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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걱정 / 기형도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4-25 오전 9:14:01





엄마 걱정

                                기형도

?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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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누구나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습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추억보다 애절하고 안타까운 추억은 더 오래 갑니다. 인간의 심성 속에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더 원형적인 모습이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은 언제 읽어도 우리의 저 아련한 고향집으로 성큼 데려다 줍니다. 가난이 병풍처럼 두른 산야가 펼쳐집니다. 가족을 위해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팔러 간 엄마는 오지 않고 아들은 엄마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아들은 찬밥처럼 담겨기다림과 두려움에 싸인 어두운 방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이미지가 빚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시적 상황의 구체적 힘이지요. 시장에 열무 팔러 간 어머니, 그 어머니를 기다리며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아들의 모습, 해가 저물고 금 간 창으로 가을 빗줄기들이 내리치는 스산한 모습이 잘 떠오릅니다. 그에 못지않게 이 시는 시적 자아의 정서를 비유를 통해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시장에 가기 전 아들이 와서 먹으라고 아랫목에 밥그릇을 이불 속에 말아 두었겠지요. 그 밥도 이제 싸늘히 식어 찬밥이 되었습니다. 시적 화자의 엄마에 대한 기다림을 찬밥처럼 방에 담겨라고 함으로써 기다림에 지친 화자의 감정을 객관화시키고 있습니다. ‘배춧잎 같은 발소리는 또 어떻습니까? 어머니의 그 힘든 발자국 소리는 마치 시든 배춧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또한 해가 지거나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든이라고 한 것은 또 얼마나 시적 자아의 외로운 기다림을 형상화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유년의 아랫목보다 유년의 윗목이 더 오래 각인되어 있습니다. 인간 삶의 외로움과 그리움, 슬픔과 안타까움은 늘 우리 곁을 머물며 그 오랜 추억을 되살리곤 합니다. 그것이 비록 슬프고 애달플지라도 우리는 그 감정과 정서 속에서 우리의 힘든 현실을 또 정화시키곤 합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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