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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량현의 영광을 되찾는 진량읍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진량읍 편(1)-진량의 역사

기사입력 2025-08-27 오전 9:17:55

▲ 진량읍 소재지 전경 
 

 

프롤로그

 

진량은 한때 마진량현이라 불렸고, 지금의 하양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압독국의 세 현 가운데 하나였다. 고려시대에 지역이 분할되면서 이름을 잃고 오랜 시간 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20세기에 들어 진량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했고, 해방 이후 빠른 발전을 이루며 옛 마진량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금부터 진량이 걸어온 시간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진량의 어원

 

진량이라는 지명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초기에는 마진량(麻珍良)’ 또는 마미량(麻彌良)’으로 불렸으며, 이후 여량(餘糧)’으로 바뀌었다. ‘는 순우리말 을 음차한 것이고, ‘진량은 들판을 뜻하는 고유어 드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마진량앞들을 의미하며, 이는 진량 금호강가에 펼쳐진 넓은 충적평야와 관련 있다.

 

▲ 진량읍 선화리 연지에서 바라본 진량 들판 

 

또 다른 해석으로는 마진량을 벼를 많이 생산하는 으뜸 들판으로 보거나, ‘미량의 경우 을 뜻하는 고유어 미르를 음차한 것으로 앞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진량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금호강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757년 신라 경덕왕은 앞들이라는 의미에서 착안하여 넉넉한 농토를 뜻하는 여량(餘糧)’으로 이름을 바꿨다.

 

▲ 진량 내리리에서 바라본 금호강과 들판 

 

그러나 고려 건국 이후 여량현은 부곡(部曲)으로 강등되면서 구사(仇史)’로 이름이 바뀌었다. ‘구사산간에 우묵하게 들어간 들을 뜻하는 고유어로, 현재 진량의 지형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행정구역 변천 과정

 

신라시대의 진량

 

▲ 압독국 영역

 

신라는 지마왕 때 압독국, 즉 압량이라 불리던 작은 나라를 정복하고, 그 지역을 압독군으로 지정했다. 당시 압독군에는 치성화현, 마진량현, 노사화현이라는 세 개의 속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치성화현은 현재 대구 동구 동촌 일대, 노사화현은 자인·용성·남산 지역, 마진량현은 하양과 진량의 동남부 일대에 해당한다.

757, 신라 경덕왕은 인명과 지명, 관직명을 모두 한자식으로 개정하면서, 압독군을 장산군으로 바꾸고, 그 속현들도 각각 해안현(치성화현), 자인현(노사화현), 여량현(마진량현)으로 개칭했다.

 

▲ 신라시대 마진량 행정구역 지도 

 

이러한 행정 개편을 통해 볼 때, 진량읍은 2세기경 압독국에 속했던 지역이었다. 이후 7세기까지는 신라국의 압량주 마진량현으로, 7세기부터 8세기까지는 신라 삽량주의 압량군 마진량현으로, 삼국 통일 이후인 8세기에는 신라 양주의 장산군 여량현으로 명칭과 소속이 바뀌었다.

 

고려시대의 진량

고려 건국 후 995년 여량현 일부는 하주(河州), 즉 지금의 하양에 편입되고, 나머지 동남부 지역은 부곡(部曲)인 구사촌(仇史村)으로 강등되어 이름이 사라졌다. 부곡은 중국에서는 낮은 신분 계급을 가리켰는데, 신라에서는 주로 천민이나 전쟁 포로, 반란을 일으킨 지역을 가리키는 행정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여량현이 부곡으로 강등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 번째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으로, 신라가 압독국을 정복한 뒤에도 반란 세력이 있었고, 이들을 남쪽으로 이주시켰다는 점에서 그 지역이 진량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두 번째는 후삼국시대 여량현이 견훤의 편에 섰기 때문이라는 설로, 이쪽이 더 설득력 있는 이유로 여겨진다.

 

▲ 고려시대 구사부곡 행정구역 지도 

 

그러다가 1018(고려 현종8) 구사촌은 인접한 자인현과 함께 경주부에 속했다. 당시 경주에서 관할하는 부곡은 성법(省法), 죽장(竹長), 구사(仇史) 셋이었다. 구사는 자인현과 인접해 있어 생활권이 같았고, 자인에서는 구사촌 또는 구사면으로 불렀다.

 

조선시대의 진량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자인현과 구사부곡(이하 구사촌)은 여전히 경주부의 속현이었다. 특히 경주부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자인현과 부곡 지역인 구사촌에 대한 핍박을 많이 하였다. 그래서 자인현민들은 1584년부터 끈질기게 경주부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을 해왔는데, 그것이 바로 자인현복현운동이다. 5차례나 끈질긴 복현운동을 한 결과 자인현은 1637년 경주부에서 독립하였다. 그러나 구사촌은 여전히 경주부에서 관할하였다. 이에 자인현민들은 구사촌은 원래 자인현에 속했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상소를 올린 결과 1653(조선 인조) 자인현에 귀속되었다.

 

▲ 자인면 하북면 행정지도 

 

이에 구사촌은 자인현 하북면으로 편성되었다. 이때 하북면에 속한 마을은 가야지리, 노적리, 대원리, 안촌리, 속초동, 신제리, 광석리, 영청동, 가제리, 마야동리, 시문리, 다문리, 북동리, 평사리 14개 마을이었다.

 

▲ 자인현 중북면과 하북면 행정지도 

 

19세기 자인현 하북면은 북칠동북종동까지 4개 동으로 나뉘었다. 1895년 자인현이 자인군으로 바뀌면서 북칠동과 북팔동은 중북면, 북구동과 북종동은 하북면으로 분리되었다.

 

▲ 중북면과 하북면 관할 마을 

 

일제시대의 진량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부군현을 통폐합하기 전 1911년 전국의 동리 통폐합 작업을 먼저 시행하였다. 당시 통폐합된 마을만 제시하면 아래 표와 같다.

 

▲ 1911년 통폐합마을 

 

이렇게 동리 통폐합 기초 작업을 마친 조선총독부는 19143월 상위 행정구역인 경산군자인군하양군을 경산군 1개 군으로 통합하고, 그 밑에 하양·와촌·진량·안심·경산·고산·남천·압량·자인·남산·용성 등 11개 면으로 분리하였다. 이때 일제는 하양군 중림면 7개 동, 낙산면 5개 동, 자인군 중북면 7개 동, 하북면 6개 동 등 25개 동을 하나로 묶어 옛 지명 마진량에서 이름을 따와 진량면을 탄생시켰다. 당시 진량면 관할 마을은 아래와 같다.

 

▲ 1914년 진량면 관할 마을 

 

▲ 진량읍 행정지도 

 

해방 이후의 진량

해방 후 진량면은 경산군 진량면으로 유지되다가 1995년 경산군이 경산시로 승격하면서 경산시 진량면이 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진량읍으로 승격되어 경산시 진량읍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진량의 읍치

 

마진량현의 읍치 현내리

 

▲ 현내리 전경 

 

신라에 복속되기 전 진량은 마진량현으로 압독국에 속하였다. 이때 현의 읍치는 현재 현내리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 구전 자료와 지리적 위치가 있다. 구전으로는 옛날부터 이 현내동에 현청이 있었다고 한다. 그 증거로 창거리, 생교(향교), 선안(현안), 비석걸(비석골), 영청골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또 현내동의 지리적 위치는 동쪽()에는 박산이 자리하고, 서쪽()으로 넓은 벌판이 펼쳐져 그 좌우로 구사촌의 각 마을이 있다. 그래서 현내리가 마진량현의 읍치였을 가능성이 짙다. 혹자는 이 현내리에 자인현청이 있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오류이다. 신라 때 자인현(노사화현)과 마진량현은 구분되어 있었다.

 

자인현 하북면과 중북면 사무소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중앙에서 관여하는 행정구역의 최하 단위는 군현이었다. 그렇지만 행정 단위로 면과 동리를 구분하여 현령이나 현감이 직접 다스렸고, 현재처럼 면사무소나 동사무소는 따로 없었다. 당시 면을 대표하는 면임(현재 면장)이나 동임(현재 이장)이 사는 곳이 곧 면사무소였고, 동사무소였다.

 

▲ 안촌리 

 

1888년 중북면 면임은 안촌동의 밀양박씨 박정헌이었다. 그리고 하북면의 면임은 다문리의 밀양박씨 박치준이었다.

 

▲ 다문리 

 

낙산면·진량면 사무소

면사무소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면장이 면을 관할하는 체제는 1910년부터였다. 일제는 1910101면에 관한 규정(조선총독부령 제8)’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면장은 도장관이 임면하였다. 이때 처음 임명된 면장은 밀양박씨 박기대였다. 당시 낙산면사무소는 낙산면 신기동(신상2)에 두었다.

 

그러다가 19143월 부군현 통폐합에 의해 하양군 중림면과 낙산면, 자인군 하북면과 중북면 지역을 통합하여 진량면을 새로 만들었다. 이때 면소재지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논의한 끝에 낙산면 지역에 두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면사무소는 신상동 구 내하동 743번지 일대 밭을 매입하여 새로 건립했다. 면장도 새로 임명되었는데, 초대 면장은 밀양박씨 박만대(관보에는 朴滿安)였다. 2대 면장은 박순국이었는데 이때부터 면 체제가 확립되었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박순국 면장은 19161932년까지 면장을 지냈고, 이후에는 김병곤(金炳坤)이 해방 때까지 면장을 역임했다. 해방 후 19461949년까지는 박순국이 다시 면장을 역임했다.

 

해방 후 진량의 읍치

진량면사무소는 해방 후에도 원래 위치에서 업무를 이어 나갔다. 199711월 각종 산업 시설이 입주하고 그에 따른 인구 증가로 진량읍으로 승격하였다.

 

▲ 진량복지회관(구 면사무소 터)

 

▲ 진량읍행정복지센터 

 

이후 2007년 신상리 685번지 토산지 동쪽 일부를 매립한 땅에 읍사무소를 지어 이전하고, 기존 읍사무소에는 진량복지회관이 들어섰다. 2018년 읍면사무소를 행정복지센터로 변경하는 정책에 따라 현재는 진량읍행정복지센터로 부르고 있다.

 

 

진량의 면협의회

 

일제는 19176월 조선총독부 제령 제1면제(面制)’를 발표하고 면에 법인자격을 부여하여 면장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이때 면장을 자문하는 소규모의 자문기구인 상담역을 특정 면에 두어 면장을 보좌하도록 하였다. 상담역제도가 근대식 자치 기구의 뿌리라 할 수 있는데, 4명씩을 두었다.

 

그후 조선총독부는 1920년에 제령 제13호를 통해 1917년의 면제를 개정하여 전국의 면에 면협의회를 구성토록 하여 지방자치를 하도록 하였다. 면협의회 의원의 정원은 814인 사이였다. 이에 따라 19201120일경 일본인이 면장으로 있는 지역만을 대상으로 면협의회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를 지정면이라 하였는데, 경산군 내에서 가장 먼저 지정면이 된 곳은 경산면이었다. 경산면은 19263기 면협의회부터 지정면이 되었다. 19261115일에 실시한 선거에서 주민들이 직접 면협의회 의원을 선출하였다.

 

 

진량의 교통·통신

 

통신과 우편

조선시대 진량의 교통은 주로 하양현과 자인현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중심은 부적리에 있던 압량역이었고, 하양 지역이었던 중림면, 낙산면은 하양 서사리에 있던 화양역을 통했다. 자인 지역이었던 하북면과 중북면 지역은 자인현 산역리에 있던 산역을 통해서 이뤄졌다. 역과 동시에 여행자 공공숙소였던 도 교통의 기능을 담당했는데, 현재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다문리의 다문원과 선화리의 폭괘원정도이다. 경산에서 진량으로 오는 여행자들은 폭괘원에서 쉬었고, 영천으로 가는 여행자들은 다문원에서 쉬었다.

 

▲ 경산~진량 간 대학로 

 

1910년대 경산에서 부적리, 현흥2리를 거쳐 진량으로 들어오는 신작로가 개통되었다. 이 도로는 기존에 있던 길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확장한 것이다. 현재는 대학로라 한다. 그리고 진량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신상리 토산지에서 다문리로 가는 다문로도 확장되었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는 진량 부기동에 동해중부로 가는 화물집하장 및 정류장이 있었다.

 

▲ 경산IC 전경 

 

1969년 경부고속도로가 진량면 가운데를 가로질러 개통되고, 신상리에 인터체인지가 설치되었다. 정식 명칭은 경산인터체인지였다. 이후 19988월 지금의 선화리에 새 인터체인지를 설치하고, 신상리에 있던 구 인터체인지는 폐쇄했다.

진량에 근대식 통신 업무는 1905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는 진량이 행정 단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인우편수취소와 하양우편수취소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전보나 전화도 1910년부터 우편수취소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 진량우체국 

 

진량읍의 우편 업무는 1961년까지 자인과 하양 우체국에서 관할하였다. 196112월 진량우체국이 신상동에 개국하면서 진량의 우편 업무를 통괄하였다. 2012년 경산진량우체국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2023년 청사 개축 관계로 잠시 선화리 선항동으로 이전했다가 그해 12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현재까지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 진량공단 우체국 

 

1999년 진량공단이 들어서면서 이곳에 진량공단우체국도 설치하여 지금까지 업무를 하고 있다. 이외에 1985년 경산대구대학교우편취급국, 1990년 경산가야리우편취급소가 있다.

 

 

진량의 치안

 

▲ 진량파출소와 의용소방대 

 

진량파출소는 1927년 설치된 진량경찰관주재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의 일본식 치안 유지는 1900년대 초부터였다. 그러나 이는 수도 한양에만 국한되었고, 지방에는 여전히 형리청이 담당하였다. 그러다가 일본 헌병대와 일본 경찰이 한국의 치안을 맡게 되면서 1907년부터 진량 지역은 경상북도경무서 소속 자인분파소와 영천경찰서 소속 하양분파소에서 관할하였다. 1909년 대구경찰서가 생기면서 자인분파소가 자인순사주재소로 바뀌고, 하양분파소가 하양순사주재소로 바뀌었다. 1914년 진량면이 새로 생기고, 경산순사주재소가 경산경찰서로 승격되면서 자인순사주재소와 하양순사주재소는 경산경찰서 소속이 되었다. 그 후 1917년 용성순사주재소, 안심순사주재소가 설치되었다. 이때까지 진량의 치안은 하양과 자인에서 양분하여 관리하였다. 1918년 순사주재소가 경찰관주재소로 바뀌었고, 1927년 경산경찰서 소속 진량경찰관주재소가 선화동 화전에 설치되면서 진량면 지역의 치안을 맡게 되었다. 이후 신상리로 위치를 이전하였다. 해방 후 경찰관주재소는 지서로 바뀌어 진량경찰관주재소는 진량지서가 되었다. 이후 치안센터, 지구대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현재는 진량파출소로 부른다.

 

 

진량의 경제

 

진량농산물집하장

 

▲ 진량농산물집하장(1971년)

 

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농협중앙회에서는 경부고속도로 5, 호남고속도로 2개 지역 등 7개 지역을 중심으로 농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경부고속도로 인근 지역은 남사, 입장, 옥산, 진량, 인포가 선정되었는데, 진량은 1,085정보의 농토에 사과, 포도, 양파 등 과수단지로 선정되었다. 이에 경산군에서는 진량 인터체인지 남쪽 10km 지점인 신상리에 농산물집하장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적자 운영으로 농협중앙회는 1980년 이 농산물집하장을 폐쇄하고, 부지는 한국도로공사에 매각했다.

 

진량농협과 진량새마을금고

 

▲ 진량농협 신상동 지점

 

▲ 진량농협 본점 

 

진량에는 일제시대까지 금융조합이나 산업조합이 없었다. 1972년 진량농협이 신상리에 설립되었다. 이후 2023년 문천리에 본점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또한 진량새마을금고는 1981년 신상리 110번지에 설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진량공단

 

▲ 진량공단 전경 

 

1988년 경산군은 늘어나는 공장 부지 수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진량면 신상, 선화, 보인, 봉회, 황제, 당곡, 가야, 대원, 압량 의송리 등지의 60만 평 규모의 도시계획구역을 확장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진량에는 각종 공장이 들어와 경제적으로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 199012, 정부는 공장 입지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진량면 신상, 대원, 황제동 일대 45만 평을 진량공단 유치 지역으로 선정하였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진량지방공업단지라는 명칭으로 조성되었다가 2008년 경산1일반산업단지로 개칭하였다. 경산3일반산업단지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경산1일반단업단지 동쪽으로 신제리를 포함한 지역에 조성되었다. 그리고 경산4일반산업단지는 2010년부터 다문리, 광석리 일대에 조성 중인 산업단지다. 이로써 진량에는 총 3개의 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진량의 아파트단지

 

▲ 신상리 아파트 단지 

 

산업단지 조성과 더불어 인구가 점차 유입되고, 공단에 수용된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산시는 진량 지역에 농촌형 아파트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아파트단지가 조성된 마을은 1992년 부기리의 진량에덴타운이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부기리에 삼주봉황1·2·3, 북리에 삼주봉황4, 우림필유, 선화리에 윤성1, 진량이안, 진량호반, 청구타운, 신상리에 보국웰리치, 우방힐타운, 양기리에 초원장미, 황제리에 황제타운 등 총 11,135세대가 아파트단지 생활을 하고 있다.

 

골프장 건립

 

▲ 대구CC 전경

 

진량에는 1972년 경상북도 최초로 골프장이 들어섰다. 이는 1969년 고속도로 개통의 영향이 컸다. 처음 이름은 진량골프장이었다가 이후 경산CC로 바꾸었고, 지금은 대구컨트리클럽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운영 중에 있다. 이 골프장은 고속도로변에 있던 선화리, 신상리, 황제리 일대에 걸쳐 있던 토산 지역 27만 평을 깎아 조성하였다.

 

 

진량의 교육

 

근대 이전 진량의 교육기관

 

▲ 신상리 영모재 

 

근대 이전 진량의 초등교육기관으로는 개인이 운영하던 서당 정도가 전한다. 고등교육기관인 향교는 중림·낙산면 지역은 하양향교로, 자인군 지역의 주민은 자인향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름이 전하는 서당은 신상리 배극소 선생의 강학소였던 효산서사(孝山書社)’, 신상리 토담에 있었던 장지한 선생의 강학소인 이락재‘(二樂齋)’, 상림리 조몽필 선생의 강학소였던 죽원재(竹源齋)’, 신제리 배필신 선생의 강학소였던 소학정(小學亭)’ 등이 있었다. 이외 현재 ○○서원이나, ‘○○라 붙인 것은 20세기 들어와 각 문중에서 건립한 묘소재에 해당하고 교육의 기능은 담당하지 않았다.


근대 이후 진량의 교육기관

 

▲ 진량초등학교 

 

진량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제일 먼저 설립된 것은 진량공립보통학교였다. 이 학교는 192296일 진량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그해 9월부터 경산진량사숙(慶山珍良私塾)을 짓기 시작하여 192351일 개교하였다. 당시 박순국 면장이 면내 자제의 신교육기관이 없어 우려하던 중 여러 유지들의 협력으로 8천여 원을 모집하여 숙사를 건축하여 개교하였다. 1927년 학생 수 207명에 이르렀다. 한편, 1923년 진량공립보통학교부설 지신학교(知新學校)도 설치되었는데, 1925년 폐지되었다. 이 학교는 1937년 진량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진량국민학교로 변경하였고, 1996년 진량초등학교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다문초등학교 

 

다문초등학교는 1937년 진량공립보통학교 부설 다문간이학교로 설립하였다가, 1943년 진량동부초등학교, 1955년 다문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역시 1996년 다문초등학교로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부림초등학교는 1943년 설립 인가 후 1945년 진량북부국민학교로 부기리에 개교하였다. 1956년 부림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가, 1996년 부림초등학교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제리에 있는 진성초등학교는 1962년 진량초등학교 진성분교로 설립되었다가, 1965년 진성국민학교로 독립하였다. 역시 1996년 진성초등학교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봉회리 회동에는 삼주봉황타운이 들어서서 이곳의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봉황초등학교가 2008년 개교하였다.

 

▲ 진량중고등학교 

 

진량에 중등교육관은 1950년대 들어섰다. 그 최초가 진량중학교였다. 진량중학교는 1952, 진량고등학교는 1955년 진량농업고등학교로 신상리 내하동에 개교하였다가 1974년 진량고등학교로 변경하였다.

 

▲ 신상중학교 

 

신상중학교는 2006년 설립 인가를 받아 2009년 신상리 343-1번지에 개교하였다.

 

▲ 대구대학교 전경 

 

진량의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대구대학교와 영남신학대학교가 있다. 대구대학교는 1971년 한사대학교로 대구에서 내리리로 이전하였다가 1981년 대구대학교로 변경하였다. 198161일 진량읍 내리동 한사대학 경산 캠퍼스에 856평의 3층 건물에 35천만 원을 들여 전국 최초로 점자 도서관이 개관되었다.

 

▲ 영남신학대학교 

 

대구에 있던 영남신학대학교는 1989년 봉회리 월령산으로 이전하였다.

 

에필로그

 

현재 진량은 24개의 법정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마다 수백 년 동안 형성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점차 마을이 사라지는 현시점에서 하루빨리 기록으로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다음 회부터 이들 마을에 얽힌 세세한 사연들을 연재하도록 하겠다.

 

: 이홍우(자인의 역사저자)

사진 : 이홍우/양재완 작가

 

<사진 자료>

 

▲ 진량읍행정복지센터 
 
▲ 진량복지회관 
 
▲ 진량보건지소 
 
▲ 진량파출소 
 
▲ 토산지 
 
▲ 진량우체국 
 
▲ 진량공단 우체국 
 
▲ 진량읍 희망나눔센터
 
▲ 진량농협 본점
 
▲ 진량농협 신상동 지점
 
▲ 대구대학교
 
▲ 영남신학대학교 
 
▲ 다문초등학교
 
▲ 신상중학교
 
▲ 진량중고등학교
 
▲ 진량초등학교 
 
▲ 경산~진량 간 대학로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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