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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조선시대부터 경산 특산물을 생산한 금구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7) - 금구리
경산에서 대추를 처음 대량으로 생산한 곳은 압량읍 금구리였다. 현재 경산 대추는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이중 금구리에서 40%를, 나머지는 기타 지역에서 생산된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지난 2006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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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일제시대 토지 수탈 전초기지가 되었던 용암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6) - 용암리
용암리는 압량읍 소재 마을 중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 후기에 조성된 마을이다. 일제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거쳐오면서 들판 한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환경으로 외풍을 고스란히 맞아가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용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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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용벽루’는 사라졌어도 ‘선정비’는 남았네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하양현 구읍내 ‘한사리’
한사리는 이 용벽루가 있었던 마을이다. 조선 중기까지 하양현 관아가 있는 읍내(邑內)로 자리매김했다. 1960~70년대에는 경북 일원의 양파재배를 선도한 앞서가는 농촌 마을이었고, 오늘날에는 근교 농촌마을이다. 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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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김유신 장군의 병영유적지가 있는 압독국의 도읍지 압량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5) - 압량리
고대국가 압독국도 천수백 년 동안 실체가 사라졌지만, 그 이름이 있어 우리는 그 나라를 기억한다. 압량리는 바로 천수백 년 동안 실체가 사라진 나라의 이름이었다...압량리는 부적리와 함께 압독국 시대 도읍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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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압독국 부활을 꿈꾼 십장수(十將帥) 전설이 숨겨진 신대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4) - 신대리
압독국 멸망 후 압량인들이 압독과 압량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압량면’이 출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압독국의 도읍지 근처 천마봉이라 부르는 조그마한 산에 압독국 부활을 염원한 이야기가...신대리(新垈里)는 『호구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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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신라 삼국통일의 염원이 서린 부적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3) - 부적리
부적리는 압량리와 함께 압독국 시대 도읍이 있던 곳이었다. 압독국이 2세기 신라에 복속된 뒤 6세기 압독주 압량이 되었고, 7세기 김유신이 압독주 군주로 왔을 때 압량에서 분리되어 부적촌이라 칭하였다. 7세기(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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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백실’을 부르며 일궈낸 압량인의 삶의 터전과 문화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2) - 삶의 터전과 문화
압량인은 기원전부터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압량인의 문화를 전승해 왔다. 농사를 짓기 위하여 축조한 저수지와 땅을 일궈 저수지의 물을 받아 농사를 짓던 들판과 논이 대표적인 압량인의 삶의 터전이다...부적·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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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전설 같은 나라 압독국의 부활을 꿈꾸는 압량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압량읍 편(1) - 역사
청동기 시대 군장이 다스리는 여러 촌락 형태로 존재했던 경산 지역은 기원전 2세기경 부족 국가인 압독국으로 통합되어 진한 12개국 연맹체에 속했다. 이때 압독(압량)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2세기(102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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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사시사철 온천수가 솟아나는 상대리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남산면 편(4) - 상대리
상대리는 임진왜란 전까지 경주부 자인현 남면 대사동 대사리였다. 당시 대사동에는 대사리, 유등천리가 속해 있었다. 자인현이 경주부에서 독립하던 1637년 초대 현감 임선백과 자인현 선비들이 행정..마을 이름은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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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경산의 대표 옹기 가마가 있던 점촌동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동지역 편(15) - 점촌동
산시에 속하는 경산·자인·하양의 곳곳에서도 옹기를 생산하였는데, 현재까지도 ‘점’자가 들어가는 촌락이나 골짜기에는 가마터가 남아 있다. 점촌동은 바로 경산을 대표하는 가마가 있던 마을이었다...점촌동은 옛날 자인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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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전쟁의 폐허 위에 희망의 꽃을 피운 신천동 깐치밭골 메노나이트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동지역 편(14) - 신천동(2)
옛날에는 신천동 주민들의 논과 밭이 있어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대한제국 때까지만 하더라도 경산에서 자인으로 가는 도로는 신천동 마을 뒤와 용어더미 사이에 있는 시냇가 길이었다...6·25 전쟁 중에는 미국의 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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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동학 교주 최제우의 시신이 머물렀던 신천동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동지역 편(13) - 신천동(1)
사람들의 믿음은 무엇을 근거로 할까? 플라톤이 언급한 것처럼 지식의 판단을 근거로 하는가? 과학적 경험이나 증명에 근거하는가? 사회·정치적 신념에 근거하는가? ...신천동(信川洞)은 조선시대 자인현 서면 남방동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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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원효의 첫 도량 초개사 터가 있고 그의 아들 설총이 태어난 유곡동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동지역 편(12) - 유곡동(2)
경산을 삼성현(三聖賢)의 고장이라고 한다. 삼성은 세 명의 성인인 원효, 설총, 일연을 가리킨다. 이중 고려 국사 일연 선사가 탄생한 곳은 경산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마을은 전하지 않는다...현재까지 설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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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목마른 용이 물을 마시는 형국 거정대가 있는 유곡동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동지역 편(11) - 유곡동(1)
현 유곡동 마을회관이 있는 곳은 옛날 아방동(앞방골)이라 불렀다. 이곳에 조선 초 대학자 서거정의 조상 분묘가 신제지 안쪽에 있다. 그래서 서거정도 자인현에 있던 이 분묘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고...유곡동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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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곡곡 마을이야기]
금이 난다는 소문으로 마을 이름까지 바뀐 원효의 집 여천동
[경산곡곡 마을 이야기] 동지역 편(10) - 여천동
여천동은 조선 초까지 경주부 자인현 서면 대사동(大寺洞) 유등천리(柳等川里)였다. 1637년 자인현이 경주부에서 독립하면서 자인현 서면 서초동 유등천리가 되었다. 1895년 자인현이 자인군으로 바뀌면서 유등천리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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