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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 / 귄기호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2-12 오전 8:22:33





개싸움

            권기호

 

 

투전꾼의 개싸움을 본 일이 있다

한 쪽이 비명 질러 꼬리 감으면

승부가 끝나는 내기였다

도사견은 도사견끼리 상대 시키지만

서로 다른 종들끼리 싸움 붙이기도 한다

급소 찾아 사력 다해 눈도 찢어지기도 하는데

절대로 상대의 생식 급소는 물지 않는다

고통 속 그것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건들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개들이 지닌 어떤 규범 같은 것을 보고

심한 혼란에 사로 잡혔다

 

이건 개싸움이 아니다

개싸움은 개싸움다워야 한다(개판 되어야 한다)

개싸움에 무슨 룰이 있고 생명 존엄의 틀이 있단 말인가

나는 느닷없는 배신감에 얼굴이 붉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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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인님, 개싸움을 본 일이 있습니까? 시골길 걷다 어쩌다 두 마리가 서로 붙어 물고 뜯는 싸움이 아니라, 인간들이 개싸움을 붙여놓고 즐기는 개싸움 즉 투견 장을 본 일이 있으신지요? 요사이는 법으로 금지되어 없겠지만 수십 년 전에는 흥행거리를 노려 투전꾼들이 돈벌이의 대상으로 시골시장의 구석진 곳에서 하곤 했지요. 피 흘리며 물고 뜯는 개들의 싸움은 투우장과는 사뭇 다릅니다. 소싸움은 동물들의 싸움 중에도 단연 군자다운(?) 싸움이지만 닭싸움이나 개싸움은 목숨을 건 치열한 한판 전쟁입니다. 소들은 등만 돌리면 이긴 소는 더 이상 패배자의 뒤를 쫓지 않지만 개들은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니 처절한 한판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권기호 시인의 시 개싸움은 이러한 개싸움을 구경한 후 쓴 시인 것 같은데, 그곳에서 특별한 개싸움의 특이성을 하나 발견합니다. 그렇게 치열한 개싸움일지라도 개들에게는 개들의 규범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어도 상대의 생식기는 절대로 물고 뜯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자못 놀랍니다. 그것을 시인은 개들이 지닌 어떤 규범 같은 것을 보고/ 심한 혼란에 사로 잡혔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개판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 개싸움에는 개판이 아니라 최소한의 규범 속에 움직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개싸움에 무슨 룰이 있고 생명 존엄의 틀이 있단 말인가라는 시인의 회의 어린 시선을 통해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개들의 싸움에 인간의 삶을 오버랩 시키면서 인간의 삶이 진정 개판이 되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생명에 대한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규범도 없이 상대를 거꾸러뜨리는가? 그래서 이것을 아는 시인은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느닷없는 배신감에 얼굴이 붉어왔다라고 읊고 있는 것입니다. 개들의 신성한 배신감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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