▲ 양기리 지적도(1912)

▲ 양기1리
▲ 양기·웃부태(양기1리)
양기(良基)는 ‘들’을 의미하는 ‘량(良)’에 터를 의미하는 기(基)가 결합되어 마을 이름이 되었다. 그러므로 양기리는 들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름은 부기리의 위(동쪽)에 있어 ‘웃부태’라고도 한다. 1912년 당시 41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마을 규모가 컸으며, 부기1리(부태)와 거리가 가까워 생활권이 같다. 현재 양기1리다.

▲ 양기2리
▲ 고아원마을(양기2리)
고아원마을은 양기리 본 마을 동남쪽에 6·25 때 월남한 사람들이 피란 와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1950년대 이곳에 고아원이 설립되어 일명 ‘고아원마을’이라고 했다. 현재 대동시온재활원과 양산협업단지가 있다. 또 장골 북쪽 양기들 일부가 코오롱인더스트리 공장에 수용되었다. 현재 양기2리다.

▲ 양기리 지명지도
◆ 삶의 터전과 흔적

▲ 곰뜨미 들판
양기리는 들판 가운데 있다 보니 산과 골짜기는 없다. 양기 동쪽 물이 더미에 부딪혀 곰돌아 나갔다는 데서 유래한 곰뜨미라는 더미는 문천지가 축조되면서 잠겼다. 이 곰뜨미 아래 들판을 곰뜨미들이라 불렀는데, 이 또한 문천지에 잠겼다.

▲ 무창지들

▲ 앞버던들
양기 서남쪽 북동의 무창지 물을 댄 무창지들, 남쪽 앞 버덩에 있는 앞버던들, 양기 북쪽 고래실로 고랫들 정도가 있었는데, 경지정리로 모두 잊혀졌다.
%5D.jpg)
▲ 외적제와 조선달못 지적도(1912)
.jpg)
▲ 외적제 터(양기리 서남쪽 마을과 공장 사이 들판)
양기리의 대표적인 저수지는 구번지로 292번지에 있던 외적제(外赤堤)였다. 이 저수지는 조선시대 하양읍지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고, 『조선지지자료(1911)』에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북리의 적제[설못·입지] 바깥에 있어 외적제라 하였다. 이후 1960년대 경지정리 과정에서 매립되었다.

▲ 장골 무명지
이외 74번지, 장골 416번지, 410번지에도 조선시대부터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74번지 저수지는 일명 ‘조선달못’이라 불렀는데, 경지정리 과정에서 없어졌다. 410번지 저수지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데, 공단10로 개통으로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20%EC%A0%84%EA%B2%BD(426%EB%B2%88%EC%A7%80).jpg)
▲ 장곡지(화사못) - 426번지
◆ 일제 토지 수탈의 흔적 ‘장곡지’
양기리 남쪽 들판 건너 북리와 경계를 이루는 산은 등성이가 길다고 하여 ‘진등’이라 불렀고, 그 골짜기를 ‘장골’ 또는 ‘장곡’이라 하였다. 이 골짜기 416번지에는 조선시대부터 있던 ‘장골못’ 또는 ‘장곡지’가 있었다.

▲ 조선흥업주식회사 경산관리소
그런데 1910년 일제 토지 수탈의 상징적 회사였던 조선흥업주식회사 경산관리소가 경산역 북쪽에 개소하였다. 이 회사는 양기리를 포함한 진량, 하양, 와촌, 대창 지역의 조선인 토지를 헐값에 사들였다. 그러고는 이 지역을 조선흥업주식회사 경산관리소 ‘하양농장’이라 이름 짓고 벼와 콩 위주로 농장을 경영하면서 조선인들을 소작인으로 채용하였다. 당시 조선흥업주식회사 경산관리소에 소속된 조선인 소작인들은 2,100명이었다.

▲ 조선흥업주식회사 소작인들
그리고 하양농장이 있던 곳에는 ‘경산수리조합’을 만들어 금호강과 그 일대 물을 관리하였다. 금호강 내리리에 조선시대부터 있던 ‘만세량보’를 확장하여 ‘금호보’라 이름을 바꾸어 내리리, 상림리, 양기리, 부기리 등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다. 금호강 물이 닿지 못하는 지역에는 기존의 저수지를 확장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했는데, 양기리에는 ‘외적제’와 ‘장곡지’가 그 대상이었다.
%20%EC%A0%84%EA%B2%BD.jpg)
▲ 장곡지(화사못)
특히, 장골에 있던 장곡지는 아래 426번지 밭을 저수지로 확장하였는데, 사람들이 조선흥업주식회사에서 만든 저수지라 하여 일명 ‘회사못’이라 불렀다. 마을 들판 가운데 있던 외적제는 1960년대 경지정리 과정에서 매립되었지만, 장골에 있던 ‘회사못’은 골짜기에 있던 관계로 매립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다. 지금은 다시 ‘장곡지’라 부르고 있는데, 이 못이 일제의 토지 수탈의 상징적 장소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회사못’이라는 이름이 상실되면서 잊혀지고 말았다.
◆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불린 신영민 장로와 ‘대동시온애양원’

▲ 대동시온재활원
신영민(申永敏) 장로는 평안남도 대동군 서천면 출신으로, 기독교 교세가 강한 지역적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당시 대동군과 선천군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 신자였으며, 이로 인해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png)
▲ 신영민 장로와 순안유치원(동아일보)
그는 미국인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해방 전까지 대동군에 살면서 평양에 있는 ‘순안유치원’ 설립에 오백 원을 희사하여 그의 사진이 동아일보에 실리기도 하였다(동아일보, 1935). 해방 이후 공산 정권하에서 종교적 탄압을 겪던 그는 1951년 1·4후퇴 당시 월남하여 서울을 거쳐 경산 양기리로 피란하였다. 당시 양기리 장골에는 북한과 서울 등지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으며, 신 장로는 이곳에서 전쟁고아를 돌보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 고아원마을
이러한 활동은 같은 해 3월 ‘대동시온고아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6~12명의 전쟁고아를 보호하는 수준이었으나, 1957년 최석린이란 독지가가 1백만 환을 기부하면서 고아원 건물이 지어졌고, 1958년 한국선명회와 미국인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대동시온애양원’으로 발족했다. ‘대동’은 그의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유래하였다. 대동시온애양원은 경산 신천동에 설립된 메노나이트 직업학교보다 2년 먼저 개원한 경산 최초의 전쟁고아원으로 평가된다.

▲ 고아원마을 들판
신영민 장로는 고아들과 함께 농사를 경작하였으며, 친자식보다 고아를 우선시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고아의 피는 내 피다.”라는 문구를 혈서로 써서 벽에 붙여 놓고 생활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기교회(현 부림교회)를 설립하여 지역 교회 공동체 형성에도 기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그는 ‘한국의 페스탈로치’에 비견되는 인물로 평가된다.

▲ 대동시온재활원
현재 대동시온애양원은 대동시온재활원, 대동요양원, 대동보호작업장 등으로 발전하면서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창립자의 행적과 공헌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신영민 장로는 평생을 고아 교육과 아동 복지에 헌신한 인물로, 경산 지역사와 한국 사회복지사 연구 차원에서 그의 삶과 활동을 재평가하고 기념할 필요가 있다.
◆ 에필로그
양기리는 일제 수탈의 흔적을 간직한 땅이면서도, 그 상처 위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심어진 마을이다. 전쟁고아들을 품에 안아 대동시온애양원을 세운 신영민 장로의 삶은 지역사회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지만, 그의 헌신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오늘 우리가 양기리의 이야기를 되새기는 것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픔 속에서도 사랑과 나눔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간 역사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그의 정신이 다시 조명되고, 이 마을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글 : 이홍우(『자인의 역사』 저자)
사진 : 이홍우/양재완 작가
<사진 자료>
.jpg)
_2.jpg)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jpg)
.pn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