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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이 있는 벽 / 변희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11-21 오전 9:36:24

유리창이 있는 벽
변희수
유리는 투명하다
무엇이든 다 허락할 것 같다
거리낌 없이 다 보여 줘도 결국 벽이라고
속지처럼 끼워져 있는 유리창
호호 입김을 불어 닦은 데 또 닦아도
자꾸 흐려지는 일들
얼룩이 남는 그런 일들은
아마도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들
버선목처럼 속을 뒤집어 보이거나
입을 아, 하고 벌려도
코 박고 이마를 찧을 수밖에 없는
유리는 투명하고
유리는 무엇이든 다 허락할 것 같은데
누구나
벽이 있고
벽마다 창은 하나씩 있고
창마다 자주 흐려지는 유리가 끼워져 있어
한 번씩 소리나게 드르륵 열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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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창 너머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일은 창을 여는 일일 것입니다. 세상과 나 사이에 놓여 있는 창은 단절이면서 문인 셈입니다. 특히 유리창은 내 앞의 세상을 투명하게 다 보여주어 모든 것을 ‘다 허락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투명한 유리 앞에서 ‘코 박고 이마를 찧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간순간 사람들은 사물을 눈으로만 확인하고 행동하면 이런 실수를 저지르곤 하겠지요. 눈만 아니라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판단하고 또 판단한 다음 오감 외 지성과 영감까지도 총 동원해 판단할 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겠습니다.
변희수 님의 「유리창이 있는 벽」은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그때 우리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유리창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다 허락할 것 같’지만 실은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우리의 단절된 벽입니다. 훤히 내다보이는 세상이지만 단지 꿈속의 일처럼 넘어가 만질 수 없는 피안의 세계입니다. 오늘날 이 대명천지 투명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우리들 앞에 놓인 그 투명한 벽 앞의 세상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그 막 앞에서 우리는 열쇠를 쉽게 찾지 못합니다. 그 유리문은 닦고 닦아도 자꾸 흐려지기만 할 뿐 좀체 열어 보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속 시원히 한번 열어 제치고 그 창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보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유리창은 세상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우리 마음이 만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앞에 있어 답답한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한 번씩 소리나게 드르륵 열어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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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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