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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4-26 오후 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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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3-30 오전 8:32:58





우리 동네 목사님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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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기형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딘가 애잔하고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 애잔함과 쓸쓸함이 묵직한 이 시대의 슬픔과 어딘가에 맞닿아 있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기형도의 우리 동네 목사님은 더욱이 이 시대를 넘어 우리 인간의 보편적 진실성의 문제에까지 도달하는 힘을 가진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개척 교회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이 시는 매우 서사적이어서 누구에게나 읽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울림은 쉽게 잊히지 않는 힘이 숨어 있습니다. 아직 천막교회를 벗어나지 못한 목사는 설교도 힘차게 하고 손뼉도 쳐가며 부흥회도 열어야 할 일이지만 자전거 꽁무니에 성경책만한 송판이나 싣고 꽃밭이나 가꾸고 있으니, 장로나 집사들의 눈 밖에 날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설교를 한다는 것이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말만하고 있으니, 먹혀들어갈 일이 없겠지요. 교회의 가르침은 성경에서 나오는데, 그 성경 말씀에 매달리지 말고 생활에 치중하라니 자칫 위험한 발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번만 뒤집어 본다면 이야말로 진실로진실로 예수그리스도가 하고 싶었던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너희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웃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말하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그 성경의 말씀 자구에만 경탄하고 머물지, 그것을 실천하는 삶에는 등한히 하고 있음을, 시인은 이 목사를 통해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어찌 참 말씀이 성경책 속에 있겠습니까? 성경책이야말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입니다. 그 말씀이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원시인님, 이 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참 정신은 어디 가고 예수의 옷을 입고 예수 행세만 하는 종교에 대한 경종이며, 더 나아가 정치와 사회지도자 등등의 틀에 얽매인 이 시대에 지도자들의 삶의 자세에 대한 경종이기도 합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예배가 성전 속에서의 기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되는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한 번 되새겨 읽어 볼까요.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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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농자
    2019-04-01 삭제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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