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0-07-13 오후 5:33:00

  • i 전시관

뒤적이다 / 이재무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6-27 오전 8:50:48






뒤적이다

                            이재무

 

 

 

망각에 익숙해진 나이

뒤적이는 일이 자주 생긴다

책을 읽어가다가 지나온 페이지를 뒤적이고

잃어버린 물건 때문에

거듭 동선을 뒤적이고

외출복이 마땅치 않아 옷장을 뒤적인다

바람이 풀잎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햇살이 이파리를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달빛이 강물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지난 사랑을 몰래 뒤적이기도 한다

뒤적인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

새가 공중을 뒤적이며 날고 있다

 

 

---------------------------------------------------------------------------

 

 

원시인님, 얼마 전 어떤 남편이 출근하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해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내려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에는 아이를 업고 아이를 찾는다는 속담이 있었지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나이는 들고 망각은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불안해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뒤적여볼 때가 된 거죠. 금방 있었던 물건이 보이지 않을 때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의심하기도 하고,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며칠을 끙끙거리며 추억을 뒤적여본 적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재무 시인의 뒤적이다라는 시는 우리의 이 망각을 슬픔이나 불안으로 이끌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망각을 아름답게 미화시키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의 시에 나오는 뒤적이다라는 의미는 다층적이고 변증법적이며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개인의 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망각에 익숙한 나이가 되었으니, 책을 읽다가 앞 페이지를 뒤적여봐야 하고, ‘잃어버린 물건 때문에 거듭 동선을되짚어 봐야 할 나이가 된 거죠.

 

사전에 보면 뒤적이다라는 의미는 두 가지로 사용되는데, 그 하나는 물건들을 이리저리 들추며 뒤지다.’이고, 두 번째는 물건이나 몸을 이리저리 뒤집다.’의 뜻으로 나옵니다. 전자의 뜻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이야기를 해 나가다가, ‘외출복이 마땅치 않아 옷장을 뒤적인다라는 구절에서는 후자의 뜻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다 이어 바람과 햇살과 달빛즉 자연의 뒤적임을 발견합니다. ‘뒤적이다라는 시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창조적으로 변용되어 사랑의 개념으로 확장해가고 있죠. ‘바람이 풀잎을 뒤적이, ‘햇살이 이파리를 뒤적이, ‘달빛이 강물을 뒤적이는것을 보게 된 시의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몰래 뒤적이는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뒤적인다는 것은/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모든 존재는 존재의 가슴 깊이 상대를 새길 때 뒤적일 것도 있습니다. 만약 새긴 것이 없다면 찾아 나설 망각의 세계도 아예 없는 것이겠지요.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은 뒤적일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만큼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리움의 덩어리라는 뜻이겠지요.

 

원시인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봅니다. 저 찬란한 허공으로 새가 날아갑니다. ‘새가 공중을 뒤적이며 날고 있습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

스팸방지코드
 [새로고침]
※ 상자 안에 있는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0/200
<a href="/black.html">배너클릭체크 노프레임</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