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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박도일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1-31 오후 12:57:17






행복

                                    박도일

 

 

종일 집에 있으니

돌아버리겠어

머리에 빨간 핀 꽂고

비실비실 웃고 다니는

여자 보거든 난줄 알아라

 

삼식이는 식이도 아니야

구식이야 삼삼은 구

그놈의 구구단은 바뀌지도 않아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머무를 수 있었어

행복이

발바닥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경북문단3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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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운동가였던 페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명언이 떠오릅니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삶과 죽음 앞에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집안에 갇혀 지내니, ‘머리에 빨간 핀 꽂고/비실비실 웃고 다니는/여자 보거든 난줄 알아라라는 구절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페트릭 헨리처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울부짖으며 대들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페트릭 헨리의 저항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생명인 자유에 대한 갈구라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이며 인간에게 자유가 허락되지 않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님을 역설한 것이죠. 또한 그것은 이웃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의 자유에 대한 부르짖음은 개인의 갑갑함에 대한 방임이기에 온 국민은 참고 또 참아 내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모두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원시인님,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하지만, 우리 역시 살아 움직이는 동물인지라 통제의 늪이 우리에게 주는 절제의 고통 또한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시인은 통찰력 있는 눈으로 행복의 정의를 아주 쉽게 내려줌으로써 우리를 무거운 짐에서 잠시 해방시켜줍니다. ‘행복이/발바닥에 있다는 걸/처음 알았어’ - 그렇습니다. 발은 이웃을 만나는 첫걸음입니다. 나를 나답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움직일 수 없어 방바닥에 뒹굴어본 사람만이 발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통제를 받고 나니 함부로 나다닐 수 없는 발의 소중함이 다가옵니다.

 

언제나 늘 마지막으로 밀려있던 발바닥이여! 이 참에 너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를 너무 푸대접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 깨닫고 행동할 때까지 우리를 잡아 둘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너의 소중함을 통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에 자유가 있을 때 행복이 있음을. 우리에게 부여한 자유를 방임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우리가 걸은 길이 자유의 길인지 방종의 길인지 생각해 보라고...(*)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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