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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01-21 오후 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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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 / 박소란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19-12-28 오전 10:04:46





미자

                                       박소란

 

 

밤의 불광천을 거닐다 본다 허허로운 눈길 위

미자야 사랑한다 죽도록, 누군가 휘갈겨 쓴 선득한 고백

비틀대는 발자국은 사랑 쪽으로 유난히 난분분하고 열병처럼

정처없이 한데를 서성이던 저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미자,

적멸을 드리운 세상의 모든 상처 곁에 격렬히 나부끼던 이름

미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떠나갔을까

부패한 추억의 냄새가 개천을 따라 스멀거리며 일어선다

겨우내 그칠 줄 모르고 허우적대던 절름발이 가랑눈과

그 불구의 몸을 깊숙이 끌어안아 애무하던 스무살의 뒷골목

여린 담벼락마다 퉤-- 보란 듯이 흘레붙고 싶었던

지천한 허방 속 야생의 짐승처럼 똬리를 틀고 아귀 같은 새끼들을 싸지르고 싶었던

내 불온했던 첫사랑, 미자는

아직 그 어둔 길 끝에 살고 있을까 아니다

아니다 어쩌면 미자는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사랑이란 이름의 무수한 날들은 하나같이 사랑 밖에 객사했듯이

눈의 계절이 저물면 저 아픈 고백 또한 다만 질척이는 농담이 되고 말 일

미자는 지금 여기에 없고 사랑하는

미자는 나를 모르고 기어이 내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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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한때 흔해빠진 이름 미자’, 그 흔한 이름이 이렇게 아름답고 절절한 시로 탄생하다니, 시인의 언어구사는 놀랄 만합니다.

 

우리는 가끔씩 다리 아래나 뒷골목 등에서 미자야 사랑한다 죽도록이라는 구절을 대하곤 합니다. 그저 피식 웃거나 낙서로 치부하곤 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 휘갈겨 쓴 그 구절에서 삶의 진실과 애환과 정수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시 구절 때문이겠지요.

 

적멸을 드리운 세상의 모든 상처 곁에 격렬히 나부끼던 이름이 바로 미자였으며, 우리의 애인이었지요.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부패한 추억의 냄새가 개천을 따라 스멀거리며 일어서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애절하고 절절했던 미자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머물게 함으로써 삶의 정수에 다가갑니다. 삶의 진상은 현상에 있지 않고 허상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미자야말로 우리가 만든 허상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는 사랑이란 이름의 무수한 날들은 하나같이 사랑 밖에 객사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그 순결했던 눈들도 질척이는 농담이 되고 말 때가 있지요.

 

미자는 지금 여기에 없고 사랑하는

미자는 나를 모르고 기어이 내 것이 아니고

 

, 아려한 미자, 가슴 절이는 미자, 끝내 내 것도 아니었고그런데 나는 미자를 떠올리며 산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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