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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피에타 / 천영애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4-11 오전 10:02:56






팽목항의 피에타

                                                          천영애

 

 

하느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어미의 품속에 기어든 자식을 버리는 하느님, 있으라 하며 있었고 생기라 하매 생긴 만물, 없어지라 하매 없어진 이치라 하더라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날 어미는 오래 바닥을 긁었다. 구겨진 손톱에 공허한 진물이 흘러내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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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그의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추억과 욕망을 섞으며/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이 아름다운 계절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니요. 봄은 계절의 여왕이라야 어울리고 생명의 약동이어야 하며 청춘의 화관이어야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4월이 오면 잊을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제주4·3사건‘4·19의거가 그렇고 ‘4·16세월호 참사가 그렇습니다. 차라리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로 시작하는 황무지야말로 이제야 조금 와 닿을 듯합니다.

 

천영애 시인은 팽목항의 피에타에서 타자의 슬픔과 손을 잡고 잔인한 계절을 읊조리고 있습니다. 2014세월호 참사는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이 시에는 꽃다운 여고생들의 죽음을 통해 자식과 어미의 관계를 하느님(부모)과 인간(자식)의 관계성으로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2연에 가면 1연에서 1인칭 시점의 화법을 갑자기 3인칭 시점의 화법으로 객관화시키면서 감정의 절제를 토로하지 않고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1연이 감정의 토로라면 2연은 감정의 보여주기 수법으로 객관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만약 2연이 없었다면 흔한 감정의 하소연에 그쳤을 것이지만, 2연으로 인해 이 시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고 그 아픔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 사건 현장에는 비록 있지 않았지만 그 사건을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것을 본 어미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지 누구나 상상이 갑니다. 집에서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면서 그 배에 탄 학생들의 어미들은 모두 방바닥을 긁고 또 긁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손톱은 구겨지고 공허한 진물만 흘렀을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고 안타깝게 지켜보아야만 하는 심정, 그리고 끝내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면서 흘러내리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진물밖에 더 있었을까요? 여기서 그냥 진물이 아니라 공허진물이기 때문에 어미의 그 절절한 심정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공허는 허무요 무상입니다. 그 무상의 아픔을 구겨진 손톱을 통해 발견함으로써 추상적인 개념인 공허를 감각화하고 구체화시켜 줍니다. 독자들은 시적 화자의 이러한 감각에 상상적으로 동참하면서 1연의 하소연으로 환원됩니다. 즉 만물을 주제한다는 하느님은 입 다물고 있고 관여하지 않는 신의 무심에 원망하는 모든 어미의 심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시인님, 죽음보다 못한 잔인한 인생 앞에서 오늘도 우리는 아름다움과 영광에 가려진 황무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봄날 역설적이게도 그 아픔은 더욱 크겠지요. 황무지 인생! 휘어진 손톱을 다시 세워 그 황무지에 다시 물을 대어야 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인 것을...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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