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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8-23 오전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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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답함 / 나태주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7-13 오전 9: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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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나태주 시인의 사랑법은 참 간명합니다. 단순 명료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실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랑은 그런 길과는 다른 길을 달려왔기 때문이겠지요. 예쁜 사람을 예쁘게 보아왔고, 좋은 것을 좋게 보아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법이었습니다. 이 역시 간명하고 단순하며 자신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태주 시인은 우리의 이 사랑을 가장 쉬운 말로 또 한 번 뒤집습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인은 이것이야말로 참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사랑을 감성의 차원에 두지 않고 이성과 오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사랑이 감성의 차원에 있을 때 사랑은 소유적인 사랑에 머물지만 이성과 오성의 차원으로 바뀌면 존재적인 사랑으로 바뀝니다. 이는 나의 차원이 아니라 그와 우리의 차원으로 바뀌게 되고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하는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예쁘지 않아도 예쁘게 보아 주는 것이요, 좋지 않은 것도 좋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렇듯 이러한 사랑이 이웃에게 적용될 때 그 사랑은 거룩해지는 것이겠지요. 마더 테레사 수녀가 정말 처음부터 가난하고 소외받은 모든 이들이 예쁘고 좋게만 보였을까요? 그의 사랑은 우리의 오감으로 판단된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원초적 눈으로 모든 이를 따뜻하게 대하는 진정한 사랑의 눈이었습니다. 예쁜 것을 예쁘게 보고 좋은 것을 좋게만 보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사랑이겠지요. 그것 또한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사랑은 위험합니다. 그가 예쁘지 않게 보일 때 사랑은 식기 때문입니다. 소유적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노래합니다.

 

싫은 것도 참아주면서 /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참아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정언은,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의 가슴에 사라지는 우물물을 계속 퍼올리게 해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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