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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1-09 오전 9:14:19






장미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필 뿐이다.

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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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겔루스 질레지우스는 17세기 독일의 신비주의 신부이며 시인입니다. ‘질레지우스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은 하느님이 피안彼岸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신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를 다 감싸 안으면서도 그것들에 깃들어 있고, 또한 신과 인간은 한 몸이기에 인간은 명상을 통해 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박찬국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질레지우스는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라고 읊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존재자들이 있는 이유를 찾고 그것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고 존재 목적을 찾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가장 우위에 두고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 종교가 그러했으며 과학이 그러했으며 기술문명이 또한 그러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존재는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하거나 무엇을 위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 존재를 제약하여 그 존재의 고유한 속성인 자유를 제한해 버립니다. 이 지구상에 아니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소멸하고 다시 존재할 뿐입니다. 누구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고를 할 때 우리는 그 존재자를 전유하여 자신의 사유의 틀 속에 가두어버립니다. 그 사유의 틀 속에 가두어지는 순간 존재 가치를 따지게 되고 존재 가치는 이해를 전제로 하게 되어 소유와 버림의 대상이 싹틉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이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편리하게 한 반면에, 우리의 의식을 편협되게 가두고 획일화시켜버렸습니다. 한송이 들에 핀 꽃, 날아다니는 수많은 벌레와 새들에게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진정 우리의 삶이 풍요로울까요? 산이 산으로 보이지 않을 때 물이 물로 보이지 않을 때 진정 행복할까요?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소박한 것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할 때, 우리는 존재의 빛을 발견하고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으면서스스로 충만함에 깃든 장미의 존재를, 우리는 우리 존재에서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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