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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11-18 오후 4:54:00

김팔선, 예순부터 내 인생이 시작되었지
[이경희의 소가 외다리 건너는 이야기]

기사입력 2018-04-09 오후 3:36:36

오랜 시간 내 이야기만 썼다. 강의와 글쓰기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씩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면 소설보다 더 재미있었다. 예전 할머니들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하자면 책 열 권이라도 모자란다. 아이구~~ 생고생하며 살아온 세월 말도 마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보고 싶었다.

 

한 존재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것은 한 세계를 친견하는 것과 같다. 다른 이의 생애사를 쓴다는 행위는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있는 일일 터이다. 치열하게 뜨겁게 한 생애를 살아온 이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새로운 글쓰기의 길을 떠난다.

 

 

예순부터 내 인생이 시작되었지
 


 

장구에 인생의 신명을 실어

 

덩 따다다, 덩 따다다, 덩 따다다, 쿵쿵따 ~~”

 

장구 소리가 잠든 신명을 일깨운다. 장구채를 잡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서리면서 점점 얼굴에 홍조가 발현한다. 앞에 앉은 나도 덩달아 몸이 들썩거린다. 민요 한 가락 해보자며 내게 권한다.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 될 터이니 /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며 노랫가락이 나온다. 내 몸 저 깊숙한 곳에 잠자던 신명이 올라와 춤을 춘다. 목청껏 소리를 내본다. 우리네 핏속에 흐르던 가락이 아니던가. 갑자기 민요를 배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솟아난다. 한 곡으로 그칠 수 없어 그와 나는 가요까지 열댓 곡을 같이 불렀다. 지친 몸과 마음이 일순 환해지는 느낌이다.

 

김팔선, 1938년생 올해 여든하나. 그녀의 인생에서 장구를 빼놓고는 삶을 논할 수 없다. 한 시간 남짓 공연을 지켜본 나는 그가 단박에 타고난 예인藝人임을 알았다. 일찍 재능을 발굴했더라면 인간문화재감이다. 장구채만 잡으면 신명이 올라 좌중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장구만 두드리면 흥이 오르고 화산 폭발하듯이 신명이 솟는다. 요컨대 이팔선에게 장구는 생명이며, 살아갈 이유이다. 경산 노인종합복지회관 사물놀이반 회장만 십팔 년째, 어린이집 사물놀이 강사, 경산 장애인복지센터 사물놀이 지도 강사이다. “인생은 잘 살았다 싶다. 고생은 해도 .”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칼칼한 목소리에 언변도 좋다.

 

쉰여덟에 국악학원에 등록해 장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인에서 대구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도 힘들지 않았다. 배우고 싶었던 장구를 배우니 신명이 났다. 박자 감각을 익히기 위해 동네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밥을 지어주며 노랫가락에 맞춰 장구 연습을 했다. 학원에서 기초를 배우고 경산문화원 국악반에 등록을 해 장구를 더 익혔다. 김팔선의 인생은 장구로 인해 인생이막을 활짝 꽃피운다. 그녀는 자인계정들소리(무형문화재 제31) 단원이다. 창단회원으로서 스물세 해째 단원 생활을 하는데, 199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장구로 인해 무형문화재 단원이 되고, 대통령상까지 받고 나니 인생이 달라졌다.

 

상을 받고 나서 자인계정들소리 농악단은 전국으로 공연하러 다닌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도 방문하고, 제주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공연도 했다. 경산시 자매도시인 전남 신안군 시민의 날에 가서 축하공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봐라, 너거들 안 하는 거 나는 한다.”라는 농악단에 대한 자긍심도 생겼다. 늙은이라고 뒷방으로 밀려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자존감도 드높아졌다. 지금도 대통령상 수상 기념 메달을 목에 걸고 다닌다. 경산시와 자매도시인 일본 조요시에 가서 공연도 했고, 올해 9월에는 중국 산동성 공연도 갈 예정이다. 경산문화원 농악단원으로도 활동하며 온갖 대회에 나가 장관상까지 받았다.

 

장구를 연습할 때 친해진 이용호 할아버지를 잊을 수 없다. 장구 연습은 혼자서 하면 재미가 없다. 여럿이 둘러앉아 노랫가락에 맞춰 치거나 북으로 반주를 넣어야 신명이 난다. 이용호 할아버지는 호흡이 척척 맞는 환상의 짝꿍이었다. 할아버지는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멋쟁이였다.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다. 그런데 작년에 이용호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섭섭하고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이치가 아니던가. 새로운 북잽이를 구했지만, 호흡이 예전만 못하다. 친하게 지내던 농악반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는 인상무상人生無常이 뼈에 사무친다. 남은 인생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팔선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 여덟 군데 사물놀이 출강을 나간다. 작년까지 열세 군데 나갔으나,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바람에 줄었다. 나이는 많지만, 그녀는 인기 강사다. 비결을 묻자 아이들에게 개별지도를 다 해주고, 콧물도 닦아주고 내 손자처럼 가르친단다. 아이들이 치는 장구가 망가지면 수리까지 척척 해낸다. 장난치고 말 안 들을 때는 힘도 들지만 장구 선생님, 보고 싶더라.”며 매달리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다 녹아버린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내 자식처럼 대하니 좋아하더라. 텃밭에 기른 상추도 갖다 주고 하면서 마음을 나누니까 나를 좋아하대.” 김팔선 할머니의 성공비결은 이런 친화력도 한몫을 한 듯싶다.

 

나는 부자다. 이 나이에 내가 벌어서 용돈도 쓰고, 손자손녀들 용돈도 주고, 올해 대학 들어간 둘째 손녀 등록금도 내가 해주었다.”

 

그녀는 강사료를 모아 큰아들 집짓는 데도 보태고, 노인복지회관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밥도 자주 산다. 연말에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이십 만원이나 쾌척했다. 나이 팔십에 경제력을 가진 멋쟁이 할머니다. 앞으로 삼 년은 더 현역으로 활동할 계획이란다. 항상 화장을 곱게 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매만지고, 고운 옷을 입고 출근한다. 생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않는 비결을 물었다. “늙었다고 집에 들어앉아 있으마 자식들이 좋아하나. 내 좋아하는 거 하면서 친구들 만나고 재미나게 사는 거지. 별 거 있나?” 그녀는 마음이 청춘이다. 화술도 거침이 없다. 한 가지를 물으면 서너 가지를 대답한다. 건강한 마음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신랑이 멋있어서 연애결혼

 

 

 

그녀는 팔 남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났다. 오빠들 틈새에서 막내로 성장한 그녀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지금 형제자매들은 다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다. 어린 시절 양식이 모자라 콩이나 보리를 넣은 사래기죽을 끓이면 먹기 싫다고 엄마한테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엄마가 가마솥의 누룽지를 무쇠주걱으로 긁어주었다. 세 살 위 오라비가 누룽지를 빼앗아 가면 어머니가 부지깽이로 혼을 냈다.

 

김팔선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자인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여학생이 드물었다. 성격이 활달하던 그녀는 남학생에게 인기가 많았다. 또래들과 밤마다 모여서 노래하고 노는 것이 즐거웠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 가면 나이가 든 만학도가 많았다. 나이 많은 학생들에게 치이는 것이 싫어 이학년 때 자퇴를 했다. 학교를 그만 두고 대구 반월당 청파미용학원에 등록하여 미용기술을 배웠다. 보조생활을 좀 하다가 고향 자인에 미용실을 차렸고, 결혼 후에 그만 두었다. 그러다가 사 남매나 되는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다시 미용실을 차려 돈벌이에 나섰다. 명절이 가까워 오면 인근 농촌의 부인들이 파마를 하러 구름처럼 몰려들어 밥 먹을 새도 없었다. 돈 번다고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낀다고 고백했다.

 

남편과는 연애결혼을 했다. 인물이 좋았던 오빠친구와 저녁에 못둑이나 밭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놀다 정이 들었다. 동네에 둘이 연애한다는 소문이 나자 양쪽 집에서 중매를 넣었다. 시댁에서는 반대했다. 자인읍내에서 가게를 하던 시댁은 부잣집이었으나 친정은 상대적으로 가난했다. 아들이 좋다고 하니 시댁에서 억지로 혼인을 허락했다. 시집살이는 맵고도 짰다. 셋째 며느리인 그녀는 손윗동서 둘이 살림을 나자 혼자 집안일을 다하고 시어머니를 모셨다. 없는 집 며느리라고 구박하던 시어머니는 말년에 중풍이 들어 그녀가 모시고 수발을 다 들었다. 시어머니 병 구환이 힘들었지만, 막내며느리가 효도한다고 동네사람들 칭찬이 자자했다.

 

김팔선은 리더십이 뛰어난 여성이다. 성장기에 야생마처럼 살았던 그녀는 성격이 활달하여 동네 부인들 계모임 회장을 도맡았다. 동네 통반장도 이십여 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여자가 바깥으로 나도는 것을 싫어했다. 여자들이 모여 남의 흉이나 보고 다닌다고 바깥활동을 못하게 했다. 부부싸움을 하고나면 속이 상해 아이를 업고 못둑으로 나갔다. 당장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연애 결혼한 것 때문에 갈 수도 없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저수지 둑을 거닐면 경산 쪽 서녘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노을 한 자락에 서러운 마음을 달래며 그럭저럭 세월을 견디었다.

 

신랑이 나를 어씨 귀애했니라. 술 마시고 집에 오면 늦은 밥상을 차려주지. 그러면 나를 무릎에 앉히고 다정하게 이야기도 하고 그랬니라.”

 

되돌아보니 신랑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신랑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해도 각시라고 아끼고 사랑을 많이 해주었다. 신랑은 자인농고 축산과를 나와 염소를 키웠다. 염소 모는 일을 시키면 경험이 없어서 싫었다. 지금 집터가 남편이 염소 키우던 농장자리다. 남편 문태현은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다. 물 긷는 일이 힘든 아내를 위해 집안에 펌프도 설치해주었고, 전화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도 남들보다 일찍 들여놓았다. 살림도 여물어 돈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아이 낳고 살림하며 남편에게 돈을 타 쓰니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하나 갖고 싶었다. 남편에게 청하니 십만 원이 입금된 통장을 만들어주었다. 남편의 자상한 성격을 큰아들이 그대로 닮았다. 큰아들도 다도를 하는 며느리가 필요한 예쁜 그릇이나 옷을 자주 사다 준다.

 

 

예순아홉에 면허증을 따서 빨간 승용차를

 

 타고난 끼를 억누르며 살아야했던 김팔선은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일이 그리 신나지 않았다. 틈만 생기면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 가슴 밑바닥에서 휴화산이 꿈틀거렸다. 장구채를 잡은 지 십여 년이 되자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장구를 들고 활동을 하려면 차가 필요했다. 아들에게 차를 사달라고 하니 운전면허를 따면 사주겠다고 했다. 일 년 동안 두 번 떨어지고, 세 번 만에 합격했다. 식구들은 설마 칠순을 앞둔 노인이 면허를 따겠나 싶었단다. 아들은 약속대로 빨간색 아벨라 승용차를 사주었다. 칠순을 앞둔 할머니가 뒷자리에 장구를 싣고 빨간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김팔선의 숨겨진 끼는 드디어 세상의 길 위로 달려 나간다. 초등학교 방과 후 장구 강사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사 이렇게 적극적이다. 마음먹은 것은 한다. 나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만약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냐는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좀 일찍 국악을 배워 악기 하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내가 해보니 이렇게 재미나고 즐거운데 다른 사람도 같이하면 더 즐겁지 않겠나?”

 

자식들 가운데 할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이가 없느냐고 물었다. 큰딸이 사물놀이 동호회원으로 활동하며 봉사 활동을 한단다. 손녀 둘은 관심이 없고, 손자가 할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듯하다. 춤도 잘 추고 노는 신명이 있지만, 국악기에 관심이 있지는 않다. 아무려면 어떠랴. 장구와 함께 행복하고, 장구와 함께 신명나는 생을 살아가는데.

 

김팔선은 타고난 페미니스트다. 여성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 신명 나는 삶을 산다. 경산지역의 문화를 전승하는 일원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활기찬 기운이 전해온다. 고령화 시대, 노년기의 삶을 김팔선처럼 살면 무엇이 두려우랴. 젊은 날 사는 일에 바빠 발휘하지 못한 자신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아가는 그녀는 노인의 삶도 얼마든지 행복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소원은 잘 죽는 것이란다. “자식들 애 안 먹이고 잘 죽어야지. 뭐든지 남에게 주고 싶고, 남은 생애 동안이라도 베풀고 살아야지.” 타고난 재능을 뒤늦게 활짝 꽃피운 김팔선은 행복해 보인다. 더 많은 사람들과 그 행복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장구 소리에 실려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김팔선이 큰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 셋과 함께 여섯 식구가 사는 집은 자인면 동부동 과수원을 지나 외딴곳에 있다. 집 마당에는 오래된 라일락이 장독대 옆에서 새순을 내밀고 있었다. 집 앞 저수지에도 봄 물결이 일렁인다. 사방이 트여 시야가 훤한 집이다. 해 질 무렵이면 서쪽 하늘에 노을이 곱다. 고령화 시대, 노년기를 잘 보내는 것이 화두인 시대다. 김팔선 할머니는 텃밭 담당이다. 올봄에도 텃밭에 감자도 심고 상추씨도 뿌렸다. 해마다 김장할 배추와 무도 심는다. 그래서 무료하거나 심심할 새가 없다. 자식들과 한집에 살면서 좋아하는 장구도 치고, 병아리같이 귀여운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국악도 가르치며 사는 김팔선은 복 노인이다. 누구나 꿈꾸는 노년기의 삶을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현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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