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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09-26 오전 8: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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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 김혜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5-16 오전 9:02:48





알츠하이머

                             김혜강

 

 

어머니가 사는 마을에는

사철 눈이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얀 마을에는

기억으로 가던 길들도

눈으로 덮이어

옛날마저

하얀색이다

눈이 소복

쌓이는 마을에서

온 몸으로 그림을

그리시는 어머니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그림을 지우고

지우고 그리신다

 

어머니가 사는 마을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려

바구니에 담을 추억도

색연필 같은 미래도 없어

하얗게 어머니는

수시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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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사람이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들은 많겠지만 시간의 상실만큼 큰 것이 있을까요? 이 시에서 어머니가 사는 마을에 내리는 눈은 바로 시간의 상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얀 눈은 내려 쌓여 기억으로 가던 길들을 덮어 그 옛날의 시간을 하얀색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슬픔이 주는 극한의 아픔입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병들어 초췌해져 가는 어머니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찾아와 자식도 몰라볼 때, 그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그야말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의 추락과 무엇이 다를까요. 사람은 늙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 추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하얀 백지장의 세계가 펼쳐져 그 위로 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알츠하이머의 어머니는 한 컷의 억장이 무너지는 몸부림입니다.

 

이 시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의 색만이 존재합니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흰색으로 표현한 시인의 색감입니다. 어쩌면 치매라는 병을 색감으로 표현한다면 무색이 제일 적절하겠지만 무색은 색이 없으므로 가장 가까운 색의 이미지는 하얀색이겠지요. 시각적 심상을 통해 아릿한 심미적 체험을 느끼게 해주는 시입니다. 이 세상은 수많은 색으로 빚어진 공간이지만 흰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은 모두 하얗게 변하듯 어머니의 마을에는 지금 오직 흰 눈만 내려 쌓이고 있습니다. 그 흰 눈 위에 어머니는 또 하얀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합니다.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그림을 말입니다. 가슴 아픔의 그 절절함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 쉬운 시어들을 사용하여 어머니의 지워진 세계를 표현한 솜씨도 뛰어납니다. 또한, 둘째 연에 가면 어머니의 삶을 더욱 애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세상에는 바구니에 담을 추억도/색연필 같은 미래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소멸의 삶만이, 흔적없이 녹아내릴 흰색의 세상만이 펼쳐지겠지요. 기억의 상실은 모든 것을 깡그리 원점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인간에게 어찌 이렇듯 가혹한 형벌이 주어졌을까요?

 

원시인님, 김혜강의 알츠하이머라는 시는 시간의 상실을 오직 하나의 색인 흰색의 시각적 심상을 통해 아릿한 심미적 체험을 느끼게 해 준 작품으로 기억될 겁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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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인馬里人
    2020-05-18 삭제

    하얀색. 마음에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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