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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8-17 오전 8:43:00

수필가 구활. 그리운 날의 추억제
[이경희의 소가 외다리 건너는 이야기]

기사입력 2018-10-06 오전 10:39:00

시대의 풍류객 구활

 

▲ 수필가 구활

 

 

구활은 이 시대의 한량이다. 모름지기 한량이란 끼와 맛과 멋 사이를 한유하는 이를 일컫는다. 한량에도 급이 있다. 왕의 자리를 포기한 조선 제일의 귀족 한량인 안평대군이 정()의 자리에 있다면, ()의 자리에 김삿갓을 놓을 수 있겠다. 삿갓을 쓰고 지팡이 하나 들고 조선 팔도를 유랑했던 김병연은 말하자면 국민 한량이었다. 이 둘을 변증법으로 합()한 한량이 구활이다. 그는 안평대군의 지와 예, 김삿갓의 자유와 문학을 합치한 인물이다. 한량이란 표현에 약간 삐딱한 시선이 내포되어 있다면, 보다 고상한 언어로 전환하면 그는 일류 풍류객이다.

 

구활이 스스로 정립한 풍류의 개념은 이렇다. 풍류의 삼대 요소는 시(), (), ()이며, 이 요소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배경이 풍(), (), ()이다. 여기에 따라오는 것이 정자와 예술이다. 그가 주창한 이론은 법고창신(法鼓昌新)의 풍류론인 셈이다. 이처럼 풍류에 관한 이론과 실천을 완벽하게 구비한 인물이 구활이다. 어쨌든 구활은 풍류객을 닮고 싶어 하는 예인(藝人)중의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풍류는 점잔을 벗어나 난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스럽지도 않다. 풍류는 가난뱅이가 즐길 물건이 아니며 그렇다고 부자라고 쉽게 소유할 물건이 아니다. 풍류는 배워서 당대에 이뤄지는 학문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피의 소리이기도 하고 끼의 맥박이기도 하고, 나아가서 기질의 숨결이기도 하다. 풍류의 매체는 술이다. 술 없이는 풍류를 논할 수가 없다. 술은 시며 소설이며 수필이다.”(구활의 풍류별곡중에서)

 

그는 타고난 풍류객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에 풍류의 유전자가 줄기마다 꼭꼭 찍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스스로 팔 할이 바람이란 별명을 사이버 공간에서 이름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하양 금호강변과 영천 화산 일대에서 자주 투망질을 했으며, 바둑과 화투판에서도 재능을 드날리던 전설의 인물이었다. 구활이 네 살 되던 해 생일날 아침에 부친은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조건이 주어지는 대로 즐기는 기질이 부계의 유산이라면, 평생 손에서 책과 붓을 놓지 않았던 예술적 기질은 모계의 유산이다. 요컨대 구활은 타고난 한량이며, 천부적 풍류객이다.

 

팔척장신에 챙 넓은 중절모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구활의 모습은 어디에서든 눈에 띤다. 한 번은 반월당 지하상가에 사람이 물밀 듯 밀려오는 데 멀리서도 한눈에 구활 선생을 알아보았다. 흑백 텔레비전 시절, 주말의 명화 시간에 자주 등장하던 총잡이가 나타난 듯 일순 주변이 환해진다. 그는 클래식은 물론 재즈와 팝송까지 두루 좋아한다. 바지 뒷주머니에는 팝송 가사를 깨알 같은 글씨로 적은 작은 수첩이 들어있다. 무반주로 짐 리브스와 해리 베라폰테의 노래를 가끔씩 흥얼거릴 땐 이것 역시 풍류객의 소산이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고 음식 만들기도 그의 장기 중의 하나다. 충남 서천 마량포구에서 열린 광어 축제장에서 매입한 최고로 큰 육 킬로그램짜리 광어를 손수 회를 뜰만큼 칼을 다루는 솜씨도 가히 쉐프급이다. 음식에 대한 빼어난 감각과 취향은 작품집 바닷가 그 입맛어머니의 손맛,맛있는 여행등에 담겨 있다. 이 책들은 구활 버전 음식 디미방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 달성 하빈 삼가헌 스케치 그림
 

 

인터뷰 하는 날, 범어동 돼지고기 골목에서 국밥 한 그릇씩 먹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고급 음식을 마다하고 소탈함을 보여 주려고 돼지국밥을 고집했는지 그건 물어보지 않았다. 식사 중에 그림 이야기에 이르자 우리는 신명이 났다. 원로 서양화가 김종복과 중광스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그는 스마트폰 갤러리 속에 여러 작품을 지니고 다녔다. 추석 전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대구 출신 옛 화가인 이인성, 주경, 박명조, 정점식을 비롯하여 시인 이상의 친구인 꼽추화가 구본웅의 그림이 감동스러웠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그림에 매료되어 보너스 타는 달이면 그림 한 점을 사기위해 화랑가와 헌책방 난전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미국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물려 준 중광스님의 비상하는 학그림과 죽농 선생의 전지 횡액 풍죽을 구하게 된 뒷얘기까지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취미로 그린 펜화를 매일신문에 글과 함께 백회를 연재한 후 기독교 봉사단체 참길회에 기부하여 판매 수익금을 소록도 봉사활동 경비로 지원하기도 했다. 신은 인간에게 한 가지 재능만을 준다는데, 유독 구활에겐 여럿에게 나눠줄 달란트를 왕창 몰아주었으니 이건 아무래도 하나님의 엄청난 실수인 것 같다. 아니면 아버지 하나님을 극진히 섬긴 그의 어머니의 기도발이 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실과 결핍이 낳은 문학

 

구활을 말하면서 수필을 건너뛸 수 없다. 그는 수필문단에서 유명한 스타이다. 온갖 잡스러움이 뒤섞인 수필계에서 구활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문단 경력 삼십사 년 동안 선집 포함 모두 열네 권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앞으로 옛 선비들의 풍류에 대한 글을 정리해서 풍류학 개론같은 책도 발간할 예정이란다. 대구광역시 문화상, 현대수필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 원종린문학상 등 수상 이력도 만만찮다. 어쨌든 수필가 구활은 작품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당대 최상의 반열에 오른 작가이다.

 

▲ 소설과 김원일과 함께~

 

 

구활이 수필가로 등단하게 된 이야기는 극적이다. 소설가 김원일과 함께 영천 화산의 어느 강으로 투망질을 갔다가 그날 밤 주술에 홀린 듯 글을 썼다고 한다. 그때 쓴 글이아버지를 만나는 강이라는 작품이다. 원고를 친구 김원일에게 보냈고, 198411현대문학에 이 글이 실리면서 수필가로 등단을 한다. 그날 이후 구활은 마음속에 고여 있거나 애잔한 찌꺼기로 남아 있던 것들이 엎드려 연필을 들면 취객의 구토처럼 쏟아져 나왔다. 퇴근 후 술을 끊다시피 하고 집으로 달려가 글을 쓸 정도로 글쓰기의 세계로 빨려들어 간다. 그날 이후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각혈하듯 토해낸다. 하여, 그가 수필가가 된 것은 운명이었다. 그의 초기 수필 작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 하양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과 결핍은 그의 문학적 자산이 된다.

 

수필가 구활의 글쓰기 여정을 살펴보면 그의 발걸음과 사유가 얼마나 다채롭게 변모해왔는지 알 수 있다. 초기 고향, 가족, 친구에서 문화유산답사로, 절집 이야기로, 옛 선비의 삶과 문학으로, 음식 이야기로 확장해간다. 퇴직 후 새 천년이 시작되던 해에 문화유산답사 전문강사 양성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현장을 두루 돌아다닌다. 이때 보고 느낀 것을 수필집 시간이 머문 풍경으로 간행한다. 사찰순례기는 하안거 다음날이라는 책으로 출간한다. 언론계 생활을 끝낸 후 자유인이 된 구활은 한껏 한량 끼를 발휘한다. 그의 한량 기질은 수필과 만나 독특한 문향(文香)으로 피어난다. 앞서 나는 한 사람에게 재능을 몰아준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이쯤 되면 그 원망을 거두어 들여야 할 것 같다.

 

▲ 어머니 성묘를 마치고 찍은 가족사진
 

 

그의 어머니 이경순 여사는 구활의 수필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중심 인물이다. 어머니의 학력은 초등학교 사 학년이 고작이지만 열여덟 살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다. 당시로는 드물게 한학을 깨친 여성이었다. 일찍 천당으로 입적한 남편 대신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고, 신앙으로 굽이굽이 삶의 고개를 넘어온 분이다. 말년까지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과 아들의 요청으로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를 팔 폭 병풍으로 만들었으며, 두보의 시선집을 필사할 정도로 평생 시서(詩書)를 즐긴다. 맏아들의 수필작품이 실린현대문학잡지를 통독하는 문학 애호가이기도 했다.

 

구활의 전 생애를 몇 개의 마디로 나눈다면 전반기 신문기자 시절과 후반기 수필가의 시절로 구별할 수 있다. 평생 글쟁이로 살아온 인물이다. 수필가 구활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그가 매우 부지런히 글을 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대부분의 글쟁이는 청탁이 와야 글을 쓴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구활은 작품 창고에 재고가 그득하다. 언제 어디서 청탁이 오더라도 준비된 작품을 내놓는다. 글을 대하는 성실한 태도는 나도 닮고 싶다. 또한, 그의 수필을 읽어보면 지식의 지층이 두텁다. 역사와 인물, 문학, 고전, 음악과 미술 등 그의 수필을 떠받치는 층위가 다양하고도 튼실하다. 언제 책을 읽고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집에 있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다.”라고. 마디가 없고 술술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그의 수필은 체화된 지식과 감성의 산물이다. 앞으로 수필가로서 펼칠 진경이 자못 기대된다.


 

하양(河陽), 아름답고 그리운 이름

 

발 아래 우리 학교를 에워싼 과수원 사이로 나 있는 신작로는 간혹 지나가는 트럭이 달릴 때마다 자갈이 튀고 뽀얀 먼지가 일었다. 하양역 앞 도로변엔 두어 아름이 넘는 플라타너스가 비오는 날 꼬마들의 우산이 될 만한 잎새들로 두터운 그늘을 만들고 있고, 그 사이 사이의 수양버들은 삼단 같은 푸른 머리털을 땅바닥까지 치렁치렁 드리우고 있다.

흰 자갈밭을 양쪽으로 거느리고 있는 금호강, 동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회칠한 하양 역사(驛舍), 동서로 달리는 두 가닥의 철길,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열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아 얼마나 동경했던가, 도시라는 이름의 그 미지의 세계를.” (구활의 기합산에서 그리는 수채화중에서)

 

구활 선생과 나는 인연이 깊다. 내가 어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이다. 고향 선배이기도 하거니와 삼촌 같은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의 앞에 서면 나는 무장해제 된다. 아마도 격식이나 의례를 싫어하는 그의 자유로운 기질이 나와 통하는 탓 일게다. 이건 순전히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구활 선생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하양이라는 공간에 대한 정서와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쓴 하양에 대한 글을 읽으면 손오공이 마법을 부리듯 과거의 시·공간으로 돌아간다.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세상살이의 고단함, 인간관계의 어려움, 밥벌이의 엄숙함 같은 중력의 힘을 몰랐던, 영혼이 가벼웠던 시간을 회상하게 해준다.

 

예전 하양은 금호강변에 사과밭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사과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동무들과 멱을 감기 위해 금호강으로 갈 때는 으레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는 능금밭 샛길을 택한다. 능금밭 주인이 아무리 막아도 열리기만 하는 개구멍은 있게 마련이고 그곳은 우리들의 통로가 되었지.”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는 그 시절의 노래처럼 구활의 고향 이야기는 감칠맛이 난다. 하양능금의 맛을 구활만큼 실감나게 재현하는 사람이 또 있으랴. 금호강변의 능금밭이 있던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개구멍으로 능금 서리를 하던 소년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처럼 개인의 기억은 서사와 만나 재현되고, 집단 정서와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한다.

 

나는 구활의 고향 이야기를 읽다가 눈시울이 뜨끈해진 적이 많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틋함이 무의식의 현을 툭 건드리며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들게 한다. 구활의 수필 작품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를 비롯하여 금호강과 무학산, 환성사, 은해사, 팔공산 자락의 암자들, 지금은 사라진 능금밭과 정미소가 그의 수필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고향이란 한 존재의 근간이 되는 무의식의 뿌리라는 생각이 든다. 출향인에게는 노스탤지어의 근원으로, 구활에게는 문학의 뿌리로 자리한다. 하양이라는 지명은 구활의 글 속에서 문학적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고향 하양에 대한 글만 모아보니 삼백여 편정도 되는데, 이 글을 추려서 책을 내볼까 생각 중이야.” 그 책은 하양에 대한 소중한 역사서가 될 것이다.


 

구활과 그의 벗들이 펼치는 우정의 향연

 

▲ 원일과 광의
 

 

생애사 원고를 쓰던 주말, 지인들과 운부암 트레킹을 갔다. 치일못 앞 정자에서 우리와 같은 곳을 목적으로 트레킹을 나선 구활과 그 일행을 만났다. 반가웠다. 재작년 초봄, 샛노란 복수초가 피어나던 운부암 보화루 앞에서 만나고 두 번째 만남이다. 운부암을 비껴난 산길에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음식으로 조촐한 산중파티를 펼쳤다. 와인과 막걸리, 전병, 삶은 고구마, 계란말이, 포르투칼산 커피 등 배낭에서 꺼낸 음식은 풍성하고 맛깔스러웠다.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후 어울려 등산을 다닌다고 한다.

 

좋은 친구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데서 온 인연의 끈이 친구로 맺어진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려면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인연은 하늘이 만드는 거다.”

 

구활은 내게 친구론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존경하는 세 사람의 선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인 구상, 민속학자 조자룡, 걸레 스님 중광. 셋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그를 기다리고 있단다. 아마도 구활은 저승에 가서도 그들과 어울려 문학과 그림과 역사와 음악을 안주삼아 술잔을 주고받을 것이니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수필가로 이끈 소설가 김원일이 병환 중이라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늘뫼라는 아호를 가졌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술과 산과 바다와 난을 좋아하던 친구는 끝내 주신(酒神)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해장술을 즐기다가 저승으로 갔다. “그 친구를 묻고 산을 내려오면서 밭두렁에 앉아 평생 흘릴 눈물을 다 쏟아냈다.” 그가 친구들과 나눈 우정의 밭에는 형형색색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우정이란 이처럼 진한 감동과 스토리를 남긴다.

 

구활은 친구가 많다.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가 벗들과 나누는 우정의 장에는 늘 산과 술, 예술이 자리한다. 나이 들어서 친구만큼 좋은 자산이 어디 있으랴. 그의 삶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증거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우니 누구와도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었으리라. 특히 중광 스님은 대구에 오면 구활을 만나 더러 밤새워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중광 스님의 그림을 제법 갖고 있었지만 그걸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연전까지 맘에 드는 그림 두 점만 소유하고 있다가 그것도 자녀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한다. 또 한 사람 삼성출판사 사장을 역임한 김종규(전 박물관협회 회장)도 존경하는 선배라며 그의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닮고 싶다고 했다.

 


 

 

구활은 요즘도 당구를 즐기고, 산길을 걷고, 문화유적 답사와 맛 기행을 나선다. 한량의 필수 요건인 술이 빠질 수 없다. 그가 한창 잘나가던 신문기자 시절, 대구시내 단골 주점마다 구활은 전설을 남긴다. 자칫 타고난 한량 끼가 잘못 경도되면 동네 건달로 타락하기 쉽다. 다행히 구활은 자신의 끼를 다스리고 절제하는 균형감각을 지녔다. 이 지점이 구활이란 인물의 평가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그는 교회 주일학교 시절부터 계성고교까지 기독교 세계 안에서 성장한다. 젊은 나이에 지아비를 잃고 가장이 된 모친은 맏아들인 그에게 더욱 엄격했으리라. 이런 성장 환경에서 배운 절제와 현실 감각이 구활의 전 생애를 컨트롤하는 사령탑 구실을 한 것이 아닐까. 삼신할매가 디오니소스의 술잔을 들고 그를 점지했으나, 모친이 섬기는 하나님이 그를 어여삐 여기사 인생을 잘 인도하신 것 같다.

 

구활의 생애사는 단편소설 분량으로는 부족하다. 내게 입력된 수많은 정보와 그의 수필집, 만날 때마다 들은 이야기가 많다. 장편소설 몇 권 분량은 쓸 수 있겠다. “나는 아직도 풍류가 끝나지 않아 노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친구 중에 어느 누가 여보게 우리 어디 감세, 하면 이의 없이 따라 나선다.” 나는 구활이 중절모를 쓰고 배낭에 막걸리 한 병을 넣고 그의 벗들과 팔공산과 운부암을 다니면서 풍류를 완성하길 기원한다.

 

* 이 원고는 구활의 수필집 어머니의 텃밭(좋은수필사, 2009), 그리운 날의 추억제(문학세계사, 1990), 문득, 그대(눈빛, 2017) 등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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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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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윤수
    2018-10-10 삭제

    이경희 작가가 구활 전문가군요. 구활 선생의 멋진 삶과 이경희 작가의 탁월한 필력이 만나 또 한 편의 작품이 탄생했군요. '삼신할매가 디오니소스의 술잔을 들고 그를 점지했으나, 모친이 섬기는 하나님이 그를 어여삐 여기사 인생을 잘 인도하신 것 같다.' 표현에 구활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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