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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10-17 오전 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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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서진배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08-10 오전 9:35:38





이름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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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은 이름 이야기하며 이 저녁 보냅시다. 이름은 고유명사죠. 고유명사란 이 세상에 둘이 없는, 오직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죠. 동식물, 사물들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들이 많지만, 우리 인간은 오직 우리 인간들에게만(애완동물 제외)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인 이름을 붙여 호명합니다.

 

서진배 시인의 이름이라는 시는 2019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데, 인간의 이름과 그 사람의 삶의 관계를 통찰력 있게 바라본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 시의 미덕은 이런 통찰력 위에 더해진-아직 젊은 시인일 텐데- 담담함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꿈과 현실의 괴리를 부모가 지어주신 큰 이름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대비시켜 바라보는 것에 독자들은 공감합니다. 어머니가 사 오신 큰 옷이나 아버지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에게 이미 지어놓은 큰 이름이나 다 같이 에 대한 큰 기대이며 부모의 꿈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자식들은 부모의 기대보다 더 크게 산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대부분 자신의 이름값보다 못하거나 헐렁한 큰 바지를 걸치고 살며 늘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인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시인은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라고 표현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늘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말합니다.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라고, 이름에 부채된 삶을 살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만큼 적절한 고유한 자신의 이름을 갖고 싶다고. 외롭고 힘든 삶일수록 우리는 더욱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이불같은 자신의 이름을 덮고 잠을 잡니다. 때로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라는 표현은 절절합니다.

 

삶에 지친 이들이여, ‘이름은 내가 지은 것도 본디부터 내 것도 아닌 아버지가, 사회가, 이 시대가 나에게 부여한 큰 틀입니다. 이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려는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이름의 노예가 될지도 모릅니다. ‘큰 이름은 그냥 큰 이름일 뿐입니다. 아버지가 붙인 이름은 아버지라는 고유한 속성이 가지는 본능의 발로입니다. 그것은 좋고 나쁨이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우리가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스스로 흘러가는 물은 물일뿐이듯이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고유명사로 인해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보통명사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겠지요. 고유명사는 그냥 고유한 존재에 대한 인식이지 목표물이 아닙니다. 어느 인디안 추장이 쓴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처럼 고유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이며 존중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 역시 누군가 그렇게 불러주고 배려해 주겠지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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