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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12-10 오후 4:42:00

팔공산의 타샤 튜더, 자연을 닮은 여인 - 혜연 손덕출
[이경희의 소가 외다리 건너는 이야기]

기사입력 2019-08-05 오전 9:19:38

▲ 혜연 손덕출 선생



1. 자연과 더불어 사는 여자

 

팔공산 갓바위 올라가는 길 초입에 안나 갤러리가 있다. 단층 철조 구조물인 작은 갤러리는 아름다운 정원과 수공예 인형, 은발의 여주인으로 유명하다. 가로 세로 긴 창이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작은 정원에는 수목들과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풍경을 연출한다. 사계절 야생화와 넝쿨장미가 피고 진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장식한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헝겊인형과 퀼트제품, 나무인형, 한지그림, 다구, 책 등이 적당한 자리에 놓여 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장이 화사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는다. 은발(銀髮)의 혜연 손덕출 선생이 갤러리의 주인이다. 꽃분홍색 원피스가 은발과 잘 어울린다.

 

안나 갤러리의 안과 밖은 희한하게 잘 어울린다. 작지만 아름답다. 소박한가 싶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다. 정원과 집, 주인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갤러리가 자리한 그 땅은 원래 버려진 땅이었다. 개울가의 길쭉한 땅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땅을 사서 집을 짓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반대했을 정도였다.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고 정원을 꾸며놓자 그제야 그녀를 인정했다. 불모지에 집을 짓고 유럽풍의 멋진 공방을 개업했다. 땅 매입부터 집 설계, 시공 감독까지 전 공정을 혜연 선생이 감독하고 관리했다. 쉰아홉에 오래 전부터 꿈꾸던 집을 지은 것이다.

 

나는 그녀를 팔공산의 타샤 튜더라고 부르고 싶다. 타샤 튜더는 미국의 유명한 동화작가이자 자연주의자다. 중년 이후 버몬트주 산속에서 19세기 전통 농가를 짓고 정원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살다간 여성이다. 책과 영화를 통해 나는 타샤 튜더의 삶을 알게 되었다. 심신이 피로해 쉬고 싶을 때는 타샤 튜더의 정원을 책으로 감상한다. 긴 치마에 앞치마를 두르고, 청동 냄비에 수프를 끓이고, 온갖 나무와 꽃이 피는 정원을 가꾸면서 살다간 사람. 자연주의적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타샤 튜더 할머니는 롤 모델이다.

 

안나 갤러리의 혜연 선생이 그런 삶을 산다. 그녀는 옷을 만들고 깁는 솜씨가 탁월하다. 결혼 전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양재학원에 등록을 한다. 수강생들 중에 단연 솜씨가 뛰어났다. 영천에 양재학원 분원을 개설하자 원장은 그녀를 분원장으로 임명할 정도였다. 솜씨가 빼어나니 양장점 재단사로 바로 스카웃 되었다. 지금도 천을 뜨다가 웬만한 옷은 손수 지어 입는다. 기성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스타일로 고쳐 입는다. 그 뿐만 아니다. 팔공산 자락에 피는 산야초로 찌고 말리고 덖은 산야초차는 깊고 그윽한 맛이 일품이다. 작은 부엌에서 차려내는 자연주의 밥상은 달고 맛있다. 수목과 화초를 가꾸는 솜씨도 남다르다. 보잘 것 없는 화초도 그녀의 집에 오면 작품이 된다. 아무튼 옷, 음식, 화초 가꾸기, 그림, 천연염색 등 다방면으로 솜씨가 탁월하다. 돌맹이도 깨진 장독도 그녀의 손에 들어오면 예술작품으로 격상한다.

 

혜연 선생의 공식 직함은 한지공예가이며 갤러리 주인이다. 삶의 터전인 카페에는 선생의 한지공예 그림이 걸려 있다. 얼핏 보면 수채화나 유화로 착각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지를 찢어 만든 그림이란 걸 알 수 있다. 섬세하고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물감과는 다른 질감의 느낌이 나는 한지에 끌렸다고 한다. 한지의 결을 따라 찢고 바르면 한 폭의 그림이 탄생한다. 특히 색감이 뛰어나다. 나는 직감했다. 그녀가 타고난 예술적 기질의 소유자라는 걸.

 

최근 그녀의 시집 출간 작업을 도와주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책 편집 일은 특별한 분야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활자, 글과 그림, 색상, 배치 등에 관한 전문적 소양과 감각이 필요하다. 출판사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책에 대한 감각과 소양이 뛰어났다. 그녀는 내가 이런 쓸데없는 것에 예민해서 미안하다.”라며 겸손을 떨었다. 나는 내심 그녀의 타고난 재능과 감성에 질투가 났다. 한지공예가, 차인, 시인, 갤러리 주인 등 혜연이라는 한 존재를 지칭하는 사회적 호칭들이다. 이 많은 역할과 호칭을 그녀는 즐긴다. 억지로 하는 것은 질색이란다. 구활 선생 인터뷰 이후 나는 한 사람에게 재능을 몰아준 하느님을 욕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혜연 선생을 만나고는 슬그머니 신에 대한 원망이 올라오려는 걸 억지로 눌렀다.

 

 

2. 한지공예가로 꿈을 이루다

 

혜연 선생은 진량 부기리에서 태어났다. 사십사 년생이니 올해 일흔여섯이다. 이남삼녀 중 막내딸인데 부친이 쉰하나에 본 자식이다. 그러니 오죽 사랑을 받았겠나. 어린 딸의 발이 땅에 닿을 새 없이 부친은 그녀를 귀애했다. 혜연 선생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이 좋아 화가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미술숙제를 해갔는데, 선생님이 어디서 베낀 것이냐고 물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다. 인생이란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화가가 되겠다는 그녀의 꿈도 유예된다.

 

스물 셋에 오빠 친구와 연애결혼을 했다. 삼녀 일남을 두었다. 아들은 국제 구호개발 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딸 셋은 예술 관련 분야에서 일한다. 첫째 딸은 요리를, 둘째 딸은 피아노를, 셋째 딸은 어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지금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셋째 딸 안나 씨는 손재주가 뛰어나 손인형도 만들고 팬시우드도 제작한다. 갤러리에 가면 안나 씨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공무원인 남편은 돈이 많이 드는 자녀들의 예술교육을 반대했다. 예술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전문가에게 레슨을 받아야 한다. 경제적 뒷받침과 엄마의 열성이 큰 역할을 한다. 혜연 선생은 아이들의 재능을 믿고 뒷받침한다.

 

혜연 선생은 사남매나 되는 자녀를 낳고 길렀다. 생의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이라면 자식의 이름을 떠올리면 눈물이 고인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상처이자 영광이다. 성장기에 좀 더 보듬고 너그럽게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녀는 사남매 중 둘째 딸에게 특히 미안하다. 물질적 지원이야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둘째의 마음을 읽고 더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단다. 결혼하여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둘째 딸을 향한 미안함은 어미된 이들이 평생 안고 가는 마음이리라.

 

자녀들은 엄마의 재능을 하나씩 물려받았다. 자녀들도 예술가로 활동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특히 사남매를 키우느라 힘든 며느리를 대신하여 살림을 도맡아서 해준 시어머니가 고맙단다. 시어머니는 바느질과 음식 솜씨가 좋았다. 막내로 귀하게 자라 서툰 며느리에게 살림하는 법을 하나씩 가르쳐주셨다. 아흔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며느리에게 삼 개월 병수발을 받고 영면에 드셨다. 혜연 선생은 시어머니에게 진 마음의 빚을 짧은 병수발로 조금이나마 갚은 듯하여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구 지산동에 살다가 자녀들이 공부를 마치자 고향인 하양으로 돌아온다. 혜연 선생은 비로소 자신의 꿈을 찾는다. 손으로 색 한지를 찢어 붙여 상상하던 그림을 만들면 그렇게 재미있었다. 새벽 서너 시까지 몰입해서 작업을 했다. 매주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한지공예 명인인 스승을 찾아가서 배워 한지공예 사범 자격증도 땄다. 뒤늦게라도 소원하던 미대에 진학하려고 포토폴리오까지 다 준비했으나 병마가 찾아와 진학을 포기한다. 안나 갤러리에 걸린 그녀의 한지그림을 보고 손님들이 미술을 전공했냐, 라고 질문한다. 특히 색감이 남다르다. 내 생각에는 타고난 소질과 노력이 만든 합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친정 형제 중 큰오빠만 생존해 계신다. 얼마 전 큰오빠는 혜연 선생을 부르더니 막내 여동생 공부 많이 못 시킨 것 미안하다, 라며 용돈 봉투를 내밀었다고 한다. 백발의 오빠가 은발의 여동생에게 용돈을 주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혈육의 정이란 나이가 들수록 원초적 그리움을 자극하나 보다. 혜연 선생처럼 남다른 재주를 타고난 이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에둘러 가다보니 조금 늦을 뿐이다. 그녀가 한지공예가라는 직함을 가졌으니 꿈은 이루어진 셈이다.

 

 

3. 불청객 암이 찾아오다

 

예순다섯 초가을, 지인들과 카페 동호회 모임에 참석했다. 보건소장인 지인이 잠 자는 모습을 보고는 꼭 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집에서 가까운 영천 영남대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이튿날 재검진이 필요하다고 전화가 왔다. 예감이 불길하고 겁이 났다. 삼 일 후에 다시 그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간암이라고 했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고 패닉상태가 왔다. 간수치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으니 의사는 하루라도 빨리 입원을 하라고 재촉했다. 그 무렵 막내딸 안나 씨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녀는 가족에게 수술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구차하게 생을 연장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자연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가족들의 성화로 수술날짜를 받아놓고 딸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혜연 선생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스팩을 쌓기 위한 공부는 허영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토록 바라던 미대진학을 과감하게 포기한다. 그날 이후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다. 삶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고 대신 사람을 사랑하기로.

 

수술 후 칠 년간 암세포는 잠잠했다. 암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십 년 만에 암이 전이되었다. 완강히 수술을 거부했으나 맏사위의 설득으로 입원했다. 그러다가 작년 팔월에 또 암이 재발했다. 비로소 죽음이 구체적으로 다가 왔다. 몸에 또 칼을 대느니 이대로 살다 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솔직히 겁이 났다. 이번에는 아들이 손자를 데려와서 눈물로 호소했다. 아들의 눈물 앞에 완강하던 마음이 무너졌다.

 

여덟 시간의 긴 수술 끝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살았다, 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때의 심경은 시작품 모란 병상에 잘 드러난다. “모란은 다시 피어난 것인가/ 모란을 본다는 것/ 꿈을 꾼다는 것/ 이 모두는 신의 축복이리라며 혜연 선생은 또 한 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혜연 선생은 세 번이나 암수술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늘 밝은 얼굴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사람. 혜연 선생을 만나면 나는 그녀가 환자라는 걸 망각한다. 얼굴에 우울의 그림자나 그늘이 없다.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환자라고 배려를 원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탄력 있고 밝은 목소리, 화사한 웃음으로 카페 손님을 맞고 일상을 이어간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어찌 고통과 두려움이 없으랴. 그녀는 매일 가까운 팔공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물속에서 제자리 뛰기 운동을 한다. 그녀의 종아리는 근육질로 단단하다. 아침이 오면 청소를 하고 화단의 꽃을 가꾸고 카페에 오는 손님을 맞는다.

 

나는 두 가지 의문을 품고 질문을 했다. 한 가지는 암이 두렵지 않는지, 다른 한 가지는 투병의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듯이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면 암이 와도 행복하다는 것, 화가 나면 되돌아서서 나를 반성하라,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사 같은 대답에 솔직히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말은 쉽지만 인간이 그렇게 살기는 어렵지 않은가. 실제로 혜연 선생을 가까이서 몇 달 지켜본 바로는 이 말의 진정성을 부정하거나 의심하기가 어렵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혜연 선생은 요즘 정법(正法) 강의에 빠져 있다. 정법이란 지금 여기에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깨닫고 실천하는 공부란다. 오랜 세월 산에서 공부를 하여 깨달음을 얻은 스승님을 알게 되었다. 스승님의 말을 들으면 마음도 편안하고 어떤 인간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의 걸림이 없으니 늘 표정이 밝고 긍정적이다. 내면에 티끌 같은 걸림돌도 두지 않으려 애쓴다. 매일 기도하며 자아를 갱신하는 수도자와 무엇이 다르랴. 그래서인지 어지간한 말이나 행동은 다 품고 껴안는다. 나이듦의 미덕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가라라던 숫타니파타의 말처럼 혜연 선생은 진정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다.

 

 

4. 집은 사람을 닮는다

 


 

 

집은 사람을 담지만, 사람이 집을 만든다. 사람이 사는 공간을 보면 가치관이나 지향점, 감각을 알 수 있다. 갤러리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지나가다가 집이 예뻐서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혜연 선생은 평생 집을 세 채나 지었다. 어릴 때부터 야산중턱에 하얀 집을 짓고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이 꿈이었다. 누구나 꿈꾸는 집이 있다. 마당이 넓은 집, 장미넝쿨이 우거진 집, 햇볕이 잘 드는 창이 넓은 집 등. 자신이 꿈꾸던 집을 짓고 사는 일은 쉽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을 자본의 개념으로 재단하는 한국에서 꿈을 담은 집을 짓는 것은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막연한 꿈을 안고 살다가 예순을 앞둔 어느 날, 찾던 땅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길이 있고 계곡을 낀 땅이었는데, 거의 버려진 땅이었다. 가진 돈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나만의 집을 짓고 싶었다. 자연지형에 맞는 집을 설계하고 시공에 들어갔다. 모르는 것은 전문가에게 묻고 조언을 받았다. 집 짓은 일이 얼마나 신명이 났던지 공사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어떤 때는 무거운 콘크리트를 어깨에 지고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인부들도 감탄할 정도로 손으로 직접 빈틈을 메우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그 집은 누수나 곰팡이가 없는 튼실한 집이 되었다.

 

혜연 선생의 첫 작품은 유럽풍의 살림집 겸 공방이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보다 누구나 찾아와 차를 마시고 담소하는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전통 차 수업도 하고, 천연염색 강의도 했다. 정년퇴임을 하고 귀촌을 계획하던 공방 손님 중 한 사람이 집짓기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그 집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그녀의 생각과 손길이 들어갔다. 포크레인 소리. 망치 소리가 거슬리지 않는단다. 그런 소리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의 소리란다. 건설현장의 금속성 소음에 귀를 막는 나와는 확실히 무언가 다르다.

 

세 번째 집은 작은 황토방을 허물고 지은 안나 갤러리이다. 마침 막내딸 안나 씨가 인테리어 일을 하던 때라서 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열네 평은 갤러리, 열 평은 생활공간으로 설계했다. 공간을 요리조리 짜임새 있게 나누고 활용한 집안을 구경하면서 나는 그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안나 갤러리는 창이 많고 다양하다. 자연을 최대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이 반영된 설계이다. 집안의 모든 문은 직접 디자인하고 주문 제작했다. 한옥의 전통 창살 문양을 응용하여 공예사에 맞추었다. 문이 튼튼하고도 아름답다. 정원 조성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전체 공간을 보면 머리에 그냥 그림이 떠오른단다. 입구 양쪽에는 키 작은 소나무, 계곡 쪽에는 키 큰 소나무를 심고, 사이사이에 온갖 야생화와 장미, 백일홍, 백합 등이 시차를 달리하며 피어난다.

 

혜연 선생이 마지막으로 짓고 싶은 집은 작은 오두막집이란다. 작지만 아름답고 벽이 도타운 집, 지붕이 낮은 너와집 같은 집이란다. 벽을 두껍게 하여 쉽게 허물 수 없는 작은 집을 짓고 싶단다. 잘 허물고 금방 짓는 그런 집이 아니라 백년세세 이어질 그런 집. 나는 그녀가 꿈꾸는 그 작은 집이 자못 궁금하다.

 

안나 갤러리는 개성적 인테리어로 인기 많은 찻집이다. 요즘 말로 인생샷을 건지기에 좋은 그림이 되는 카페이다. 그래서 안나 갤러리는 단골손님이 많다. 혜연 선생이 작은 메모지를 지갑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갤러리를 방문한 손님이 남긴 쪽지였다.

 


 

 

작년 가을 아이들과 이곳을 지나며 특별한 공간이라 생각했어요. 비슷한 시기, 일 년 뒤 들어와 보게 된 이곳은 정말 특별한 곳이었네요! 아담하고 아늑한 정원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꽃들, 화폭에 담긴 아름다운 꽃들과 한지 위에 쓰여진 정갈한 글씨까지 모든 것이 작가님의 시어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이하 생략) 2018. 9. 25. 세 아이 엄마 올림

 

이런 글을 남긴 손님의 마음도 예쁘지만, 그 쪽지를 보물인양 간직하는 혜연 선생의 마음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다. 공간은 이렇듯 사람의 정서와 심성에 영향을 끼친다. 모름지기 집이란 한 존재의 총체성을 상징한다. 지향점, 성격이나 취향, 생활방식, 감각체계 등. 특히 안나 갤러리는 주인장인 혜연 선생의 심미적 취향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녀의 탁월한 감각으로 꾸민 작은 공간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의 처소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실내 인테리어도 예쁘고 아름답지만, 그 보다 주인장이 매력적이다. 주인장의 감성 넘치는 따스하고 밝은 기운이 손님의 발길을 부르는 요인인 듯싶다.

 

 

5. 혜연 찻집의 향기로운 여인

 

혜연 선생과 나와의 인연은 친구인 김정아 시인을 따라 혜연다원이라는 공방을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유럽풍의 멋진 찻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공간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예술적 재능을 지닌 찻집 여주인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혜연 선생이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문을 듣고 내심 반가웠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녀와 나를 연결하는 끈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 예상대로 우리 사이의 대화는 더 풍성해졌다. 시인 김정아와 셋이 앉으면 탁구공이 오가듯이 언어들이 오고 간다. 간주처럼 웃음이 간간히 들어가고, 교향악 악보처럼 다양하게 변주되는 우리의 대화는 즐겁고 유쾌하다. 그녀의 몸이 내장한 감각의 촉수와 언어의 감각은 탁월하다. 층위가 다양하면서도 열려 있다.

 

나는 자주 그녀의 나이를 잊는다. 굵은 웨이브가 멋진 은발과 하얀 피부, 분홍색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 카랑카랑한 목소리, 세련된 옷차림 등 어디를 보아도 노인스러운(?) 면이 없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지면 생은 지루해진다. 그녀는 아직도 호기심이 많다. 자녀들이 준 생일 축하금으로 옷 쇼핑을 하고, 영상으로 정법 강의를 듣는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공부는 그녀의 삶에서 핵심이다. 무한 긍정과 자기애가 솟아나는 우물이기도 하다.

 

혜연 선생을 꽃에 비유한다면 백합이다. 희디흰 꽃잎과 노란 수술, 고혹적 향기를 지닌 백합 같은 여인이다. 고고한 자태와 향기가 강렬하다. 그런가하면 노란 산국 같은 여인이기도 하다. 가을날 산자락에 무리지어 핀 노란 산국처럼 소박하고 진한 향기가 있다. 그런가하면 그녀의 정원에 핀 옥잠화와 같은 청초함도 있다. 한 가지 빛깔로 규정할 수 없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빛깔의 여인이다. 고독과 슬픔을 넘어선 자만이 품을 수 있는 깊고 그윽한 빛깔과 향기를 품고 있다. 이런 까닭에 찻집을 드나드는 뭇 사람에게 연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혜연 선생의 독특한 빛깔과 정신의 향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강물처럼 흐르는 인간애, 고고한 정신성이 세월 속에서 무르익은 결과물이리라.

 


 

 

다시 태어난다면 그림을 마음껏 그리는 화가가 되어 영혼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다.” 비록 화가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삶 속에서 충분히 재능과 끼를 발휘하고 살았다고 본다. 더 좋은 엄마, 더 좋은 아내로 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그녀. 인터뷰 마지막 날은 병원 정기검진을 받고 온 날이었다. 종일 운무가 낀 흐린 날이다. 육 개월마다 받는 검진인데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여전히 그녀는 밝은 목소리와 화사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았다. 나와 김정아 시인에게 맛있는 비빔국수를 만들어주었다.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지금 삶이 너무 행복하다는 그녀. 하얀 은발의 그녀가 팔공산의 타샤 튜더로 오래오래 찔레꽃 같은 여자로 남아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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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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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희
    2019-08-09 삭제

    혜연 선생님 팬들의 댓글 성원이 뜨겁네요. 생을 잘 살아오신 증거입니다. 작가로서 감사드립니다. ^^

  • 이 문향
    2019-08-09 삭제

    3년전 백합을 닮은 혜연선생님을만나게 된건, 제 남은 삶안에서 주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이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은총의 메세지 입니다선생님의 찬란했던 어제에 응원을 그리고 선생님의 오늘에 사랑을 드립니다 선생님 ^^주님안에서 사랑합니다 이 경희 작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윤권수 현대자동차
    2019-08-09 삭제

    80년대초 대학교 재학시절배고픈 우리들에게 살갑게 베풀어주신그 아름다움이 승화되어암이란 고약한 병도 비켜간것 같습니다.앞으로도 평소하시던대로늘 평화롭고 고고한 삶을 영위하시길 기원합니다할매...화이팅!!!

  • 서련
    2019-08-08 삭제

    감명깊게 읽었습니다저의 미래가 되고싶은.. 닮고 싶은 분이예요혜연선생님의 건강과 멋진작품활동이오래도록 이어지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호수
    2019-08-07 삭제

    거의매일 눈뜨면 만날수있음에 새삼 깊이 감사드리고,한자리에 있지않아도 늘 지근거리에 계시니,함께있는듯하고,궁금하면1초의 망설임없이 달려갈수있음에 또한 감사드리며, 이시간도, 낼아침도, 다음날도 오늘아침에 뵌모습으로 뵐수있기를 희망합니다.

  • 이경희
    2019-08-06 삭제

    댓글 고맙습니다. 저의 얕은 글솜씨로 혜연 선생님은 재능과 삶을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찻집에 가셔서 한번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심향
    2019-08-06 삭제

    혜연선생님을 향한 작가님의 사랑과 정성이 느껴지는 글이네요.^^*삶에 있어 시련과 고통을 밝은 마음에너지로잘극복해나오신 혜연선생님 삶은현대사회에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전해주시네요.정법공부를 통해 내 삶이 아닌널리 사람을 이롭게해야함을 가슴에 새겨생활하시니 혜연선생님 남은 삶에 시간들은진한 향기로 이웃들에게 따뜻한 에너지를전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 자운화
    2019-08-06 삭제

    이 경희 작가님 한 편의 아름다운 회고록을 읽은 듯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현대병으로 힘드신 환우님들께도 맘의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아픔을 겪지만 생각의 차이가 천지 차이임을 글을 읽고 더 와닿았습니다..^^우아하신 혜연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후배들을 위해 길잡이가 되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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