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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 프리드리히 니체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09-12 오전 9:30:46





어린아이

                                         프리드리히 니체

 

 

어린아이는 천진무구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쾌락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을 향한 운동이고

 

신성한 긍정이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사순옥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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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어린아이를 좋아하세요?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적도 있겠지요? 그대는 왜 가는 길을 가지 않고 물끄러미 그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웃고 있었지요? 아마 그것은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면 왜 어린아이를 사랑하나요?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 유명한 어린아이에 대한 잠언은 인간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시적으로 통찰력 있게 제시해 줍니다. 니체는 그의 주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서마지막 단계인 어린아이의 단계를 이렇게 읊조리고 있습니다. 그의 인간 정신의 세 단계는 첫째가 낙타의 단계이며, 두 번째가 사자의 단계이고, 세 번째가 어린아이의 단계로 보았습니다. 낙타의 단계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낙타는 자기의 주체는 없이 오직 타인과 전통적 가치에 얽매여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복종과 굴종의 삶을 살면서 오직 그대는 해야 한다는 의무에 얽매여 있는 존재입니다. 사자는 이러한 삶의 정신에서 벗어나 자유의 정신을 갖게 되고 스스로 사막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비유합니다. 의무와 굴종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이 되는 주체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하여 해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소망한다라는 명제 위에 그의 삶을 굳건히 세우는 자입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 자유를 창조하는 자들인 셈이죠. 기존의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는 몸부림이며 눈뜸의 의식의 순간입니다. 낙타보다 더 많은 고통과 갈등을 짊어지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니체는 말합니다. 이 사자의 단계를 넘어 어린아이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어린아이는 천진무구天眞無垢 그 자체이며 망각이라고 정의합니다. 천진무구는 순수 그 자체를 일컬음이요, 망각은 그 순간순간에 몰입이요 충실한 삶 자체를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어제도 내일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부름 따윈 잊은 지 오래입니다. 오직 그 순간에 몰입된 세계에서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입니다. 그 순간에 기쁨, 그 순간에 희열, 그 자체인 것이죠. 다른 것을 생각하는 순간,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는 것이죠. 이럴 때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쾌락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질서에 복종과 부정과 저항을 넘어 새로운 가치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사자의 단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단계인 것이죠. 구속, 억압, 굴종의 단계를 지나 부정과 저항의 단계도 지나 순간순간의 삶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기쁨에 가득 찬 삶이죠. 이 어린아이 단계에서의 삶의 존재를 니체는 위버멘쉬(초인)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원시인님,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사자의 단계로 그리고 낙타의 단계로 이행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예수는 그랬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오복음 18)라고. 인간이 삶을 살면서 신이 준 인간 본연의 선함을 버리고, 욕심에 차 다른 길로 간다면 결코 신이 마련한 천국의 삶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겠지요. 인간이 만든 제도와 틀 속에 갇혀 사는 한 우리는 낙타의 단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주체적인 삶에 욕심을 내고 그것만을 추구할 때 또한 사자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겠지요. 있는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하여 스스로 기쁜 삶을 영위할 때 우리는 어린아이의 단계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니체는 그랬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영원회귀하는 허무적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리고 그 허무 속에 좌절하는 인간이 아닌 능동적으로 그 허무를 극복하는 존재인 위버멘쉬를 갈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 삶 자체에 몰입할 때, 우리는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을 향한 운동이고

신성한 긍정

 

의 삶을 살지 않을까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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