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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옷 / 정용화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8-04-24 오전 8:31:16

▲ 그림 김수영
물의 옷
정용화
달 속에 배냇옷을 숨겨둔 적이 있다
나무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듯
밤이 서둘러 어두워질 때
방금 물에서 건져 올린 수평선을
둥글게 말아쥐고 보름달이 뜬다
전생에서 이생으로 건너오는
영혼을 위해 최초로 만들어지는 옷
그 배냇옷을 만들기 위해 달은
날마다 바닷물을 길어올려 천을 짓는다
명주실을 한 올 한 올 풀어
밀물과 썰물을 엮어 짠 물의 직물
배냇옷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둥글게 부풀었다 작아지는 달
배냇옷이 하얀 것은 달빛이 배어든 흔적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달 속에 맡겨둔
물의 옷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다
이생을 다하고 다음 생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로 지은 옷이 필요하다
오늘도 물의 옷을 지으려고
밤하늘에는 달이 빛의 실타래를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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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인님, 달에 부푼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그 아득한 어둠에 이르기까지 부연 달빛은 밀물과 썰물의 호흡으로 한 땀 한 땀 우주와 바다 사이 천의 장막을 드리운 장관을!
‘달 속에 배냇옷을 숨겨둔 적이 있다’라고 시작하는 정용화 시인의 “물의 옷”이라는 시는 전생과 이생과 후생을 생각하게 하는 폭넓은 사고의 확장을 보여주는 깊이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 갓난아이 때 배냇저고리를 입습니다. 깃과 섶을 달지 않은 배내옷, 그것은 이 세상에 와서 처음 입는 옷이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이 옷을 장롱 깊은 곳에 오래오래 보관해 두곤 했지요. 그런데 시인은 이 옷을 장롱 속이 아니라 달 속에 숨겨두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육체를 위한 옷이 아니라 전생에서 이생으로 건너오는 ‘영혼을 위한’ 옷이기 때문이랍니다.
영혼을 위한 옷, 그럴지도 모릅니다. 육체의 옷이 필요하듯이 어쩌면 영혼의 옷도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달은 밤마다 바닷물을 길어 올려 영혼의 배내옷을 깁는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혼의 배내옷을 시인은 ‘물의 옷’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강을 건넌다고 합니다. 황천강이니 스틱스 강이니, 기독교의 요단강 등은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으며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놓인 물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물은 이승과 저승의 단절이 아닌 또 다른 삶으로의 이행을 위한 삶의 근원적 원형으로 우리 삶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달에 숨겨둔 배내옷은 식물로 짠 옷이 아니라 물로 짠 옷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달빛이 배어든 그 하이얀 배내옷, 우리의 삶은 어쩌면 그 옷을 찾으로 떠나는 여행인지도 모르죠. 기독교에서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언제나 물로 자신의 영혼을 새롭게 씻고 가꾸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수평선을 둥글게 말아쥐고’ 떠오르는 보름달을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볼 수 있는 이 찬란한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받아들임에 있음을 생각해 보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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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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