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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 김가령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8-01 오전 8:39:08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김가령(김진경)

 

 

난파선은 난파선 속에 뒤집혀 있다 깃발이, 갑판이, 선미가 부서졌다 아니 실제론 뼈댄 안 부서졌다 해일에 부딪쳤고 태풍에 부딪쳤다 그것들은 부딪침으로 섞인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지금은 멀미 중이다 난파선이 나를 껴안으려 한다 난파선이 쏟아내고 있다 방향키도, 서랍도, 포크도, 변기도 꾸역꾸역 쏟아낸다 나온 것들이 서로 섞여 흐른다 너는 흐르지 못했다 아니 실제론 너는 쏟아내지 못했다 그 이름이 바다를 안는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해파리도 해초도 흔들림이 없다 다만 자갈벌엔 구름이 있다 햇살도 자잘하다 바라보면 바다는 여전히 투명하다 힘차다 뱃전에 앉은 바다새가 바다를 바라보고 그 옆 나는 구토를 하고 있다 두통이 자갈벌에 처박힌다 파도 소린 진행이다 여름 가을 겨울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얀 소리가 부서진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바다와 별거 중이다 부서져 나간 글자, 흔적이 없다 폭우에 뜯겨나간 이름, 보고싶다 난파선 뒤에서 바다를 당기며 오른쪽으로 몸 기울어진 수평을 맞춘다 해일과 태풍이 무수한 소리를 숨기는 곳 짠 내음의 바다가 반짝 후미에서 빛났다 그 위 작은새 한 마리 깃을 내렸다 민들레 홑씨 둥글게 부풀어 날자 난파선은 난파선이 아니다 난파선 앞에서 난 파산하고 있다 바람을 들고 나는 석양에 기대 난파선에서 속을 푼다 조개껍질 몇 개가 통장 속으로 들어가 박힌다 앉은뱅이 파편 조각 하나가 열 번째 바다로 가고 있다 물결이 지느러미가 된다 누구의 바다 깊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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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령 시인의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라는 시는 2015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좌초한 지 모르지만 난파하여 떠돌아다니는 잔해와 난파선의 모습과 그리고 바다의 모습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자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에 뒤집혀 있다라는 첫 구절은 이 시가 의미하고자 하는 중심 생각을 끝까지 물고 갑니다. 난파선이 부서진 곳은 바다이지만 난파선은 그 바닷속에 뒤집혀 있지 못하고 난파선 속에 뒤집혀 있다고 노래합니다. 이는 뒤집힌 난파선이 아직도 바다(세상)가 껴안아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난파선 속에서 쏟아져 나온 서랍도, 포크도, 변기들을 바다는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하여 난파선은 흐르지 못한다고 노래합니다. 단지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해파리도 해초도 흔들림이 없을 뿐입니다. 바다는 바다일 뿐 부서진 난파선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진 바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바닷속에 있는 해조류까지도 저 홀로 존재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난파선은 바다와 별거 중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시의 화자는 드디어 멀미를 합니다. 난파선이 나를 껴안으려 하자기(시의 화자)’까지 도망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모른 체할 수 없는 것이 참 인간의 모습인 것이죠. 그리하여 시의 후반부에 가면 난파선 앞에서 난 파산하고 있다라고 노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 또한 파산한 경험이 있을 때라야만, 파산한 자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4년에 우리는 너무나 큰 난파선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난파선 안에서 나오는 생명들을 다 끌어안지 못해 동동거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부는 그 난파선들의 조각(생명)과 별거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파산하여 난파선에서 쏟아져 나온 서랍과 포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존재들을 끌어안는 것은 우주가, 자연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의 원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시입니다. 그 방법과 시적 구상이 평범하지 않아 일반 독자들이 읽기엔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의 난파선을 이야기하면서 그곳에 매몰하지 않고 희망을 암시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난파선은 부서지긴 했지만 뼈댄 안 부서졌다라고. 우리의 몫은 난파선을 다시금 건져 올려 바다에 띄우는 일임을 은근히 노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바다에 있는 모든 물결이 지느러미가될 때까지.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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