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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 황영숙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5-11-22 오전 9:41:08

등
황영숙
우리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모르는 사이도 아는 사이도 아닌
가깝고도 먼 거리
언제나 뒷소문에 관심이 없는 나를
소리 없이 감당해 내고도
내색하지 않는다
매일 앞만 보고 걷는 나를 끊임없이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뱃구레에 가득히 쌓이는 욕망으로
내 다리와 팔이 휘청거릴 때도 너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나를 밀고 가는
길고 긴 묵언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내 앞에 나서지 않는
완벽한 너의 침묵은 나를 지키는
든든한 믿음이 된다
『깊어가는 시간』(북랜드,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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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등’은 어떤 존재인가? 황영숙 시인의 「등」을 읽으면 우리 인간 존재의 양면성과 우리 사회의 양면성을 만나게 된다.
내 안에는 ‘매일 앞만 보고 끊임없이 걷는 나’가 있는가 하면, 나의 뒤에서 ‘쏟아지는 온갖 뒷소문을 감당해 내면서 나를 밀고 가는 나’가 있음을 발견한다. 전면에 서서 앞만 보고 걷는 나는 ‘뱃구레에 가득히 쌓이는 욕망’의 화신이다. 한편 후자의 나는 내가 휘청거릴 때에도 나를 지탱해주며 ‘나를 밀고 가는 길고 긴 묵언’의 존재이다. 그러나 이 둘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했으니, 내 안에 존재하는 두 양상이다. 한 몸 안에서 자라는 쌍둥이인 셈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너무 닮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둘은 한 몸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서 깃발을 올리고 떠드는 존재 뒤에, 말없이 인내하며 꿋꿋이 말없이 자기 일에 충실한 존재들이야말로 우리의 ‘등’이 아닐까? 이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든든한 믿음의 존재’에 대한 통찰의 시이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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