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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사 / 이봉주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10-26 오전 9:42:50





고물사

                                                                              이봉주

 

 

부처가 고물상 마당에 앉아있다

 

금으로 된 형상을 버리고 스티로폼 몸이 된 부처

왕궁을 버리고 길가에 앉은 싯다르타의 맨발이다

 

바라춤을 추듯 불어온 바람의 날갯짓에 고물상 간판 이응받침이 툭 떨어진다

 

반야의 실은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일까

속세에서 가장 낮은 도량, 古物寺

 

주름진깡통다리부러진의자코째진고무신기억잃은컴퓨터몸무게잃은저울목에구멍난스피커

전생과 현생의 고뇌가 온몸에 기록된 낡은 경전 같은 몸들이 후생의 탑을 쌓는다

 

금이 간 거울을 움켜쥐고 있던 구름이 후두둑 비를 뿌린다

뼈마디들의 공음空音, 목어 우는 소리가 빈병 속으로 낮게 흐른다

오직 버려진 몸들만 모이는 古物寺

 

스티로폼 부처는 이빨 빠진 다기茶器 하나 무릎 아래 내려놓고 열반에 든다

 

먼 산사에서 날아온 산새 한 마리 부처 어깨 위에 앉아 우는데

어디서 들리는 걸까

불기佛紀의 긴 시간 속에서 누군가 읊는 독경소리

 

古物寺 앞을 지나가는 노승의 신발무게가 독경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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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고물사라, -古物寺-

한 세상 살다 오직 버려진 몸들만 모이는고물상을 고물사라 바라본 시인의 발상은 참 특이하고도 신선합니다. 절이니 당연히 부처도 있어야하겠습니다. 비록 스티로폼 부처이지만. 부처만 있어야 되겠습니까? 실은 절간 속에는 모든 것이 있어야하고 모든 것이 부처가 되기도 해야 하는 곳이지요. 온갖 중생들이 드나드는 그곳이야말로 참된 절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속세의 고물사는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름진깡통다리부러진의자코째진고무신기억잃은컴퓨터몸무게잃은저울목에구멍난스피커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이 허접하고 부산한 공간이 진정 부처가 존재해야할 절간인지도 모르니까요. 띄어쓰기도 없이 붙여 쓴 시구가 어지럽게 놓인 고물상의 모습을 형상화해 줍니다.

 

원시인님, 열반은 속세를 떠나 면벽한 노승의 해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해 자신을 던진 이 고물사의 마당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불기佛紀의 긴 시간 속에서 누군가 읊는 독경소리가 이 허접하고 버려진 물건들을 외면한다면 그 독경소리는 공염불에 불과하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古物寺 앞을 지나가는 노승의 신발무게가 독경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금이 간 거울을 움켜쥐고 있던 구름이 후두둑 비를 뿌린다

 

이러한 세심한 관찰력과 참신한 표현 기법은 단순히 형식의 미학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고물에 대한 부처의 자비까지 연관되는 것은 비단 필자의 생각만일까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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