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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온다 / 신혜영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2-15 오전 10:58:51

소금이 온다
신혜영
할아버지 병원에 있으니
소금밭이 고요하다
끌어올릴 바닷물이 없으니
말릴 바닷물이 없다
할아버지가 밀던 대파*는
창고 앞에 기대어
할아버지 땀 냄새를 풍기는데
물 삼키던 햇볕은
애먼 땅만 쩍쩍 가른다
새싹 같고 볍씨 같고
눈꽃 같던 소금꽃들
할아버지 땀이 등판에서 소금이 되어야
하얀 살 찌우던 소금꽃들
푸른 바다는 멀리서
꽃 피울 준비하며 애태우고 있을까
할아버지 소금이 없으니
세상엔 소금이 조금 부족해졌을까
빈 염전에 바닷물 한 줌 흘려놓곤
주문을 넣는다
할아버지가 온다
소금이 온다
*대파 :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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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혜영의 ‘소금이 온다’라는 시는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입니다. 소박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염전농사를 짓던 할아버지가 편찮아 병원에 입원한 모양입니다. 시적화자(손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간명합니다. ‘끌어올릴 바닷물이 없으니/말릴 바닷물이 없다’는 시적화자의 마음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또한 할아버지의 삶에서 배운 노동의 신성성까지 느끼게 하는 손자의 마음이 따뜻합니다. ‘할아버지 땀이 등판에서 소금이 되어야/하얀 살 찌우던 소금꽃들’이란 표현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그저 되는 것은 없다는 삶의 진실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인간이 없는 세상은 허허로울 따름입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바다는 ‘꽃 피울 준비하며 애태우고 있을까’라고 노래합니다. 또한 ‘할아버지 소금이 없으니/세상엔 소금이 조금 부족해졌을까’라고 아주 나직이 되묻듯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은 후반부에 있습니다. ‘빈 염전에 바닷물 한 줌 흘려놓곤/주문을 넣는’ 손자의 마음입니다. 어서 빨리 나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이렇듯 아름답게 치환시키다니요. ‘할아버지가 온다/소금이 온다’로 말입니다. 세상에 소금이 없으면 부패하거나 그 맛을 못 느끼게 하듯이 할아버지가 없는 집안은 소금이 없는 세상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서 나왔겠지요. 소금 같은 할아버지가 어서 빨리 나아 소금밭을 미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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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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