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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11-18 오후 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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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톱을 넘어서 / 알프레드 테니슨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6-15 오전 9:18:33




모래톱을 넘어서

                                            알프레드 테니슨

 

 

해는 지고 저녁별 빛나는데

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

내 멀리 바다로 떠날 적에

모래톱에 슬픈 울음 없기를,

 

오직 밀물 가득한 파도소리 물보라 없고

자는 듯 움직이는 조수만이 있기를,

끝없는 심연에서 나온 이 몸

다시 제집으로 돌아갈 때

 

황혼이 깃든 녘 저녁 종소리

그리고 그 뒤에 짙어지는 어두움

내가 배에 오를 때

이별의 슬픔 없기를,

 

시간과 공간의 경계 너머로

물결이 나를 멀리 실어 낸다 해도

내가 모래톱을 건너고 나면

내 인도자의 얼굴 대면할 수 있기를,

 

CROSSiNG THE BAR / Alfred Tennyson (1809~1892)

 

Sunset and evening star,

And one clear call for me!

And may there be no moaning of the bar,

When I put out to sea,

 

But such a tide as moving seems asleep,

Too full for sound and foam,

When that which drew from out the boundless deep

Turns again home.

 

Twilight and evening bell,

And after that the dark!

And may there be no sadness of farewell,

When I embark;

 

For though from out our bourne of Time and Place

The flood may bear me far,

I hope to see my Pilot face to face

When I have crossed th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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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우리나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떠오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과 태도는 모두 다 다르죠. 천상병 시인의 초 긍정적 죽음 의식이나 알프레드 테니슨의 담담하면서도 순명적인 죽음 의식을 대하고 있으면 평온하고 거룩해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해는 지고 저녁별 빛나는데/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에서는 생명의 신비감마저 듭니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 개념임에도 이 시에서는 오히려 생명의 거룩함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따라 모래톱을 넘어 바다로 갈 때, 큰 파도 없고 고요한 심연의 세상이 나를 받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고요히 비운 자의 몫일 거라 생각해 봅니다. 이런 점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나 알프레드 테니슨의 모래톱을 넘어서나 둘 다 비슷합니다. 회귀의식 또한 비슷합니다.

 

단지 전자가 자연적이고 비종교적인 느낌을 준다면 후자는 다분히 나를 보낸 절대자(하느님)를 생각하게 하는 종교적인 색채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죽음은 시의 구절처럼 시간과 공간의 경계 너머에 있으며, 시적 화자는 그곳으로 평안히 잠들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삶의 마지막이 이렇듯 아름다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저녁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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