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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5-09 오전 10:02:34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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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은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1926)에 쓰인 한용운 님의 알 수 없어요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끊임없는 갈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속적 욕망이요, 또 하나는 보이지 않는 천상적 욕망입니다. 전자는 현실적 세계에 대한 욕망으로 돈, 명예, 권력 등 우리 인간이 삶의 현실에서 후천적으로 생겨난 것들입니다. 후자는 후천적이라기보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신의 세계, 영의 세계, 신비의 세계에 대한 갈망으로 이 역시 우리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영혼의 바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 수 없어요는 후자의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한용운 시인은 우리에게 독립운동가로서 승려로서 시인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승려 즉 구도자로서 신에 대한 끊임없는 경배와 신비의 세계를 시인의 감성으로 운율을 살려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승려로서 부처의 진 모습을 찾아 떠난 그의 삶은, 이 시를 통해 볼 때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을 그대로 간직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흔하디흔한 자연현상을 통해 그는 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을 통해 신의 발자취를,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을 통해 신의 얼굴을,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를 통해 신의 입김을,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를 통해 신의 노래를,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을 통해 신의 말씀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계적 존재이기에 우주적 현상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신의 모습들을 감지할 뿐입니다.

 

이 세상 만물 중 그 어느 존재도 신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는 식물이나 동물은 없습니다. 이것들은 우주적 법칙 속에서 주어진 자연현상 안에서 본능적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만, 오직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 안에 신의 영이 깃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신비스런 세계가 없다면 우리는 그저 움직이는 동식물이나 사물일 뿐이겠지요? 그것을 끝내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지라도, 끝내 알 수 없어요라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 헤맬 때 우리는 신을 닮은 인간 존재가 되겠지요? 신을 죽인 이 시대,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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