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전시관
- 글
내 맨 나중 가질 것은 / 장석남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5-08-08 오전 9:22:12

내 맨 나중 가질 것은
장석남
내 맨 나중 가질 것을
봄비는 숨겨 가졌어요
그것은 연두색 춤이고요
떡잎의 어깨이고요
실눈 안의 수정 어둠이에요
일어나 그대로 봄비를 입으니
나는 춤이에요
나는 춤을 입고
길을 떠가요
온 생을 그렇게 떠갈 거예요
가을비에도 함박눈에도 나는 실려서
함부로 말 건네기 어려워요
먼 길을 온 거고
그것도 아이 걸음으로 온 거니
말 건네기 어려워요
그러나 그 자옥한 소리는
내 삼킨 말들을 용케도 알아서
명치의 뭉친 말들 잡아당겨요
실마리를 잡아 풀어가요
봄비는
실버들에 실려요
봄비를 젖혀 여니 거기
춤이 가득
겨울 하늘을 풀고 오는 봄비 앞에
쪼그려 앉아요
봄비는 눈이 낮아서
앉아 눈 맞춰요
-『내가 사랑한 거짓말』, 창비, 2025-
---------------------------------------------------------------------------
장석남 시인의 「내 맨 나중 가질 것은」이라는 시는 봄비의 생명성을 시인의 가슴으로 전이시켜주는 작품이다.
1연에서 시의 화자는 꼭 가지고 싶은 마지막 소망이 하나 있다. 그것을 ‘내 맨 나중 가질 것을’이라고 서두를 낮게 읊조린다. 봄비처럼 속삭이듯. 그리고는 그 내 소망을 ‘봄비는 숨겨 가졌어요’라고 궁금증과 신비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는 ‘봄비가 가진 나의 소망’을 조용히 하나씩 열거한다. ‘그것은 연두색 춤이고요/떡잎의 어깨이고요/실눈 안의 수정 어둠이에요/’라고. 시인은 봄비로 인해 나뭇가지들에 돋는 떡잎들의 새싹, 그 새싹들의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음을 보았고, 연둣빛 이파리들의 출렁거림을 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실눈 안의 수정 어둠’까지 읽어낸다. ‘실눈 안의 수정 어둠’은 애매성을 지닌 구절이지만 상당히 깊은 의미를 숨겨두고 있다. ‘실눈’은 뾰족이 돋는 떡잎들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 연한 실눈 안에는 수정 같은 맑은 어둠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어둠이 칙칙하고 어두운 것이 아니라 맑고 투명한 이미지로 다가오니, 한겨울의 어둠이 정화된 봄날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노래한다. ‘일어나 그대로 봄비를 입으니/나는 춤이에요’라고 고백한다. 시의 화자는 봄비로 인해 봄날의 춤을 춘다. ‘나는 춤을 입고/길을 떠가요/온 생을 그렇게 떠갈 거예요’라는 구절은 이러한 봄날의 꿈을 안고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노래한다. ‘가을비에도 함박눈에도 나는 실려서’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은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2연에 가면 이렇게 지금 살고 있는 ‘봄비’를 만난다. ‘봄비’는 ‘먼 길을 온’ 비이고, ‘아이 걸음으로 오는’ 비여서, ‘함부로 말 건네기 어려워요’라고 하면서 다정히 말을 건넨다. ‘봄비’는 응답해준다. ‘내 삼킨 말들을 용케도 알아서/명치의 뭉친 말들 잡아당겨’ 준다고. 아픔을 이해하는 자는 아픔을 겪어본 자이다. 어둠의 심연을 이해하는 자 역시 어둠을 통과해 본 자이다. 봄비는 지금 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속삭임으로 이 대지에 내리지만 지난 계절의 아픔과 어둠을 온전히 견뎌내고 정화한 존재이다. 봄날 내리는 봄비의 ‘그 자옥한 소리는’ 시의 화자가 다 하지 못만 ‘말들을 용케도 알아서/명치의 뭉친 말들 잡아당겨’ 위무해주고 있다.
3연에 가면 시의 화자는 이제 봄비와 하나가 된다. 서로의 교감 속에 시인은 ‘봄비’의 가슴을 젖혀 열고 들어간다. ‘실버들에 실려’ 한들거리는 저 춤은 ‘봄비의 춤’이다. 내 명치 끝에 뭉친 말을 풀어주듯이 봄비는 ‘겨울 하늘을 풀고’ 온다고 노래한다. 시의 화자는 고요히 ‘쪼그려 앉’는다. ‘봄비는 눈이 낮아서/앉아 눈 맞춰요’라고 동화적인 한 편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삶의 진실성은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 있지 않다. 언제나 봄비처럼 조용히 오고 조용히 읊조리고 깊이 응시하는 데에 있다. 장석남의 「내 맨 나중 가질 것은」은 수정처럼 맑은 봄비의 속삭임, 봄비가 가져오는 생명에의 춤을 통해 어둡고 힘든 우리의 삶을 맑고 아름답고 희망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jpg)
.pn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