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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유치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7-11 오전 9:32:25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던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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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유치환님의 행복이라는 시를 읽고 있으면 참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하늘과 세상을 향해 몸의 일렁거림이 느껴집니다.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한 삶의 모습도 느껴집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남을 사랑하는 일은 자신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자신을 잠들지 않게 하고 자신을 출렁거리게 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며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인식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움직임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사랑 없이는 수레바퀴가 한 바퀴도 굴러가지 않을 겁니다. 아침에 해가 뜨는 일도 꽃이 피고 벌이 날아드는 일도 비가 뿌리고 새싹이 돋는 일도 모두 자신의 전존재를 또 다른 존재에게 주는 일입니다. 세상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주고 그 존재는 또 다른 존재에게 그 자신을 주고 그렇게 끊임없이 둥글게 사랑의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주적 질서는 바로 자신의 존재를 나 아닌 존재에게 끊임없이 주는 과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는 것은 곧 받음의 역설적 행위인 것이죠.

 

원시인님,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쓸 일이 없어진 오늘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늘 우체국 창문 앞에서 사랑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 행위는 너를 사랑하는 행위이고 세상을 향한 열림의 행위이며 더 나아가 나의 존재 확인이며 나를 사랑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각박해져가는 이 세상, 불안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이지만 세상을 따뜻한 봄기운에 약동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시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고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고 노래할 수 있다면,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과정으로서의 우주적 사랑 속에 사는, 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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