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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4-04 오전 9:22:29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어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해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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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의 대한민국의 봄은 어디 갔습니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 국민은 불안과 공포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3,000여 년 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 자신들이 사는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지새웠습니다. 오늘 우리 또한 그날의 그들처럼 두려움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지새우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모두들 서로를 경계하며 조심하고 배려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대구의 시인 이상화는 우리의 국토와 주권이 일본에 빼앗기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애통함과 비통함을 담은 봄 신명의 시를 불렀습니다. 얼어붙었던 대지 위로 봄기운은 다가오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봄이 오지 않고 있음을 안타깝게 노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방문만 걸어 잠그고 침울해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라고 노래하면서, ‘바람이 내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가 웃고, 잘 자란 보리들이 머리를 감고마중한다고 합니다. 드디어 그는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국민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신기하게도 더욱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는 민족이었습니다. 2020년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수렁의 봄입니다. 교육계에는 개학을 연기하고, 종교계에서는 미사와 예배와 법회를 중단하기까지 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서로 간에 접촉을 피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태까지 온 것입니다. 나와 남 모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 같은 두려움과 의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하루하루이지만, 우리 국민은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대구, 경북을 위해 의료봉사 진들 수 백 명이 몰려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치 시에서 봄 신령이 지핀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다 보면, 우리가 그토록 간절했던 우리의 일상의 봄은 올 것입니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길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절망을 노래한 비극의 노래가 아니라, 일제에 국토를 빼앗겨 힘들지언정 우리 민족의 혼과 정신을 일깨울 봄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저항의지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기획하고 투사할 때 우리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아는 의지의 민족입니다. 서로 손잡고 따뜻이 인사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을 다짐하면서 먼저 내 몸에 풋내를 띠고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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