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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드리는 목례 / 이기철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4-07-06 오전 10:59:42






생활에 드리는 목례

                              이기철

 

 

내가 어린 이파리들에게 이름을 묻고 있을 때

그가 와서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의 친구 당신의 연인 당신의 노복이라고 대답했다

나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그가 물을 때

나는 당신과 일생을 함께한 도반이라고 대답했다

내 얼굴을 아느냐고 그가 물을 때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과 눈썹의 길이

런닝과 팬티의 색깔까지 다 안다고 대답했다

그동안 내가 상냥했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그만 집어 들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내일도 나를 따라올 거냐고 묻는 그에게

화병에 물을 채우고 몇 송이

슬픔을 기쁨으로 갈아 꽂으며

당신을 피우고야 말겠다고 대답했다

가끔은 흐리고 가끔은 맑아지는 그에게

주소를 알려 주면

꽃다발을 들고 한번 찾아가겠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때 바스락거리는 이파리들이 가르쳐 주었다

그가 생활이라고

 

 

- 영원 아래서 잠시(민음사,202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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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의 영원 아래서 잠시라는 시집에 실린 생활에 드리는 목례라는 시를 읽으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반성케 한다.

 

우리는 매일을 살고 있다. 그것이 생활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생활을 살고 있지만 생활의 핵심에 이르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지 모른다. 시의 화자는 일어나 어린 이파리들에게 이름을 묻는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관심이다. 그럴 때 진정한 삶의 주인을 만날 수 있다. 나에게만 집착해 있는 사람에게는 아예 시에서처럼 너는 누구냐고 물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 질문에 시의 화자는 당당히 당신의 친구, 당신의 연인, 당신의 노복, 당신의 도반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 눈썹의 길이, 런닝과 팬티의 색깔까지 안다고 대답했을 때, 그는 다시 묻는다. 그럼 그동안 너는 너의 생활에 상냥했느냐고...’

 

그러자 시의 화자는 그만 집어 들던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 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너는 너의 생활에 상냥했느냐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지만 삶에 얼마나 상냥하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냐는 촌철살인의 질문이다. 일상의 삶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여유 없이 하루하루를 때우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산다고 모두들 굳게 악수하지만, 진정한 도반은 그 생활에 웃음을 지으며 가까이 가는 것이리라. 거추장도 빼고 화려한 장식도 거두고 소박하게 다가오는 일상에 가벼운 목례로 매일을 답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생활에 정장을 하고 정중한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일상은 그렇게 예의격식을 갖추어 오는 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일어나 가벼운 목례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가벼운 목례야말로 자연스러움이며 무위자연의 삶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의 삶이 아닐까? 생활은 굳어 있으면 안 된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꽃잎처럼 가볍게 소박하게 눈웃음을 주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영원 아래서 잠시어깨 풀고 이름 모르는 이파리에도 기대어 서 보는 것이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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