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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6-13 오전 10:47:09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중략)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 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중략)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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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팽이를 돌려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수십 년 전엔 아버지가 나무로 팽이를 깎아 만들어주었지요. 갸름하게 생긴 나무 팽이를 마당에 놓고 팽이채로 채찍질하여 일으켜 세우면 드디어 팽이는 돌아가지요. 돌아가는 그 힘에 채찍질이 더 가해지면 그 후엔 스스로 뱅글뱅글 팽이가 잘도 돌아갔지요. 참 정겨운 풍경이고 우리의 추억 속에 아련한 삶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여기 김수영 시인의 달나라의 장난은 바로 팽이를 소재로 한 시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고 있으면 어딘가 애잔하고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그것은 아마 시인이 팽이를 통해 본질적 속성에서 벗어난 인간 존재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팽이는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니라 스스로 온전한 존재로 홀로 돌아가는데, 어쩌면 우리 인간들은 그렇지 못하고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돌아가는 존재들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다 1968년에 돌아간 김수영 시인은 시를 통해 깨어 있는 삶을 살기를,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살기를 노래하였습니다. 그에게서 팽이는 바로 우리 인간 존재 하나하나의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각자의 고유한 속성이나 특성은 무시당한 채 수레에 끌려가는 바퀴가 아니라, ‘스스로 도는 힘에 의해 돌아가는 팽이처럼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원시인님, 이 시의 제목이 달나라의 장난인데 왜 그런지 이제야 감이 오겠지요. 시인이 우연히 발견한 아이의 팽이 돌리기를 마치 달나라의 장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 세계에는 없는 저 천상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생각한 것이지요. 참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야하는 그리고 허겁지겁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신발 끈을 졸라매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스스로 돌아가는 팽이처럼 살라는 것은 바로 삶을 즐기는 순수한 어린아이의 삶이며, 그 자체가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니체가 말한 세속화된 마지막 인간이 아닌 위버멘쉬(초인)인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그 운명을 좀 더 높은 곳으로 고양시키는 존재인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스스로 돌아가는 지구처럼, 스스로 돌아가는 우주처럼, 우리 인간 역시 스스로 돌아가는 생을 누려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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