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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 도종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12-13 오후 3:54:55

나비
도종환
누가 너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으랴
네가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모습의 벌레로 살았다 할지라도
온몸에 독기를 가시처럼 품고
음습한 곳을 떠돌았을지라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너의 고통스러운 변신을
기뻐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한 마리
작은 나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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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의 시가 일반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마 단순 명쾌함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나비’라는 시 역시 그렇습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죽을 때까지 변화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무수히 변화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니체가 인간 존재의 특성을 ‘영원회귀’로 본 것은 전자에 해당될 것이요, 인간의 변화단계를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어린아이’로 파악한 것은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위의 시 ‘나비’는 후자의 특성인 변화하는 존재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렇듯 팔랑팔랑 하늘을 날아다니는 예쁜 천사의 모습이지만, 이렇게 날아다니기까지 ‘끔찍한 모습의 벌레’로 땅속에서 인내하며 지냈겠지요. 때로 ‘온몸에 독기를 가시처럼 품고/음습한 곳을 떠돌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인은 나비의 변신을 찬양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너의 고통스러운 변신을/기뻐하는 것이다’라고.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신(우주)이 우리에게 명령한 본성이 잠재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신성적 본성인 양심이요, 또 하나는 동물적 본성인 욕심입니다. 이 둘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면벽하고 도를 깨친 스님일지라도 그 스님의 본성에는 이 둘을 모두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지 후자의 본성을 스스로 제압하고 전자의 본성을 드러내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탐·진·치에 빠져 희노애락에만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소인의 삶을 살 것입니다. 한편 우리의 마음을 보리심에 두고 인의예지의 삶을 추구하는 성령의 길을 따라 걷는다면 대인의 삶을 살 것입니다. 어쩌면 도종환의 ‘나비’는 한 마리 곤충의 삶을 통해 인간 존재의 거룩한 변화를 노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존재 속에 깃들어 있는 존재의 근원을 파악해 가는 직관은 신이 죽고 진리가 사라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눈이 아닐까 합니다. 방황하는 이 시대, 니체가 죽인 신은 죽어야 하지만 니체가 살리고자 한 신은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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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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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