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전시관
- 글
전갈 / 류인서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1-26 오전 9:17:46

전갈
류인서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곤 하였다
축축한 그늘 속 아기버섯도 웃었다 곰팡이들도 따라 웃었다
근사하고 잘생긴 한 소식에 물려 내 몸이 붓고 열에 들떠 끙끙 앓고 있으니
아무튼, 당신이 내게 등이 푸른 지독한 전갈을 보냈으니
그 봉투를 그득 채울 답을 가져오라 했음을 알겠다
긴 여름을 다 허비해서라도
사루비아 씨앗을 담아 오라 했음을 알겠다
----------------------------------------------------------------------
* 원시인님, 우리나라에는 ‘전갈’이 살지 않죠. ‘지네’는 많은데 말이죠. 전갈과 지네는 얼핏 닮은 점이 있지만, 지네는 습한 돌 틈에 살고 전갈은 메마른 사막에 사니 많이 다르죠. 그래서 우리에겐 ‘전갈’이란 늘 신선하고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곤충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독충이기도 하지만 꼬리를 치켜 올린 그 모습이 자못 맹렬하면서도 삶의 투지를 느끼게 해 주거든요.
얼마 전 류인서의 ‘전갈’을 만났습니다. 다짜고짜 이러한 전갈의 이미지로 시를 읽어내려 가는데, 아뿔싸 ‘전갈’이 그 ‘전갈’이 아니라는 걸 알고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렇지만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요. 동음이의어인 ‘전갈’의 이미지 병치를 살려 결국 둘을 결합시켜나가는 언어유희가 무척 흥미롭기도 하지만 감동까지 주니 말입니다.
봉투 속에 든 전갈(소식)이 기어 나와 나를 물고는 한 동안 놓아주지 않으니 그 전갈의 독성을 알만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내던 중 소식이 왔으니 얼마나 반갑고 기뻤을까요? 그것도 ‘등이 푸른 지독한 전갈’을 보내왔으니, 이제 이쪽에서 답을 할 차례입니다. 푸른 씨앗을 심어 잘 가꾸어 꽃을 피우고 이제 그 결과를 담아 또 전갈을 보낼 차례에 시인은 늘 들떠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소박한 사연, 단순한 삶에서 기뻐하는 시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감지되는 듯합니다. 카톡이나 문자, 전자메일의 세상에 편지봉투를 주고받으며 사는 좀 어눌한 것 같지만 진솔한 삶의 한 단면을 대하고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jpg)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jpg)
.pn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