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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정어리고래 / 하수현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3-09 오전 8:37:29





쇠정어리고래

하수현

 

바람 떼가 시장통까지 따라 들어와

쇠정어리고래 주위를 맴돈다

생고등어 뱃속에 왕소금을 던지던 한 아낙은 바람결에 움찔하다가

고래 쪽으로 눈길을 단단히 꽂았고,

행인들도 언 발을 머리에다 이고는 모두 입을 닫는다

어쩌다 운명의 그물 안으로 뛰어든 고래가

시장 바닥에 드러누우면

흡사 집 한 채 통째로 자빠지기라도 한 듯

무조건 시장통 빅뉴스가 된다

 

쇠정어리고래의 허연 배에 어설픈 현관문 하나

뚝딱 만들어지고부터

창자 허파 태평양의 물결이 토막토막 잘려 나오고

뒤이어 나온 살덩이들은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생애를 통곡한다

고래 창자에도 작은 창문을 내고 나니

소화가 집행유예된 오징어들,

()을 모를 만큼 절반쯤 무너진 물고기들,

한때 콜라가 주인이었던 붉은 페트병도 나온다

붉은 페트병은

그간의 암흑기를 털어내고 부활의 나라로 가리라 나는 믿는다

그다음으로는 포유류를 향한 알 수 없는 동정심도 도려내고

인도양 대서양의 수심(水深)을 후려치는

고래 떼의 장엄한 유영(遊泳)마저 뜯어낸다

 

비운의 쇠정어리고래는 잘린 살덩이들이 개별적으로 울었을 뿐

몸통이 절반이나 해체될 때까지

이 초유의 현실을 외면하느라 줄곧 눈을 감고 있다

어시장 바로 뒤편, 파란 바닷물 쪽을 보면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 쇠정어리고래의 진혼을 위해

겨울바다를 비장(悲壯)으로 달려온 고래 떼들이

상기된 낯으로 수런거릴 터인데,

울컥거리던 저녁바람도 이젠 날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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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인님, 지상 최대의 동물 고래의 죽음을 목도한 적이 있는지요? 워낙 귀한 일이라 어렵겠지요? 바다를 누비던 거대한 고래가, 어쩌다 그물에 걸려 인간에 의해 해체되는 과정을 노래한 하수현 님의 <쇠정어리고래>는 우리 인간들의 삶을 반추해 보게 하는 수작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온전히 땅에 묻습니다. 화장을 하든 매장을 하든.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장례 절차를 통해 그 순간만이라도 그 사람의 일생을 아는 대로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한평생 바다를 누비던 한 마리 고래가 시장통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상상의 객관화와 사실화를 통해 삶을 재조명해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쇠정어리고래의 허연 배에 어설픈 현관문 하나/뚝딱 만들고 고래의 뱃속에서 잠든 삶을 반추합니다. ‘창자 허파 태평양의 물결이 토막토막 잘려 나오고/소화가 집행유예된 오징어들()을 모를 만큼 절반쯤 무너진 물고기들한때 콜라가 주인이었던 붉은 페트병까지. 인간들은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포유류를 향한 알 수 없는 동정심즉 뱃속의 아기집도온전히 도려내고, ’인도양 대서양의 수심(水深)을 후려치는/고래 떼의 장엄한 유영(遊泳)‘까지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 속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삶의 궤적을, 마지막 죽음을 해체 추억하면서 과연 다 찾아질 순 없겠지만, 우리는 눈을 감고 죽음을 통해 그 사람의 일생을 잠시 유영하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제 각각 해체되는 망자는 어쩌면 비운의 쇠정어리고래처럼 잘린 살덩이들이 개별적으로 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망자는 이 초유의 현실을 외면하느라 줄곧 눈을 감고침묵할 뿐입니다. 고래가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예절은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 쇠정어리고래의 진혼을 위해’, ‘상기된 낯으로’ ‘울컥거리던 저녁바람처럼 우리들의 삶의 날을 바로 세울 일입니다.





 









 

김진홍 기자(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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