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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女僧) / 백석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8-03 오전 8:18:53





여승(女僧)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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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백석 시인의 ‘여승(女僧)’을 읽으면 어느 추녀 끝 촐촐히 떨어지는 가을 빗방울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 빗방울소리에 여승이 산안개처럼 피었다 멀어지고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간’ 어린 딸아이가 자박자박 걸어옵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기도, 애절한 사연을 품은 한 폭의 동양화 같기도 한 사연들이 피어오릅니다.

 

지아비는 돈을 벌기 위해 평안도 어느 금광으로 떠나고 아내는 파리한 몸으로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옥수수를 팝니다. 어린 딸아이는 아마 아버지가 보고 싶어 보채겠지요. 그것을 어미는 자신을 다스리듯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인고의 세월을 견딥니다. 그러나 어린 딸아이는 무슨 사연인지 죽어 돌무덤에 묻히고 10년이 지나도 지아비는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인은 산 꿩이 섧게 우는 어느 슬픈 날, 절에서 자신의 머리오리를 자르고 속세의 길을 떠나 여승이 됩니다.

 

그 아련한 사연의 주인공을 시의 화자는 어는 절간에서 만납니다.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합니다. 몸에서 ‘가지취 내음새가 났다.’라는 말은 속세의 인연과는 거리가 먼 산속의 향이 묻어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뒤이어지는 구절에서 아직 여승에게는 속세의 그 아픔과 애련함이 묻어 있습니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는 구절이 이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 여인에게서 옛날 같은 늙은 모습이 아니라 자비와 온유와 평화스러운 모습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인간의 굴레는 그렇게 쉽게 벗어지지 않는가 봅니다. 산사를 울리는 불경은 그 내용이 아무리 비움과 자비와 거룩함으로 이루어진 경구들일지라도 그것을 읊는 이의 목소리를 타고 나오는 그 기표들은 우리 인간에게 어쩔 수 없이 애련함과 처연함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불경이 가지는 속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경(佛經)이 속세의 연못에서 핀 연꽃이라서 그럴까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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