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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9-17 오전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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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 / 김산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0-12-26 오전 9:40:31






달달

                                                                                          김산

 

?

당신의 표면은 희박함으로 가득하다.

 

내가 뻗은 가는 붓은 당신의 무중력 속에서 용해된다. 내가 당신을 두고 왔고 나는 멀리 망명했다고 일기에 쓴 적이 있다. 손을 가지런히 두고 가만히 누우면 침대가 한 뼘씩 공중으로 가라앉곤 했다. 침몰을 기다리던 외양선이 마지막 파랑에 의지해 공중의 살결을 어루만지듯 나의 야훼도 파랗게 질려 가곤 했다.

 

그러니까 당신의 주변은 당신 아닌 것으로 숨 막히게 환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지요, 내가 좇던 사랑이라고 부른 것들이 당신의 언저리를 맴돌던 한 줌 먼지는 아닌지요. 비 오는 저녁, 비틀비틀 언덕을 오르면 가로등보다 환한 먼지 알갱이들이 발끝에서 부서지곤 했다. 당신의 딱딱한 음계들이 십자가 사이로 동그랗게 울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외피가 헐거움으로 조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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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인간이 사랑한 자연물 중에 달만큼 한 것이 또 있겠습니까. 삶을 살면서 물론 달보다 해가 더 중요하지만, 우리의 심성은 캄캄한 밤 훤한 빛으로 그 어둠을 다독이는 달빛을 더 어루만지고 사랑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김산 시인의 달달은 제목도 재미있지만 달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시입니다. 달이 해보다 밝다면 누가 달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달의 표면은 희박함으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전통적 정서에서 아버지 상이 아니라 어머니 상을 지닙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무서운 아버지의 품보다 은은한 어머니 품으로 스며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 비치는 은은한 달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합니다.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그 고요한 빛 속에 녹아 한밤을 지새우게 합니다.

 

시에서 시의 화자는 노래합니다. ‘당신을 향한 무수한 그리움은 당신의 무중력 속에서 용해되어 버린다고, 나의 삶이 밤이 되면 오직 당신이 있는 쪽으로 밤마다 한 뼘씩 공중으로 가라앉곤 한다고. 그리하여 당신을 향한 사랑이 지극하여 당신의 주변은 당신 아닌 것으로 숨 막히게 환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당신은 물론 달이겠지만 달은 시의 화자가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시인은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 당신의 언저리를 맴돌던 한 줌 먼지는 아닌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비 오는 저녁, 비틀비틀 언덕을 오르면 가로등보다 환한 먼지 알갱이들이 발끝에서 부서지는 것을 봅니다. 사랑의 결실은 간 곳이 없지만 그 사랑의 빛은 환합니다. 오직 당신을 향해 걸음을 걸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안고 십자가 사이로 동그랗게 울고 있는자신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삶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작 갈구하는 궁극적 대상은 먼 하늘 달처럼 아득히 존재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달이 있음으로 우리의 밤은 어둡지 않습니다. 우리의 길은 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득하지만 달이 가지는 은은한 아우라는 우리의 삶을 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다독여줍니다. 마지막 구절 ?당신의 외피가 헐거움으로 조여 온다.’의 그 역설적 미학은 오래 여운을 남깁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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