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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6-15 오후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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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 / 최명진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6-01 오전 9:25:11





바다거북

                                   최금진

 

 

그는 수족관에 침몰선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얼굴에 문신을 한 아랍인의 우울 같은 것이

주름살을 파들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유리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 앞발을 휘젓고 있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수족관에서

그는 알비노증에 걸린 사람처럼 등껍질 속으로

자주 희멀건 얼굴을 숨겼다

여기서 나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갑골문자야, 하지만

등껍질에 새겨진 세월의 이면은 점치지 못한다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그는 몸을 벗어 던지려는 듯 한참을 끙끙거렸다

나는 신하도 하나 없는 왕이야, 그는

임금 자가 새겨진 배를 유리에 문지르며

입을 뻐끔거렸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나마나 다 안다는 듯

그의 시선은 유리벽 밖에까지 맺히지 못했다

짤막한 꼬리로 물 속에 무수한 마침표를 찍으며

그는 그렇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등판에 펼쳐진 별자리판에서

제 운명의 슬픈 점괘 하나를 얻은 것처럼

알라, 알라, 코란을 읊는 것처럼 그는

자꾸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꿇어앉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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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바다거북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느릿느릿 앞발을 저어 그 큰 몸을 유영하는, 바다를 떠나 고작 몇 평 밖에 안 되는 수족관에서 같은 자리를 끊임없이 맴도는 바다거북. 보는 이들은 신기하여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바라보지만 바다거북의 시선은 서서히 고정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체득하면 지느러미는 퇴화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침몰선처럼 수족관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바다거북의 모습에서 아랍인의 우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때는 갑골문자인 적도 있어 세상의 미래를 점친 적도 있었겠지만, 또 한 때는 바다의 왕()처럼 군림하였지만, 신하 하나 없는 작은 영역에서 기껏 임금 자가 새겨진 배를 유리에 문지르며라는 구절에서 가슴이 찡합니다. 영광의 뒤안길에서.

 

원시인님, 오늘날 우리나라는 다민족 다문화국가가 된 지도 벌써 수십 년이 되었지요? 동남아시아와 멀리 아랍 국가들까지 이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지만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수족관 유리 속의 바다거북으로 다가오는군요. 아늑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고 다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 바다거북을 통해 다시금 한번 되새겨 봅니다.

 

같은 공간에서 점점 박제가 되어 가는 것이 어디 바다거북뿐이겠습니까마는. ‘제 운명의 슬픈 점괘 하나를 얻은 것처럼받아들여야만 하는지? 발아래 펼쳐진 콘크리트 바닥을 내려다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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