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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 / 사윤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12-21 오전 9:52:23





절절

                                사윤수

 

 

대비사 돌확에 약수가 얼었다
파란 바가지 하나 엎어져
약수와 꽝꽝 얼어붙었다
북풍이 밤 세워 예불 드릴 때
물과 바가지는 서로에게 파고들었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꽉 잡고 놓지 않았겠지
엎어져 붙었다는 건
오지 말아야할 길을 왔다는 뜻, 그러나
부처가 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이 결빙의 묵언수행을
지난밤이라 부른다
내가 잃어버린 지난밤들은
어디로 가서 철 지난 외투가 되었을까
돌확이 넘치도록 부어오른 얼음장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의 발등을 닮았다

봄이여, 한 백 년 쯤 늦게 오시라
차갑고도 뜨거운 화두에 거꾸로 맺힌 저 대웅전
파란 바가지 한 채의 동안거가
절절 깊다
고요가 가슴이라면 미어터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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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사람은 얼마만큼 아프면 고요에 이를까요? 그리고 그 고요가 다시 봄이 될까요? 사윤수 시인의 절절을 읽으면 아픔의 극한에 다다른 결빙의 세계를 만납니다.

 

한겨울 대비사 돌확 약수에 엎어져 꼼짝도 않고 얼어붙은 바가지를 통해 시인은 삶의 외로움과 슬픔을 봅니다. ‘북풍이 밤 세워 예불 드릴 때’ ‘물과 바가지는’ ‘부처가 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또 다른 예불을 밤새 드리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닐지라도 이 결빙의 묵언수행은 외로운 이에게는 가장 절절한 예불의 양식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모두 한번쯤 이런 결빙의 묵언수행을 거쳐 갑니다. 춥고 지난했던 그 지난 밤은 부어오른 길의 발등이 되어 철 지난 외투로 남아 있을 겁니다. ‘봄에 대한 열망, 봄에 대한 간절함을 시인은 반어적이게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봄이여, 한 백 년 쯤 늦게 오시라
고요가 가슴이라면 미어터지는 중이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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