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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풀을 지우고, 외할아버지는 토끼를 지우고 / 송현섭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4-11-30 오후 3:08:10

토끼는 풀을 지우고, 외할아버지는 토끼를 지우고
송현섭
시골 외갓집 앞마당에는 나무와 철망으로 만들어진 토끼집이 있어요. 늙은 감나무가 자꾸만 이파리를 떨어뜨려, 토끼집은 감잎 지붕을 갖게 되었어요. 토끼집에는 하얀 토끼 한 마리와 하얀 토끼의 그림자 같은 갈색 토끼 한 마리가 살았어요. 외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이슬이 날아간 풀을 토끼에게 주었어요. 홍시처럼 빨간 눈 토끼들은 쓱싹쓱싹 두 개의 토끼지우개처럼 풀을 지웠어요. 바닥에 까만 지우개똥만 가득했지요. 이놈들은 겨울이면 두 배로 클 거야.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그리고 다음 여름방학, 외갓집에 갔을 땐, 얼룩 토끼와 얼룩 토끼의 그림자 같은 까만 토끼가 있었어요. 어, 흰색 토끼와 갈색 토끼는 어디 갔어요? 아, 그놈들 할아버지가 ㅇㅇㅇㅇ단다. 이 녀석들도 겨울이면 두 배로 클 거다. 하하하, 이가 두 개 남은 외할아버지, 아니 외할아버지지우개가 말했어요.
<동시마중>(2018.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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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섭 시인의 동시 「토끼는 풀을 지우고, 외할아버지는 토끼를 지우고」는 참 재미있고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하는 시다. 아주 편안하게 서사적인 이야기 시인데 그 속에 의미를 덧칠해 놓은 것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외할아버지 댁에는 토끼 두 마리가 살고, 그 토끼들은 서로 그림자처럼 붙어산다. 할아버지는 매일 그 토끼들에게 이슬이 마른 토끼풀을 주어 애지중지 키운다. 토끼들은 그 풀을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지우개로 지우듯 풀을 쓱싹쓱싹 지운다’라고 표현한 점이 어린아이다운 신선한 발상이다. 그런데 다음 여름 방학 외갓집에 갔을 땐 그 토끼들은 없고 새 토끼 두 마리만 있었다. ‘어, 흰색 토끼와 갈색 토끼는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더니, ‘아, 그놈들 할아버지가 ㅇㅇㅇㅇ단다.’라는 할아버지의 답이 또한 재밌다. 잠깐 독자들에게 ‘ㅇㅇㅇㅇ’에 들어갈 말을 생각하게 한다. 이내 대부분 독자들은 ‘잡아먹었’다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잡아먹었다’라는 말보다 ‘지웠다’라는 정감 있는 말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이가 두 개 남은 외할아버지, 아니 외할아버지지우개가 말했어요.’라는 표현은 더욱 시의 맛을 깊이 있게 해 준다.
그렇다. 세상 만물은 힘의 논리에 의해 먹고 먹히고 죽고 죽이는 관계로 보이지만, 이를 살벌한 투쟁이나 경쟁관계로 보지 않는 미덕이 이 시에 있다. 자연 현상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게 하여 우주적 생명의 섭리를 이해하는데도 이 시는 은근히 일조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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